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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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2 - 오우삼, 삼국지에 무릎 꿇다 영화

작년 7월 개봉된 ‘적벽대전 -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하 ‘전편’)에 뒤이어 반 년 만에 후속편 ‘적벽대전 2 - 최후의 결전’(이하 ‘후편’)이 개봉되었습니다. ‘전편’은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라는 부제처럼 ‘삼국지연의’의 클라이맥스인 적벽의 수전을 전혀 다루지 않고 종결된 132분짜리 예고편에 불과해, ‘후편’이 어느 정도 기대를 모은 것은 사실입니다.

나관중의 원작 ‘삼국지연의’과 비교하면, ‘후편’에서는 철저히 조조(장풍의 분)와 주유(양조위 분)의 대결로 압축됩니다. 끝 모를 야심을 지닌 조조와 동오를 지키고자 하는 주유의 대립에 소교(린즈링 분)까지 끼어들어 명백한 삼각관계의 대립각을 세웁니다. 주유는 손권(장첸 분)으로부터 오군의 전권을 위임받아 휘두르기 때문에, 유비군마저도 휘하에 두고 부리는 것처럼 전반부에서 다뤄집니다.

‘전편’의 리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의 두 주인공처럼 주유와 제갈량(금성무 분)이 교감을 하면서도 경쟁하는 관계는, ‘후편’에서는 그나마 제갈량이 활약하는 전반부까지가 전부입니다. 제갈량은 신묘한 힘으로 기도를 통해 동남풍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기상 예보자의 수준에 머무르며, 막상 본격적 전투에 돌입한 이후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는 거의 비중 없는 등장인물로 전락합니다. 제갈량의 비중이 대폭 축소된 것은 원작 소설의 수전에 패한 조조군의 퇴로를 유비군이 차단하는 분량마저 영화에서는 말끔히 사라졌기 때문인데, 따라서 조조와 관우의 화용도에서의 재회 등은 완전히 삭제되었습니다. 따라서 유비, 관우, 장비, 조운의 비중은 ‘전편’보다 비할 바 없이 축소되어 거의 무의미한 조연으로 밀려났습니다. 오의 노장 황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고육계는 언급만 한 번 이루어질 뿐, 실행되지 않습니다. 원작 소설과 생사 여부가 달라지는 등장인물도 있습니다.

대신 ‘삼국지연의’에서는 미미했던 손상향(조미)과 소교의 비중이 대폭 강화되었습니다. 손상향은 적진에 침투해 첩자 역할을 하면서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방통의 역할을 대신하며, 가공의 인물 손숙재와 나름의 우정을 쌓고(따라서 유비와는 로맨스는커녕 대화 한 마디 나누지 않습니다.), 소교는 홀로 중대한 전황을 좌우하는데, 원작 소설의 적벽대전 부분에서 여성 등장인물들의 역할이 미미했던 점을 보완하기 위한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후편’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원작의 재현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삼국지연의’의 등장인물과 사건만 빌려와 재해석을 하더라도 나름대로 주제의식이 분명하고 흥미롭다면 무방했을 텐데,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고 지루합니다. 141분의 러닝 타임 중 90여분은 별다른 전투 장면도 없이 충성과 의리를 강조하는 장면들로 나열됩니다. ‘전편’의 마지막 장면을 이어받은 축구 장면은 아무리 손상향과 손숙재의 관계를 위한 복선이라 해도 지나치게 길며, 주유의 검무 장면은 쓸 데 없습니다.

종반 50분의 전투 장면이 중반부까지의 지루함을 상쇄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일개 야심가의 야망으로 인해 전장에서 죽어가는 수십만의 군인들을 잔혹하게 묘사하며 처절한 전쟁의 무의미함을 강조하기 위한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지만, 깊이를 찾을 수 없으며 그렇다고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전 장면도 원작 소설의 팬이라면 빈약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짤막합니다. 중국 인민해방군을 동원한 엄청난 물량은 이제는 중국 영화에서 클리셰가 되어 버렸기에 도리어 지루함을 배가시킬 뿐입니다. 감흥 없는 소모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질극 장면은 ‘삼국지연의’의 영웅들의 이미지와는 매우 거리가 먼 찌질함과 오우삼 표 감상적인 아크로바틱 액션의 결합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말에서 언급되는 ‘승자 없는 전쟁’이라는 대사는 ‘삼국지연의’의 영화화에 실패한 오우삼을 위한 것이며, 오우삼이 273분에 걸친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증명한 것이 있다면, ‘삼국지연의’의 영화화란 지난한 것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덧붙이자면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귀족들에게 21세기 대한민국의 비속어, ‘쏠려’, ‘훈남’ 등을 입에 올리도록 만든 자막 번역가 홍주희의 ‘후편’에서의 자막은 여전히 거슬립니다. 서기 208년의 중국인 입에서 ‘골인’이라는 영어가 튀어나도록 번역하는 감각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등장인물들은 모두 성과 이름으로만 표기되는데, 유독 조운은 자를 따와 ‘조자룡’으로 번역하는 ‘전편’의 고집도 여전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위나라 장수의 이름을 ‘하 장군’으로 번역했는데 이 또한 ‘하후 장군’ 혹은 ‘허 장군’의 오류로 보입니다. 평소 영어권 영화들을 전문 번역하던 홍주희 번역가의 중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의문인데, 아마도 중국어 대본을 영어를 번역한 것을 다시 한글로 옮기는 중역의 과정에서 빚은 잘못으로 보입니다.

