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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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 70년 전 미국과 겹치는 오늘의 한국 영화

4년 간 복역 후 가석방된 톰(헨리 폰다 분)은 고향 오클라호마로 돌아오지만, 소작농을 몰아내는 무자비한 철거로 인해 일자리를 찾아 가족들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향합니다. 일가족의 꿈을 이뤄줄 것만 같았던 캘리포니아에 우여곡절 끝에 도착하지만,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새로운 고난입니다.

경제 공황기 실업과 가난에 시달리며 미 대륙을 전전하는 일가의 비극을 조명하는 존 스타인벡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존 포드 감독의 1940년 작 ‘분노의 포도’는 1.37:1의 화면비의 흑백 영화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우리만치 오늘날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영화입니다. 소작농을 터전에서 몰아내는 강제 철거가 이루어지며, 오갈 곳 없는 철거민이 모여 사는 난민촌에는 사설 경호원들의 폭력 행위가 빈발합니다. 사설 경호원들이 경찰과 협력 관계에 있어 공권력의 묵인 및 방조가 이어지며, ‘1명의 농장주를 위해 10만 명의 농민이 희생’당하는 불합리한 현실에 이의제기를 할 경우 ‘빨갱이’로 낙인찍힙니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목사였던 케이시(존 캐러딘 분)는 신앙으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목사직을 버리고 계급적 차별의 근본적 모순을 설파하다 사설 경호원들의 구타로 살해당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인간 이하로 취급받아 일치단결해도 모자란 노동자, 농민 계급이, 계급 차별의 근본적 모순을 깨닫지 못한 채, 생계 해결이라는 소시민적, 단기적 목표에 집착하며, 지역감정으로 분열한다는 것입니다.

톰 일가의 고통스런 기행을 묵묵히 뒤쫓는 로드 무비 ‘분노의 포도’는, 따라서 지극히 사실적입니다.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조부모는 객사하는 처지가 되고, 난민촌에서는 무고한 여성이 사설 경호원의 흉탄에 살해당합니다.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톰의 조부는 그나마 가족들의 눈물 속에서 오밤중에 장례를 치르지만, 조모의 장례 장면은 누락되어 있으며, 난민촌의 여성은 숨을 거두는 장면조차 제시되지 않습니다. 사설 경호원은 난민촌 여성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기는커녕 권총의 성능에 놀라움을 표하는 잔인무도함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인간의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 극도로 냉정하면서도 생생하기 때문에 ‘분노의 포도’는 사실주의의 수준을 넘어 하드 보일드 느와르나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 영화를 연상시킵니다.

과연 이것이 헐리우드의 메이저 영화사(20세기 폭스)에서 존 포드가 연출한 영화가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투철한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분노의 포도’는 그러나, 어느 정도 헐리우드적인 엔딩으로 종결됩니다. 가족을 떠나 혁명가로 변신할 톰의 여정을 원거리에서 잡은 롱테이크는, 정의의 총잡이가 추격을 피해 길을 떠나는 서부극의 엔딩을 떠올리게 합니다. ‘민중’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다짐은 직접적으로 주제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사족이라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어머니의 장황한 마지막 대사보다는 초반부 트랙터에 의해 집이 철거된 이후, 트랙터의 캐터필러 자국 위에 겹치는 소작농들의 그림자가 더욱 강렬하게 주제를 전달합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허구를 통렬하게 까발린 ‘분노의 포도’의 공개 이후, 무려 7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시대는 돌고 돌아 제2의 공황이 닥치고 있고, 미국은 서브 프라임 론을 갚지 못해 길거리에 나앉게 된 사람들의 텐트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은 민주주의와 경제가 단 1년 만에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까마득한 과거의 유물처럼 보이는 흑백 영화 속 상황이 오늘날의 현실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과연 인간의 역사는 진보하는 것인지 미심쩍습니다.


덧글

  • 세라피타 2009/02/11 11:34 #

    체인질링도 그렇지만 분노의 포도도....어째서 미국의 옛 실화나 영화들이 우리나라의 현실이 투영된걸까요 orz;
  • 에피나르 2009/02/11 13:34 #

    우리들은 살아있는 인간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전멸시킬 수 없고 또 쓸어버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아갈 것입니다, 아버지.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대사가 요즈음 기억이 나더군요.
    좋은 글 읽었습니다.
  • Shooting군 2009/02/11 18:24 #

    세라피타님//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 근대사를 공부하시면 우리나라와 너무나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문제는 그 부분을 다룬 책들이 미국에서도 다소 마이너틱한지라, 국내에선 찾아보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지요-_-;

    여튼 요즘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미국 근현대사랑 너무 비슷한 점이 많은데, 이 위기상황에서 미국은 루즈벨트가 등장했고, 이후 케네디가 등장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엔 누가 등장할까요......
  • 이준님 2009/02/11 19:43 #

    1, 스타인백은 나중에 "상추마을 사건"이라는 소설을 하나 더 씁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발표를 앞두고 작가 자신이 봐도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불태워 -_-;;버립니다.

    2. 오히려 존 포드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원작의 잔혹성을 영화에서는 무진장 "순화" 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그 순화 버전이 바로 저 영화입니다) 유명한 마지막 장면인 굶어서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아이를 사산한 여인이 자신의 젖을 먹이는 장면은 바로 이런 이유로 영화에서 빠졌지요. 그래서 원작을 읽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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