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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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사 V건담’의 지옥도(地獄道) 1 U.C. 건담(퍼스트, Z...)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기동전사 건담’의 탄생 이래, 현재 방영 중인 ‘기동전사 건담 00(더블오)’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작품들이 명멸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묻는다면 사람마다 각기 다양한 작품을 거명하겠지만, 반대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작품을 묻는다면 대부분 ‘기동전사 V건담’(이하 ‘V건담’)을 꼽을 것입니다. 건담 시리즈 30년 역사의 연표 중 거의 정중앙에 위치한 이 작품은 끊임없이 보는 이의 공포와 짜증을 유발하는데, 건담 시리즈 사상 유일무이하게 긴 전51화를 통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예수의 고행처럼 고통을 선사하며 끝내 카타르시스조차 제공하지 않습니다.

1991년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과 캐릭터 디자이너 야스히코 요시카즈, 그리고 메카닉 디자이너 오오카와라 쿠니오 등 ‘본가’의 스태프가 재결집하여 제작된 극장판 ‘기동전사 건담 F91’(이하 ‘F91’)은, 반드시 TV판 제작으로 연계시키겠다는 토미노 감독의 야심과 달리 ‘방계’의 스태프가 제작한 OVA ‘기동전사 건담 0083 스타더스트 메모리’에도 밀리며 미적지근한 반응을 얻은 끝에, TV판 제작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반다이와 선라이즈는 15년 간 강력한 프랜차이즈로 엄청난 프라모델 매출을 좌우한 건담 시리즈를 포기할 수 없었고, ‘SD 건담’으로 입문한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TV판 건담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1993년 토미노 감독의 연출에 의해 ‘V건담’이 방영되었는데, 주인공 웃소 에빈은 13세, 히로인 샤크티 카린은 11세로, 10대 중후반의 소년이 주인공이었던 건담 시리즈에서 유례없이 연령이 하향화되었으며, 주역 메카 V건담을 비롯한 대부분의 MS들이 저연령층이 선호할 만한 합체 및 변신 기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우주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전 시리즈에 등장했던 캐릭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V건담’이 복잡한 설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출발하여 저연령층을 끌어들이고자 했던 의도를 엿볼 수 있으며, ‘V건담’의 ‘V’가 ‘Victory’의 약자인 것부터 저연령층을 위한 작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V건담’은 어린이는커녕 기존의 건담 시리즈의 비극성에 익숙한 어른들조차 마음 편히 볼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결국 ‘V건담’의 시청률(칸토 지방 기준)은, 역대 최악의 시청률로 방영 시간마저 새벽으로 옮겨진 1996년 작 ‘기동신세기 건담X’의 2.73%에 비견되는, 2.88%에 그쳤으며 이전까지 방영된 TV 시리즈 중 사상 최악이었습니다. 매화 종료 후의 예고편마다 샤크티의 내레이션으로 깔리는 마지막 대사 ‘봐주세요!’는 저조한 시청률을 진작부터 예견한 애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생모래를 입 안에 가득 넣고 씹는 듯한 버석거림을 느낄 수밖에 없는 ‘V건담’의 지옥도는 우선 단두대로 대변됩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공포 정치의 산물이었던 단두대는 갑자기 우주세기에 부활하여 잔스칼 제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제2화 ‘머신과 만난 날’의 대사 속에서 생뚱맞게 입에 오르내린 단두대는, 제7화 ‘단두대의 소리’에서 정말로 등장하여 리가 밀리티어의 리더였던 오이 늉 백작을 사형에 처합니다.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은 시리즈 초반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입니다.

