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영웅’, 2004년 ‘연인’에 뒤이어 세 번째로 대자본이 투입되어 2006년에 개봉된 장예모의 초대형 사극 ‘황후화’는 숨이 막힐 정도로 자극적인 황금색을 비롯한 원색의 영상과 거대한 스케일의 공간적 배경과는 정반대로, 추악한 권력 다툼 및 치정극이 일어나는 황궁의 이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황제 부부와 세 명의 왕자가 속한 황실 이외에도 태의의 가족이 얽히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갈등은 근친상간이라는 그리스 비극과 같은 코드까지 겹겹이 동원되면서 인간 본성의 권력 지향과 치졸함을 낱낱이 까발리고 있습니다. 비슷한 성격의 두 전작과 비교했을 때, ‘연인’은 순정 만화 수준의 삼각관계 멜러물에 불과했고, ‘영웅’은 폭군이자 독재자를 옹호하며 ‘강한 중국’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 반면, ‘황후화’는 ‘붉은 수수밭’ 이래 장예모의 초기작들처럼 중국의 전통적인 남성 중심의 봉건 사회를 고발한다는 점에서 우월합니다. 황후뿐만 아니라 궁녀들까지 모두 가슴을 절반 이상 드러낸 궁중 의상은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눈요깃거리로 작용하면서, 동시에 남성의 봉건적 권위에 밀려 수동적 존재에 불과했던 여성들의 차단된 욕망이 금방이라도 파열될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마저 상징합니다.
‘황후화’의 상징적인 비주얼 중 하나인 끝없이 이어진 궁중의 황금빛 복도는 시각적 쾌감과 더불어 폐쇄공포증과 같은 답답함을 유발합니다. 복도와 더불어 궁궐 전체를 수놓는 황금빛 국화는 황제의 권위와 권력을 상징하는데, 원걸이 황제와 처음 만나 모의 대결을 펼칠 때에는 은빛 갑옷을 입었다, 황후와 함께 찬탈을 도모할 때에는 황금빛 갑옷으로 의상이 바뀌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황제의 친위대의 상징인 검정색은 죽음과 동시에 역시 권력을 상징하는데, 황금색이 겉으로 드러나는 양성적 권력과 무력이라면, 검정색은 비밀스레 숨겨진 음성적 권력과 무력을 의미합니다.
11년 만에 장예모와 다시 작업하게 된 중국 출신의 공리, 홍콩 출신의 주윤발, 대만 출신의 주걸륜 등 중화권 스타들을 불러 모아 캐스팅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한데, 공리와 주윤발의 카리스마 넘치는 대립이 영화의 중심이기는 하지만, 활기 넘치는 원걸 왕자 역의 주걸륜보다 (‘원걸’이라는 이름부터 주걸륜을 위한 배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약한 인물이면서도 패륜의 중심에 서게 되는 첫째 왕자 원상 역의 유엽이 더욱 인상적입니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지나치게 강인하며 권력 지향적인데 반해, 원상은 나약하며 개인주의적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입니다.
하지만 ‘황후화’를 걸작으로 선뜻 꼽기에는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우선 황제가 황후를 독살하는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단지 애정의 결핍은 이유로는 부족하며, 후사 문제에 황후가 먼저 개입한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애첩을 안는 장면조차 제시되지 않는 것을 보면 황제는 권력 이외에는 탐닉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정도로 금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겠지만, 주윤발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맞물려 끝끝내 내면을 파악하기 힘든 인물로 남습니다. 그리고 봉건 시대의 어두운 측면을 고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궁중의 음모에 휘말려 짚단 넘어가듯 죽어가는 병사들의 모습이 시각적 쾌감으로 작용하는 것은 과거 중국 민중의 삶을 진솔하게 조명했던 장예모 답지 않아 다소 불편합니다.
최근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쌍화점’과 비교한다면, 규모와 갈등 관계의 중층성은 ‘황후화’가 우월하여, 궁중의 치정과 갈등이 가져올 수 있는 파란을 국가적 차원에서 다뤘다는 측면에서 ‘쌍화점’보다 나은 것이 사실입니다. 굳이 ‘쌍화점’이 나은 점을 찾자면 과감한 섹스 장면과 아기자기함 정도인데, 제작비 규모의 차이 여부를 떠나 갈등 관계를 중층적으로 창조하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연인 - 무협 멜러를 표방한 신파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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