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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TS TWINS - LG 근성 스타의 계보 1 야구

DANDY TWINS - 꽃미남 스타의 계보’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얼굴로 야구한다’는 농담 겸 비아냥이 있을 정도로 잘 생겼으나 근성이 부족한 선수들이 많은 팀 컬러의 LG 트윈스이지만 원년 MBC 청룡 시절부터 근성 넘치는 스타 플레이어도 많았습니다.

현 한화 이글스 김인식 감독과는 동명이인으로 나이는 여섯 살 적은 청룡 원년 멤버 김인식은 2루수였는데, 새까만 얼굴과 168cm의 작은 키로 타석 몸쪽에 바짝 붙어, 몸에 맞는 공을 양산하던 그의 별명은 ‘베트콩’이었습니다. 유독 몸에 맞는 공과 인연이 깊은 김인식은 1982년 3월 27일 삼성과의 원년 개막전에서 연장 10회말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해 프로야구 통산 최초로 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고, 1984년에는 3연타석 몸에 맞는 공이라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몸에 맞고서라도 출루하는 선수였습니다. 1988년까지 현역 선수 생활을 했는데, 통산 타율 0.255로 특출한 것은 아니었으나, 1983년에는 114타석 무삼진에 시즌 전 경기 무병살타를 기록했고, 특히 원년부터 1987년까지 6시즌 동안 전경기인 606 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남길 정도로 성실하고 근성 넘치는 선수였습니다.

군 제대 이후 팀에 합류하느라 원년 시즌 초부터 출장하지는 못했지만 이광은도 ‘온달장군’이라는 별명처럼 근성 넘치는 우직한 선수였습니다. 이광은은 핫 코너인 3루수와 중심 타자를 맡았고, 외야수로 전업한 이후에는 주로 좌익수로 출장해 잠실야구장 담장을 넘어가는 상대 타구를 종종 걷어내는 진기명기를 연출했습니다. 애틀란타 브레이브즈가 원년 시즌 종료 후 내한해 친선 경기를 가졌을 때, 이광은은 투수로 등판해 승리투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배재고 재학 시절에는 5일 동안 59이닝을 던질 정도로 유명한 투수였지만, 프로 데뷔 이후에는 투수로 등판한 적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의 승부근성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 통산 100승과 200세이브를 동시에 거둔 한국 프로야구의 유일한 투수 김용수. 100승 200세이브 투수는 메이저리그에는 3명, 일본 프로야구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근성이라면 LG뿐만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로 남은 김용수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5년 청룡 유니폼을 입고 데뷔해 2000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방어율 2.98 126승 227세이브라는 전인미답의 기록 보유자인 김용수는 데뷔할 때에는 조용한 성격 탓에 별명이 ‘얌전이’였지만, 마무리 투수로 자리 잡으며 날카로운 구위로 타자를 압도해 ‘면도날’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LG의 전성기인 1990년대 중반 ‘제국의 파수꾼’을 거쳐 은퇴할 즈음에는 ‘늘 푸른 노송’으로 영구결번되었습니다. 1992년 좌골 신경통으로 신음하기도 했지만, 보란 듯 재활에 성공해 1993년에는 6승 26세이브로 부활했습니다.

김용수보다 한 살 적지만 프로데뷔는 같았던 정삼흠은 금테 안경이 눈에 띄는 차분한 외모와 달리 불같은 다혈질의 사나이였습니다. 1989년 스파르타식을 고수하던 배성서 감독의 지도방식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리며 항명하여 출장하지 못한 적도 있었지만, LG 창단 첫 해인 1990년에는 김용수와 보직을 바꿔 마무리로 8승 9패 23세이브, 한국 시리즈 전 경기 구원 등판 및 성공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시즌 내내 LG가 독주한 1994년에는 페넌트 레이스 최종전인 태평양전에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악착같이 완투하며 9회말 2사후 역전승으로 15승 고지에 올라, 김태원, 이상훈과 함께 15승 투수 3명 배출이라는 팀 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정삼흠은 당시로서는 드물었던 즉석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반드시 LG의 두 번째 우승을 이룰 것이라 팬들에 약속했고,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태평양 타선을 셧아웃시키며 완봉승을 엮어내 우승에 일조하며 약속을 지켰습니다.

박노준과 함께 아마야구의 아이콘이었던 김건우 역시 대단한 근성의 소유자였습니다. 1986년 데뷔 첫 해 18승으로 신인왕을 거머쥐었고, 1987년에도 12승으로 청룡의 포스트 시즌 진출을 견인하는 듯 보였지만, 시즌 막판 불의의 교통사고로 다시는 전성기의 구위를 회복하지 못한 비운의 스타였습니다. 그러나 김건우는 좌절하지 않았고, 1989년 다시 돌아와 마운드에 섰습니다. 구위는 예전 같지 않았지만 팬들은 그의 복귀만으로도 아낌없는 환호를 보냈으며 이후 그는 타자로 전업했다 1997년 또 다시 마운드에 선 후 은퇴했습니다. (계속)

DANDY TWINS - LG 꽃미남 스타의 계보


덧글

  • Hoyeol 2008/11/28 10:12 #

    항상 글 잘 읽고 있습니다 ㅎㅎ
    정삼흠 선수는 좀더 현역생활을 지속할수 있을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외로 빨리 은퇴하셔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네요
  • 윤경민 2008/11/28 10:43 # 삭제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
  • 와초우 2008/11/28 11:49 # 삭제

    잘읽었습니다. ^^
    정삼흠 선수의 금테 안경~ ㅋㅋ 추억이 새롭네요.
    노송은 아직 2군에 잘 계시는지..^^
  • gilpoto 2008/11/28 12:35 # 삭제

    허슬 플레이어 송구홍..
  • 동사서독 2008/11/28 12:47 #

    정삼흠 선수라면, 다음날 경기가 야간경기인줄 알고 선동열과 새벽까지 술 마시고 다음날 낮경기에 선발로 투입. 완투패했다는 일화가 생각납니다. (선은 완봉)
  • 2008/11/28 19:06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THX1138 2008/11/29 00:12 #

    정삼흠 선수 많이 좋아했어요 ㅎㅎ
  • 누노 2008/11/29 02:30 # 삭제

    정삼흠 선수 별명이 부엉이였나..암튼 위력적인 구질보다 코너윅이 좋고 두뇌피칭으로 장수할 스타일이었는데
    구단에서 은퇴종용 하는 바람에 너무 일찍 물러났습니다 아쉽습니다..
  • 2008/11/29 08:2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8/11/30 18:3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하늘깨움 2008/12/05 13:54 # 삭제

    아... 이광은,신언호 배터리였죠... 완전히 잊고 있었네요...
    어깨가 약하다는 평과 함께 좌익수에 머물렀던 그 선수가 철완으로 기억되는 투수였다는 사실을 후에 알고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반면에 심재학 선수 이전에 3루 빨랫줄 송구가 인상적이었던 신언호 선수도 함께 생각나구요...
    그러고보니 신언호-이광은 보다 신언호-하기룡이 유명했다고 하더군요...
    청룡 시절 하기룡 선수의 2게임 연속 완봉도 추억에 남아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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