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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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질링 - 부패한 공권력에 맞서 싸운 모성 영화

1928년 LA. 아홉 살 난 아들 월터(개틀린 그리피스 분)와 단 둘이 함께 사는 크리스틴(안젤리나 졸리 분)은 출근한 사이 아들이 실종되자 경찰에 신고합니다. 얼마 뒤 아들을 찾았다는 경찰의 연락에 달려간 크리스틴은 소년이 자신의 아들이 아님을 알게 되지만, 경찰은 강압적으로 그녀의 주장을 부인하며 아이를 떠맡깁니다.

실화에 기초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체인질링(‘Changeling’은 남몰래 바꿔치기한 아이를 의미합니다.)’은 부정한 공권력에 저항한 젊은 어머니의 투쟁 과정을 묘사합니다. 아이가 뒤바뀐 어머니의 고통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조명하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극도로 부패하고 무능한 공권력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파헤친다는 점에서 상당히 정치적인 영화입니다. 게다가 뒤바뀐 아이를 둘러싸고 법정극과 범죄 스릴러의 요소도 포함되어 다소 긴 러닝 타임인 141분 동안 마치 여러 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본 듯한 포만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극중에서 매우 극적으로 변화하는 크리스틴의 운명과 행방을 따라가면, 마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데드맨 워킹’, ‘사형에 관한 짧은 필름’, ‘LA 컨피덴셜’, ‘카포티’ 등 다양한 영화들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이어지지만 시종일관 긴장감을 잃지 않으며 관객의 감성과 눈물샘을 자극하며 쥐락펴락하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장인의 경지에 올라섰음을 확실히 증명합니다.

한편으로는 섹시 스타이자 브래드 피트와의 부부 사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여럿 입양하며 제3세계를 위해 봉사하는 이미지로도 각인된 것이 안젤리나 졸리인데, 후자를 적극 활용해 겹쳐보이도록 유도한 캐스팅은 매우 영리한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실종이 사회적 차원으로 번져가는 것은 브리글레브 목사(존 말코비치 분)가 등장하는 장면 이후부터인데, 존 말코비치는 많은 장면에 등장하지 않지만 묵직하게 안젤리나 졸리를 뒷받침합니다.

연쇄살인범의 등장 이후에도 ‘체인질링’이 초점을 맞추는 진범은 연쇄살인범 일개인이 아니라 LA시 당국과 경찰, 즉 공권력입니다. 무소불위의 공권력이 견제받지 않고 전횡을 일삼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인권 침해를 비롯한 피해에 초점을 맞추고 본다면, 영화 속 시간적 배경으로부터 80년이 지난 오늘날 폭압적인 공권력으로 인해 시민들이 사망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불황에 시달리는 한국 영화가 돌파할 수 있는 길 중 하나는 보다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부조리를 과감히 파헤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체인질링’의 성공 요인은 스타 캐스팅이나 많은 제작비가 아니라 권력의 비행을 집요하게 파헤친 시나리오 덕분인데, 정부 수립 이후 독재 정권의 부정과 비행으로 시민들이 희생되어 ‘체인질링’보다 더욱 기막히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많이 발생한 한국의 상황에서 왜 제작자들인 그런 소재에 별달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사족이지만, ‘삼가다’와 ‘삼가하다’도 구분하지 못하고, 사건의 건수를 ‘OO껀’이라고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해 맞춤법의 초보적인 오류를 범하는 자막은 옥에 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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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세라피타 2009/01/26 14:00 #

    졸리 언니 때문에 더 보고싶은 작품입니다만 디제님 리뷰를 보니까 더 재밌어 보이네요 :)
  • PETER 2009/01/26 22:57 #

    포만감 동감입니다. 밀양도 생각나고 에린브로코비치(제목이 긴가민가)도 생각나고 살인의 추억도 생각나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생각나고... 여튼 정말 정말 재밌었습니다.
  • SAGA 2009/01/27 09:06 #

    조만간 보러갈 영화인데 일단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라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
  • 시대유감 2009/01/28 00:51 #

    묵직하게 잘 만든 영화입니다만 말씀하신대로 요새 우리나라 현실과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속이 더부룩해지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좋은 작품이나 큰 흥행은 못 할 것 같더군요.
  • guriguri938 2009/02/04 13:50 #

    아 짐 영화를 안봐서 글을 보기가 무서워요 ==';;; ㅎㅎ
    근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작품을 미리 보는게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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