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출신의 타셈 싱 감독의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이하 ‘더 폴’)은 현실과 환상의 세계 사이의 경계에 선 소녀가 그 경계를 허문다는 점에서 ‘오즈의 마법사’와 ‘판의 미로’와 같은 작품들을 직접적으로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해피 엔딩이라는 측면에서 ‘더 폴’은 ‘판의 미로’보다 낙천적이며, 주인공 소녀의 일상생활 속 주변 인물들이 환상의 세계에서 각기 다른 배역을 맡아 1인 2역으로 출연한다는 점에서 ‘오즈의 마법사’에 가깝습니다.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와 더불어 ‘발리우드’ 영화다운 군무와 노래 장면도 빠지지 않습니다.
로이와 알렉산드리아는 제목처럼 추락을 통해 부상을 입었으며, 소중한 연인과 아버지를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은 유사 부녀 관계뿐만 아니라 마치 연인처럼 친해지며 두 사람만의 이야기를 완성해나가는데, 나이가 어려 부정확한 화자인 알렉산드리아는 로이와의 친분을 통해 어른들의 세상을 엿보며 성장합니다. 로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 영웅 여섯 명은 마치 일본 특촬물의 전대물이나 ‘젠틀맨 리그’의 초능력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역할을 분담하는데, 각각 개성이 강하고 능력이 뛰어나 영화를 지루하지 않도록 이끌어 갑니다.
그러나 ‘더 폴’의 진정한 주인공은 현실 속의 로이나 알렉산드리아도, 환상 속의 여섯 영웅도 아닙니다.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와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의 정서와 건축물, 의상이 혼합되어 제시되는 화려한 원색의 다국적 비주얼입니다. 4년 간 28개국에서 촬영된, 생뚱맞을 정도로 초현실적인 비주얼은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 놓은 듯 자극적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성능의 대형 TV라 해도 극장의 스크린을 재현하는데 분명한 한계를 노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더 폴’이야 말로 그런 의미에서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할 영화입니다. 압도적인 황금빛 사막과 바닥이 투명하게 비치는 에메랄드 빛 바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건물들로 가득한 오밀조밀한 도시의 비주얼은 보기 드문 시각적 쾌감을 선사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처럼 경탄할 만한 비주얼이 GC에 거의 의존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더 폴’은 시각적 쾌감만으로 가득한 빈 깡통은 아니며 무명의 노동 계급과 유색 인종의 애환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영화’를 로이와 함께 지켜보는 결말은 ‘시네마 천국’을 연상시킵니다. 삽입된 실제 무성영화의 액션 장면들과, 촬영 도중 부상을 입었지만 환상의 세계에서 영웅으로 재탄생한 로이와 루이지(로빈 스미스 분)는, ‘더 폴’이 ‘영화’의 시원이었던 무성영화와 당시의 무명 스턴트맨에게 바치는 무한한 경의임을 웅변합니다. 오프닝의 로이의 추락 장면 역시 흑백 무성 영화에 대한 오마쥬입니다. 동시에 인도에서 캘리포니아로 노동 이민한 알렉산드리아의 가족이, 환상의 세계 속에서 노예였던 동생의 죽음으로 분기하게 된 오타 벵가(마커스 웨슬리 분)와 겹치는 모습은 유색 인종이 겪어야 했던 제국주의 시대의 애환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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