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 오스카 8개 부문을 휩쓴 대니 보일 감독의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퀴즈쇼의 문제에 함축된 빈민가 소년의 인생 유전을 묘사합니다. 배경이 인도이고 퀴즈쇼가 소재라는 측면에서 독특하지만, 기실 거액의 돈을 담보로 주인공의 인생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대니 보일의 상업 영화 데뷔작 ‘쉘로우 그레이브’ 이래 ‘트레인 스포팅’(‘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초반부에서 경찰에 쫓기는 소년들의 질주는 ‘트레인 스포팅’을 떠올리게 합니다.)과 ‘밀리언즈’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추구한 소재이기에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제3세계 빈민가 소년들이 폭력과 강도, 절도를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시티 오브 갓’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이라면 재미없을 것이라는 편견은 깨끗이 일소할 수 있을 정도로 흡인력이 강하고 흥미진진하며 화려한 영상이 돋보이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이지만, 영화를 지켜보는 내내 불편함을 감추기 어렵습니다. ‘진짜 인도를 보여주겠다’라는 대사처럼 카메라는 내내 인도의 빈곤과 미개함에 집착하는데, 성장한 자말 형제의 만남에서 등장하는 주상복합 고층 빌딩을 바라보며 나누는 ‘빈민가는 사라졌다’라는 대사는 면피에 불과할 뿐,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호감은커녕 가난하고 비위생적이며 불합리가 판을 치는 나라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연출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빈민가가 없는 나라가 없고, 빈민가 소년들이 범죄에 노출된 채 성장하지 않는 나라가 없건만, 아무리 인도인이 쓴 인도를 배경으로 한 원작 소설에 기초한 것이라 해도 영화 속 인도는 한 마디로 ‘지옥’이라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인도라는 공간적 배경의 빈부 격차와 비위생적 관점을 떠나 앵벌이 포주와 갱, 경찰, 심지어 퀴즈쇼 진행자까지 하나 같이 부정적인 등장인물들로 점철되었다는 점도 찜찜합니다.
대니 보일이 특유의 냉소와 재기발랄함을 포기하면서 오리엔탈리즘의 혐의를 피하려 노력한 점은 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인도라는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 확률이 낮은 비현실적인 퀴즈쇼 돈벼락을 맞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를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미디어와 자본의 천박한 유착과는 반대편에 서 있는 빈민가 소년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천민자본주의를 깊이 있는 시선으로 비판하는 관점을 설정하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단순히 벼락부자 판타지로 마무리된 것도 아쉽습니다. 발리우드에 대한 경의를 엿볼 수 있는 군무와 해피 엔딩으로 극중의 등장인물들은 행복해졌을지 모르지만, 관객은 씁쓸한 기분으로 극장문을 나서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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