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tomino.egloos.com

포토로그


메모장

KBReport 프로야구 필자/다음카카오 1boon/KBO 야매카툰 작가

LG 트윈스 야구 전 경기 아프리카 생중계 http://afreecatv.com/tomino

사진, 글, 동영상 펌 금지합니다. 영화 포스터의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서 있습니다.

반말, 욕설, 비아냥, 협박 등의 악성 댓글은 삭제합니다. 비로그인 IP로 댓글 작성은 가능하지만 동일 IP로 닉네임을 여러 개 사용하는 '멀티 행위' 시 역시 삭제합니다.


LG 등번호 7번의 저주 야구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승리 팀 MBC 청룡을 인수해 1990년 창단된 LG 트윈스의 등번호 7번은 한국 야구 역사 상 최고의 유격수로 손꼽히는 프랜차이즈 스타 김재박의 것이었습니다.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센스 넘치는 타격과 주루, 수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선수가 바로 김재박이었습니다. 아마야구 시절부터 청룡을 거쳐 LG에 이르기까지, 행운을 의미하는 숫자 7의 등번호의 주인공은 청룡 시절 이루지 못한 한국 시리즈 우승의 꿈을 LG 창단 첫해에 이루면서 선수 시절 말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1991년 하위권으로 추락한 이후 팀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노장 선수들을 정리하기 위해 LG 구단은 김재박과 이광은에게 은퇴를 종용했고, 이에 순응한 이광은과 달리 선수 생명을 유지하는데 강한 의지를 드러낸 김재박은 1992년 태평양으로 무상 트레이드됩니다. 이후 김재박은 태평양에서 은퇴했고 태평양의 후신 현대의 창단 감독이 되어 한국 시리즈 우승 4회를 달성한 후 2007 시즌을 앞두고 LG 감독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친정팀으로 복귀하기까지 무려 15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LG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로 스타로 은퇴하지 못한 것에는 지금도 아쉬워하는 팬들이 상당합니다.

김재박의 트레이드 이후 7번은 주인 없이 2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1994년 초고교급 거물 타자 김재현이 7번을 물려받게 됩니다. 당시 등번호 7번을 원했던 것은 한양대를 졸업하고 1차 지명으로 입단한 대형 유격수 유지현이었지만, 구단 측에서는 김재현에게 등번호 7번을 부여해, 유지현이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재현은 등번호 7번을 부여한 구단에 보답이라도 하듯, 20홈런 - 20도루를 달성하면서 데뷔 첫 해 LG 우승의 주역이 됩니다.

이후 김재현은 2002 한국 시리즈에서 고관절 부상에도 불구하고 투혼을 발휘하며 LG의 준우승을 뒷받침했지만, FA 협상 과정에서 부상에 따른 책임은 모두 선수 본인에게 있다는 요지의 구단의 각서에 반발, 2005 시즌을 앞두고 LG를 떠나 SK에 입단합니다. 이 과정에서 LG 구단은 팬들의 엄청난 반발을 산 것은 물론인데, 당시의 험악한 분위기는 프랜차이즈 스타 김재박이 태평양으로 트레이드될 때와 비슷했습니다. 큰 경기에 강한 김재현은 2007 한국 시리즈 MVP에 선정되는 등 SK의 한국 시리즈 2연패의 견인차가 되었고, 2008 시즌 종료 후에는 SK와 FA 재계약을 성사시키며 실질적인 SK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 잡게 됩니다. 김재현은 SK 이적 후에도 LG 시절의 등번호 7번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10년이 넘도록 등번호 7번을 소유했던 김재현의 SK 이적 후, 2년 동안 다시 주인이 없었던 7번의 주인이 된 것은 2002년 기아에서 LG로 트레이된 후 상무에서 전역해 2007 시즌 팀에 합류한 김상현이었습니다. 2006년 2군에서 홈런 23개로 홈런왕에 오른 김상현은 기대를 한 몸에 안으며 등번호 7번을 부여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재현이 사용하던 응원가까지 물려받았는데, 이름도 비슷한 김상현이 과거 김재현처럼 잠실의 거포가 되어 장타를 마구 쏘아주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김상현은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전반기에 2루타를 양산했지만, 시즌 중반에 접어들면서 변화구에 약점을 노출, 삼진 개수를 늘리며 타율이 급격히 하락했고, 핫코너를 지키는 3루수라는 포지션이 부담스러운 듯 무려 19개의 실책을 범했습니다. 2008 시즌에도 김상현은 기회를 얻었지만 볼넷과 삼진의 비율이 19:55에 이를 정도로 선구안은 나아지지 않았고, 출장 기회조차 줄어들었습니다. LG팬들은 등번호 7번과 김재현이 사용했던 응원가가 아깝다며 김상현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결국 2년간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김상현에 실망한 LG는 FA 정성훈을 히어로즈에서 영입했고, 등번호 7번의 부담을 이겨내지 못한 김상현은, 2009 시즌에는 등번호 7번을 버리고 26번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김상현은 오키나와의 2차 전지훈련과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으며, 1군에 등록된 후 일주일도 채우지 못하고 친정팀 기아로 다시 트레이드되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1:1 트레이드도 아닌, 2:1 트레이드에서 두 명의 선수 중 하나라는 점에서 김상현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2009 시즌 김상현이 버린 등번호 7번을 선택한 것은 투수에서 타자로 전환한 외야수 김광삼입니다. 2008년 주로 2군에서 타자 수업을 받은 김광삼은 올 시즌 박용택의 부상과 이병규의 부진으로 1군에 합류해 4월 11일 두산전에 2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지만 득점 기회를 무산시키며 네 차례의 타석에서 모두 내야를 벗어나지 못한 뜬공으로 물러난 후 1경기 만에 곧바로 2군행을 통보받았습니다. 아직까지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김광삼이 LG의 두터운 외야진을 뚫고 주전 자리를 확보할지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이렇듯 LG 창단 이후 등번호 7번의 주인공 중 세 명은 다른 팀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비운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행운을 상징하는 숫자 7의 주인공들의 LG에서의 말로가 하나같이 불운했다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컬합니다. 과연 등번호 7번의 네 번째 주인공 김광삼이 비운의 징크스를 깨뜨릴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덧글

  • 시엔 2009/04/21 09:54 #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7번의저주...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