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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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멈추는 날 - 철학과 상상력의 빈곤, 싱거운 결말 영화

제대로 된 SF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CG를 비롯한 첨단 특수 효과 기술의 발달로 구현 불가능한 비주얼이 완전히 사라지자, 1990년대까지 나름의 명맥을 이어오던 헐리우드의 SF 영화의 최근 신작을 보는 것은 도리어 가뭄에 콩 나듯 되어버렸고, 그 중 걸작은커녕 수작조차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냉전 시대에 핵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할 것 같은 거시적 위기를 심정적으로나마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우주에 대한 꿈을 불태우던 시절에는 외계인의 침략을 다루는 SF 영화들이 각광받았습니다. 그러나 테러와 불황을 걱정해야하는 현 시점에서 우주나 외계인을 상상하는 것은 치기어린 일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헐리우드가 주력하는 장르는 이제 판타지나 슈퍼 히어로 장르와 결합한 액션 영화이며 외계인 혹은 우주 탐사를 소재로 하거나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정통 SF 영화를 보고자 하는 관객들은 드뭅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외계인 클라투로, 제니퍼 코넬리가 외계 생물학자로 등장한 ‘지구가 멈추는 날’은 동명의 1951년 작품을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미국과 소련 양대 강국이 한반도의 두 개의 정부를 이용해 한창 대리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개봉된 작품으로, 당시 관객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으며, 지금도 SF 영화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50여 년 전의 원작이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어지간히 새롭거나 재미있지 않으면 관객이 반응하지 않다는 점을 리메이크작은 계산에 넣지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나온 정통 SF 영화이지만 결과물은 신통치 않습니다.

초반부는 그런대로 나쁘지 않습니다. 스피어와 클라투, 고트의 등장은 비주얼면에서 신비스럽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놓고 성선설과 성악설 사이에서 관객에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외계인의 선택이 결판나는 후반부는 허겁지겁 적당히 봉합되는 느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전쟁과 환경 파괴를 일삼는 60억의 인류를 절멸시킬지의 여부가 지극히 감성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논의된다는 것은 우스꽝스럽습니다. 인종과 혈연이 무관한 여성과 어린이가 미국식 가족주의를 받아들이자 외계인이 물러난다는 결론은 헛헛함만을 남길 뿐입니다. 제대로 된 SF 영화가 나오기 위해서는 특수 효과나 캐스팅보다는 풍부한 상상력과 인간성에 대한 심오한 통찰이 요구된다는 것을 증명한 반면교사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러닝 타임이 106분으로 짧은 편인데, 보다 충분히 내러티브를 확장하며 러닝 타임을 늘렸으면 나아졌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와 ‘헐크’의 제니퍼 코넬리의 스테레오 타입의 연기를 폄하하고 싶지 않습니다. 싱거운 각본 속에서 분투한 배우들을 탓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외계인에 대해 우호적인 여타 SF 영화들의 일반적인 어린이 캐릭터와 달리 외계인의 침략을 직감적으로 깨닫는 제이콥 역의 제이든 스미스와 ‘블레이드 러너’에서 안구 제조업자 한니발 추로 출연했던 제임스 홍이 더 인상적입니다. 특히 제이든 스미스는 ‘행복을 찾아서’에서 아버지와 함께 출연한 바 있는데, 윌 스미스와 제이다 핀켓 스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는 이야기는 다음 출연작부터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덧글

  • dcdc 2008/12/24 10:30 #

    sf의 근본적인 철학이 사라진한 sf영화라는 것도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살짝쿵 기대했지만 아쉬운 평들이 많이 들리는군요 OTL
  • 니케 2008/12/24 11:21 #

    처음에는 괜찮습니다. 흥미진진했구요. 그러나 마지막에 너무 후다닥 끝내서 별로임.
    처음에는 재밌어요~
  • 착선 2008/12/24 12:14 #

    예고편은 멋지던데....봐야할지 고민되는군요
  • 다크엘 2008/12/24 13:16 #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더군요.. 니케님 말씀처럼 너무 후다닥 끝낸 느낌이랄까요.
    지구의 운명이 일개인에게 달렸다....는 건 많은 영화 등지에서도 나오니 그리 신경쓰진 않았지만 좀 더 다르게 풀어나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 나르사스 2008/12/24 14:38 #

    왜 저 제목을 보면 자이언트 로보가 떠오를까요...
  • 잠본이 2008/12/28 20:23 #

    자이언트로보 OVA에서 저 영화의 원전 제목을 새치기했기 때문임 OTL
  • Luthien 2008/12/24 17:13 #

    라마와의 데이트 (...)를 기다리기가 점점 불안해집니다
  • 풍신 2008/12/25 01:21 #

    지구인과는 힘 자체가 월등히 다른 외계인의 침략의 경우,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많죠. 지구가 외계의 침략을 극복할 경우, 해결법 자체가 좀 허무한게 많으니까요.
  • 잠본이 2008/12/28 20:23 #

    이 영화는 아예 해결법 자체가 없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키아누 이 변덕쟁이'라는 말밖에 안나오는 OTL
  • 듀얼콜렉터 2008/12/25 05:28 #

    확실히 후반부로 갈수록 재미가 떨어지더군요. 이건 친구들과 공통된 생각인데 제이든 스미스의 캐릭터는 봐주기 힘들었습니다. 너무 판에 박힌 캐릭터라 보는동안 짜증이 들더라는. 꼭 그런식으로 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려 했는지 이상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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