적벽대전 - 주유와 제갈량의 첩혈쌍웅, 혹은 132분 짜리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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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AGA 2009/01/23 11:00 #

    제가 즐겨가는 사이트에선 이 영화에 대한 혹평이 자자하더군요. 특히 원작 삼국지 팬의 분노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ㅡㅡ;;;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각색이라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공명이 동남풍을 불러오는 장면 정도는 좀 신비감 있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요. 하긴 공명이 동남풍을 빌려온 다음 주유가 군사들을 보내 공명을 죽이려고 했고 공명은 그것까지 간파해 조운으로 하여금 자신을 구원하게 한 걸 영화로 만들어버리면 기껏 만든 멋있는 주유가 한순간의 찌질이가 되버리니 공명이 기상 예보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인 거 같네요. ㅡㅡ;;;

    아직 2편을 보지 않았기에 함부로 평을 할 순 없지만 전 이 영화 1편을 보고 한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이건 주유의, 주유에 의한, 주유를 위한 영화라고.....
  • 그레이폭스 2009/01/23 11:15 #

    감독의 '공명 거품빼기'가 너무 집요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흥미가 떨어지더군요.

    관객이 납득할만한 수준에서의 각색을 실패했다는 생각입니다.
  • 나르사스 2009/01/23 13:46 #

    보통 타국어에 능하고 영화자막번역에 능한 검증된 사람을 찾기 힘드니까 그냥 영문판 대본을 넘긴다고 하더군요. 또한 번역사는 시간이 돈이니 그냥 휘리릭 휘리릭...
  • 세라피타 2009/01/23 15:55 #

    그저 주유를 사랑하는 제 눈에는 돈 내고 관람할 영화로 보인다는걸까요.

    영화 보고 디제님 글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
  • 스즈카 2009/01/23 23:48 #

    손숙재 실존 인물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공을 잘 차서 조조가 가까이 했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 sss 2010/01/31 16:12 # 삭제

    기실 저 영화를 만든 감독과 각본가 출신을 생각?!한다면
    주유가 핵심이된 적벽대전을 기대?!안할수가 없죠...

    저는 그간 중국이 만든 삼국지 관련작들을 다 봤다면 삼국지팬들이 욕하는 태도는 좀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영화팬 특히 역사물팬이기에 욕하는 것이면 몰라도요 -_-;;;

    영화속에서 대놓고 제갈량 역할을 축소하는 대사까지 등장합니다.
    동남풍 불자마자
    "도둑 내 역할은 이것까지요"

    영화속에서도 마찬가지였쬬.
  • ckdj 2010/07/16 23:10 # 삭제

    압권은 대교를 보내서 조조를 멸망시키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ㅇ삼국지연의에서는 그저 조조가 여색을 탐하여, 오나라를 무너뜨리고, 수치감을 주기 위해서, 대교와 소교를 품에 앉겠다고 말하기만 합니다. 그것도 조조의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그냥 전쟁전에 허풍떠는 것일수도 있지요. 실제로 좋아하지는 않았죠. 그저 조조의 정복욕과 비열함을 나타낼 뿐. 그런데 영화는 어쩐 일인지 이걸 굉장히 진지하게 받아드려, 조조가 대교에게 홀려 전쟁까지 대패하더군요. 조조...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사람 아닙니다. 영화만 보면 조조는 그냥 바보..그 이상도 아님. 1편은 호기심에 보았지만, 적벽2편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제대로 보지도 못한 영화
  • ckdj 2010/07/16 23:14 # 삭제

    삼국지를 모르는 사람(서양인이나, 비중국권 사람들)이 보면 여자 하나때문에 백만 대군을 잃고(실제로는 다 죽지는 않았으나, 영화에서는 단신으로 부하 몇명과 도주함) 줄행랑치는 조조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제갈공명이 그저 기상예측자로 나온다면 조조는 바보로 나옵니다. 한국에서도 이문열씨 삼국지 같은 경우를 보면, 조조를 높게 치고, 한국에도 유비보다 조조를 높게 치는 사람이 많은데, 간웅수준으로 깍아내리는 것도 모라자, 조조를 이 정도 수준으로까지 격하시키는 것은 그저 웃길 뿐이지요. 원작을 망가뜨린 대표적인 영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ckdj 2010/07/16 23:18 # 삭제

    참 웃긴 것은 주유는 왜 그렇게 미화시켰는지. 아무리 미화시켜도, 삼국지의 주유는 세상 돌아가는 것 정도는 눈치채는 인물이었죠. 주유도 사실은 바보로 나옵니다. 원작에서는 몇번이고 제갈공명, 유비등을 죽이려고 합니다. 노숙 등의 반대로 무산되죠. 어차피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닌데, 훗날 적이 될 것 정도는 예측했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호인으로 나와서, 웃기더군요. 저렇게 좋은 사람이 전쟁은 어떻게 하는지..나중에 주유가 피토하고 죽는 이유도 제갈공명에게 형주 빼앗기고, 열받고 분해서 죽는데, 뒷이야기는 모르겠다! 라는 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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