토미노 감독의 건담 시리즈에서 항상 여성 캐릭터의 비중은 상당한 것이었으나, ‘V건담’의 여성 캐릭터의 카리스마는 작품 전체를 쥐고 뒤흔들 정도로 강렬합니다. 처음에는 웃소의 동경의 대상으로, 함께 리거 밀리티어에 몸담았던 카테지나 루스는 크로노클 어셔에 의해 납치된 이후 베스파의 파일럿이 되어 웃소를 위협합니다. 악역으로 선회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데, 아예 최종보스가 되어 웃소와 크로노클의 전투를 지켜보고, ‘둘 중 이기는 자가 나를 차지하리라’며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두 남자의 모습을 즐깁니다. 최종화인 제51화 ‘천사들의 승천’에서는 웃소를 속여 나이프로 자상을 입히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건담 시리즈 사상 초유의 광기를 마구 뿜어낸 카테지나는 의외로 전사하지 않고 시각장애인이 된 채 위그로 귀향합니다. 건담 시리즈의 남성 팬들의 가장 많은 증오를 받았던 카테지나가 죽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름의 반전일 수 있겠지만 팬들은 그녀의 죽음에서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마저 박탈당하게 된 것입니다. 카테지나가 베스파의 일원이 된 것은 갑작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제1화 ‘하얀 모빌슈트’에서 자신이 살았던 위그가 폭격으로 폐허가 되자, ‘이렇게 폭격당해서 잘 되었어. 특별구의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타락하는 법이니까.’ 라며 ‘인간의 역사란 이런 것’이라고 베스파의 학살을 옹호하는 등, 진작부터 여러 차례 암시됩니다. 주인공의 동경을 받는 금발의 연상녀라면 건담 시리즈 히로인의 정석에 가까운 설정인데, 이를 뒤집어 최종 보스가 되었다는 사실은 ‘V건담’의 지옥도를 대변합니다. 여타 시리즈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아 관련 단행본도 적게 발매된 ‘V건담’이지만, 2003년 긴가 출판에서 발행된 ‘V건담’ 관련 단행본 중 최고의 결정판 ‘그것이 V건담이다’에서 저자 사사키바라 고우는 ‘카테지나야 말로 ‘V건담’ 그 자체다’라고 규정하는데, 지극히 압축적이며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스파에는 카테지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라겐 기지 사령관 파라 그리폰과 알베오 피피니덴의 부하 르페 시노도 만만치 않습니다. 백작의 사형을 집행한 것에 대한 징계로 우주표류형을 받은 파라는, 타시로 바고에 의해 구출된 이후 강화인간이 된 후, 불길한 방울 소리와 함께 폭주하는데, ‘기동전사 건담 ZZ’의 캬라 슨에서 애교를 완전히 제거한 악역 캐릭터로 보입니다. 뒤로 둥글게 묶은 소위 ‘똥머리’가 유난히 고집스럽게 느껴지는 르페 역시 카테지나 못지않게 웃소를 끊임없이 의식합니다. 르페는 제29화 ‘새로운 슈트 V2’에서 웃소와 혼욕하며 물고문하는데, 개그나 섹시 컨셉으로 보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은 불쾌한 장면입니다. 파라는 제47화 ‘여자들의 전장’에서, 르페는 제42화 ‘선혈은 빛의 소용돌이로’에서 각각 웃소에 의해 전사하는데, 두 여성 캐릭터의 카리스마는 카테지나에 버금가라면 서러울 지경입니다. 여담이지만, 토미노 감독의 건담 시리즈 캐릭터들은 설정 상 나이보다 훨씬 많아 보이는데, 카테지나는 17세, 파라는 22세의 설정이나, (르페는 설정 상 나이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작품 속 외모나 행동 및 대사를 보면 최소한 카테지나는 20대 중반, 파라는 30세 전후로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계속)

덧글

  • 나르사스 2009/02/15 09:28 #

    슈라크대도 다 죽죠. 그러고보니...
  • 면도날고토 2009/02/15 10:04 #

    파라의 경우 초반부에서는 술집에서 카루루에게 먹일 우유를 찾는 샤크티 일행의 우유값을 대신 치뤄주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우주 추방형 한번 당하고 난 다음에는 그 모양이 되었으니;; 어떻게 보면 V건담에서 가장 비극적인 캐릭터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니 크로노클도 중간에 잠입한 리가 밀리티어의 기지에서 소변을 보려다가 무너지는 잔해에 깔릴뻔한(...) 수지를 구해주는 장면이 있지요;;

    그 역시 막판에 가서는 안습이지만...
  • JOSH 2009/02/15 10:41 #

    영감님의 비뚤어짐이 극에 달했던 시기...

    턴에이로 어느 정도 만회하긴 했어도
    최근 상업성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느니 어쩌니 해도 누가 쉬이 믿을까...
  • 유우지 2009/02/15 14:41 #

    시각장애에 기억상실까지 겹친 상태로 귀향한게 어찌보면 죽는것보다 더 괴로울지도 모르죠.
  • ZeX 2009/02/15 14:44 #

    생각해보면 V건담에 등장한 여성 파일럿 중 살아남은 건 마베트 한명 뿐이었죠.
    심지어 전투원이 아닌 개발자였던 웃소 어머니조차 그리 됐으니...
  • 풍신 2009/02/15 20:51 #

    건담의 개발자들을 비교적 비참한 운명을 맞으니까요. 아무로네 아빠라던지, 카뮤네 부모라던지...첸이라던지...
  • 레이트 2009/02/15 19:50 #

    저는 이 삐뚤어짐을 너무 좋아해서... 참 저 자신도 이해가 안갑니다.(그런 의미에서 토미노옹의 최고의 물건! 하면 턴에이.<-어이.)
  • theadadv 2009/02/16 05:03 #

    아새끼를 초인 게릴라로 키운 웃소 에빈 부모야 말로 V건담 그 자체.

    파라는 보다보면 천지무용의 료코가 잠시 출장나온 꼴이 되어버려서 임팩트가 줄어버리더군요.
  • ZECK-LE 2009/02/17 22:18 #

    무엇보다도 아나하임사의 재등장이 참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것을 보고 이 건담이 "토미노의 건담"이구나라고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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