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런 무어, 데이브 기븐스의 원작 만화를 ‘300’의 잭 스나이더 감독이 영화화한 ‘왓치맨’의 도입부는 매혹적입니다. 처음 결성된 초대 히어로 팀에서 두 번째 팀으로 계승되고, 이들이 해산되는 과정을 미국의 현대사와 결부시켜 속도감 넘치게 편집했습니다. 케네디 암살,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등의 굵직한 현대사와 체 게바라와 같은 실존 인물들을 왓치맨과 절묘하게 엮어냅니다.
나이트 아울(패트릭 윌슨 분)은 배트맨, 오지맨디아스(매튜 굿 분)는 로빈, 코미디언은 아이언맨, 로어셰크는 투명인간 등 어디선가 본 듯한 히어로들이라 외양에서 참신함은 부족하지만, 이들이 단결된 팀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흩어졌으며, 법률에 의해 은퇴를 강요당한 처지라는 설정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따라서 천재 오지맨디아스는 거대 금융 자본가가 된 반면, ‘샤인’의 제프리 러시와 비슷한 분위기의 나이트 아울은 소시민적 생활을 즐기며, 염세주의적 원칙주의자의 성향을 버리지 못한 로어셰크는 여전히 범죄자 소탕에 매달리는 등 신념에 따라 각자 행동합니다. 마치 ‘액스맨’이 해체되면 발생할 수 있는 상황과도 유사합니다.
중반까지 이어지는 코미디언 살해를 파헤쳐나가는 과정은 스릴러로서의 내러티브와 느와르와 같은 영상의 분위기를 조화시키는데 성공합니다. 2시간 43분에 걸친 긴 러닝 타임의 종반부에 제시되는 결말은 나름대로 철학적 질문을 던지려 노력하지만, ‘터미네이터 3’의 엔딩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슈퍼 히어로 블록 버스터에서 요구되는 카타르시스와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매우 허전합니다. 정치적으로는 불온했지만 오락성 면에서는 극한을 추구했던 ‘300’과는 대조적으로, ‘왓치맨’은 정치적으로는 균형 감각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정적으로 오락성이 부족합니다. 사지가 절단되는 고어 장면이 몇몇 있지만, 그다지 자극적이지도, 인상적이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허망한 결말을 다른 방식으로 손보고, 러닝 타임을 줄이며 압축적인 편집을 선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울러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기 위한 의도에서 선곡한 것이겠지만, 지나치게 귀에 익어 흔한 곡들을 고른 것도 옥에 티입니다. 내러티브 상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오지맨디아스의 개성과 의도가 막상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든 것도 약점입니다.
다른 히어로들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소유해 신에 비유되는 닥터 맨해튼(빌리 크루덥 준)이 베트남 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장면에 깔리는 ‘발큐레의 행진’은 ‘지옥의 묵시록’의 오마쥬입니다. 작품의 분위기 속에 녹아들어가 어색하지 않지만, 영화와 분리해 캐릭터로만 따지면 유치한 것이 사실이라, ‘무서운 영화’류의 코믹 패러디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300 - 헐리우드 전쟁 서사극의 화려한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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