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세 가지 색’ 연작 중 첫 번째 작품 ‘블루’는 제목 그대로 죽음처럼 진한 파란색이 영화를 이끌어 갑니다. 가족을 모두 잃고 홀로 살아남은 줄리는 사고 직후에는 죽음을 갈구하며, 이후에도 죽음이 끊임없이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삶의 일부가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시골 저택의 방과 샹들리에, 그리고 줄리가 유일하게 몸을 움직이는 수영장을 뒤덮고 있는 파란색은, 주변 사람들을 거부하는 줄리의 냉정함과 동시에 우울함을 상징합니다. 제목이 ‘블루’이기는 하지만 단지 파란색만으로 점철된 것만은 아니며, 한 컷 한 컷을 그대로 스틸 사진으로 인화해 액자에 걸어도 무방할 정도로 아름다운 색채의 미장센이 이어집니다.
즈비그뉴 프라이즈너의 음악은 효과음이자 동시에 내러티브 그 자체라 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줄리와 올리비에, 두 사람이 맺어지게 되는 계기가 음악이며, 줄리가 죽음을 연상할 때마다 점프 컷에 암전이 삽입되며 깔리는 음악은 장송곡처럼 묵직합니다.
따라서 줄거리를 요약하면 단순한 통속극에 불과한 내러티브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프랑스 국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세 가지 색’ 연작의 시발점 ‘블루’의 파란색이 상징하는 것이 자유인 것처럼, ‘블루’를 내러티브에 얽매여 해석하게 되면 100분의 러닝 타임조차 지루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영상과 음악의 종합 예술인 영화라는 장르의 본래 취지에 걸맞게, 아름다운 영상과 장중한 음악의 향연에 편안히 몸을 맡기는 편이 즐겁습니다.
‘블루’의 촬영 당시 전성기였던 줄리엣 비노쉬는 감정을 절제하는 섬세한 연기를 통해 내면의 슬픔을 표현합니다. 사고 이후 친지들과도 연락을 끊고 지내던 줄리가 새로 사귀게 되는 친구가, 이웃들로부터 매춘부라 손가락질 당하는 스트립 댄서 루실(샤로트 베리 분)라는 점은 편견과 고정관념으로부터의 ‘자유’를 상징합니다. 삶의 와중에 죽음이 불쑥 끼어들고, 죽음 언저리에 삶이 존재한다는 평범하면서도 잊기 쉬운 진리를 새삼 일깨우며, ‘블루’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타인을 사랑할 수 있으며 진정 자유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주제를 전달합니다.
15년 만에 재개봉된 ‘블루’를 다시 필름으로 만나니, 기억했던 것보다 훨씬 짧은 영화였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개봉 당시 씨네코아에서 관람했을 때에는 140분은 족히 넘었던 것으로 기억했는데, 완전히 어긋난 기억이었습니다. 이미 씨네코아가 폐관되었고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붐을 이룬 국내의 예술 영화의 열풍이 IMF와 함께 사라졌는데, 10여 년 만에 다시 IMF와 같은 불황이 닥치고 있으니, 이제 불씨를 살리기 시작한 예술 영화의 자리가 과연 남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습니다.
십계 5 - 살인하지 말라
십계 6 - 간음하지 말라
십계 7 - 도둑질하지 말라
십계 8 - 네 이웃에 대해 거짓 증언하지 말라
십계 9 -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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