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늦게 국내에 개봉된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2007년 작 ‘이스턴 프라미스’는, 기괴하고 초현실적인 크로넨버그의 연출작들과 달리, 전작 ‘폭력의 역사’처럼 이해하기 쉽고 현실적인 작품입니다. 과거의 행적과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살벌한 살인 기계인 남자 주인공을 비고 모르텐센이 연속으로 맡았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무슨 일이든 금세 터질 것만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작품의 분위기도 비슷해, ‘이스턴 프라미스’는 ‘폭력의 역사’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변주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크로넨버그의 영화의 단골 소재인 폭력과 섹스는 여전히 영화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섹스가 폭력적인 위계질서의 상징이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새묜은 온화한 인상과 달리 보스답게 대담하게 소녀를 성폭행한 인물이고, 즉흥적이며 감정적인 키릴은 동성애자라 여성과 동침할 수 없으며, 냉정하고 철두철미한 니콜라이가 키릴 앞에서 섹스를 시연한 다음, 운전사이자 경호원임에도 고용자 키릴보다 우위에 서는 설정은 인상적입니다.
폭력 장면은 오프닝부터 매우 강렬합니다. 장면의 횟수는 많지 않지만 폭력 장면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관객의 상상력을 활용하는 일반적인 영화 문법과 달리, 면도날이 목을 그어 살이 벌어지고 피가 분수처럼 샘솟는 장면이나 손가락이 뼈와 함께 절단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은 직선적인 크로넨버그 답습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비고 모르텐센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헤어 누드로 촬영한 사우나 격투 장면은, 관객 자신의 살이 찢기는 듯 지극히 생생하고 처절하여 근래에 보기 드문 명장면입니다. 모든 격투 장면에서 단 한 번도 총기류를 사용하지 않고 칼에만 의존한 것도 인상적인데, 신체 접촉 없이도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총이 아니라,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통해 날을 상대방의 몸에 밀어 넣거나 베어내야지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칼에 의존한 것은 매우 의도적입니다.
하지만 자극적인 폭력과 섹스만이 ‘이스턴 프라미스’의 전부는 아닙니다. ‘폭력의 역사’가 선과 악의 경계에 위치했던 주인공 톰(비고 모르텐센 분)의 이야기였던 것과 달리, ‘이스턴 프라미스’는 어둠의 영역에 위치한 니콜라이와 밝음의 영역에 위치한 안나가 교차하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100분의 러닝 타임을 통해 군더더기 없이 압축된 내러티브 속에서, 안나는 선과 속죄, 탄생과 육아를 상징하고, 니콜라이는 악과 범죄, 죽음과 살해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중반부의 중대 반전 이후, 전술한 니콜라이의 알몸 격투 장면은 고행을 통한 속죄에 다름 아닙니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고, 스케일이 크지 않으며, 유난히 실내 장면이 많아 연극적인 이 영화는 중반 이후 흑기사 판타지로 전향하고, 결말에서는 아름다운 동화로 수렴됩니다. 갱 영화라면 빠지지 않는 진중하지만 음흉한 창업자 보스와 온실 속의 화초 망나니 아들이라는 관습적인 구도 속에서, 보스보다 더욱 카리스마 넘치며 입체적인 개성의 운전사를 주인공으로 배치함으로서 독보적인 갱 영화로 거듭납니다. 2008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비고 모르텐센은 아르마니 정장이 잘 어울리는 냉철한 사나이를 열연합니다. 그의 러시아인 연기는 통역 없이 홀로 러시아를 여행하며 연구한 결과물입니다. 희극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뱅상 카셀도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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