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이 못 되어 재등장한 다니엘 크레이그 주연의 시리즈 두 번째 작품 ‘007 퀀텀 오브 솔러스’는 피어스 브로스넌까지 계승된 과거 시리즈와 완전히 결별하는데 성공합니다. MI6의 명령과 국익에 봉사하며 중간 중간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던 우아하고 느끼한 뺀질이 본드는, 개인적인 복수심과 제3세계 국민들의 삶을 생각하는 정치적 올바름을 우선하는 터프 가이로 완벽하게 변신합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시체로 넘쳐나며, 그의 얼굴과 몸에도 상처가 난무합니다. 한편으로는 ‘007’의 영향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과감히 개혁한 ‘제이슨 본’ 시리즈가 인기를 끌게 된 이유인 사실적인 액션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쫓기는 주인공이었던 ‘제이슨 본’ 시리즈의 수동적이며 방어적 입장의 액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능동적이며 공격적인 액션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오프닝부터 대사 한 마디 없이 시작되는 거친 자동차 추격전은 이탈리아의 비좁은 산악 지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후 본드의 조국 영국은 물론 오스트리아, 아이티, 볼리비아(극중 아이티와 볼리비아의 실제 촬영지는 파나마, 칠레, 멕시코 등)로 이어지는 액션은 스케일은 크지 않지만, 본드의 살이 찢길 때마다 스크린 너머 관객의 오금이 저릴 정도로 고스란히 고통이 전해져 매우 생생합니다. 스릴러로서의 요소도 제대로 갖추고 있어 중반까지의 전개는 군더더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숨 막히며 속도감 넘칩니다. 다만 전편 ‘007 카지노 로얄’을 보지 않았거나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면, 미스터 화이트(제스퍼 크리스텐센 분)나 펠릭스(제프리 라이트 분), 마티스(지안카를로 지아니니 분)와 같은 중요 등장인물의 동선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을 좇기 쉽지 않습니다. ‘007’ 시리즈에서 이처럼 전편과 후편의 서사구조가 직접 연결되는 것 또한 드문 일입니다.
본드의 잔혹한 복수극은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상실감에서 비롯된 것이고 '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연출했던 감독 마크 포스터는 미묘한 심리 묘사에 능하기에, 시리즈 그 어떤 편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멜러로서의 감성이 강화되었습니다. 다만 그 사랑이라는 것이 죽은 이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허무한 정서로 가득하며 따라서 새로운 본드 걸 올가 쿠릴렌코의 민첩하고 이국적인 매력을 십 분 살리지 못하는 것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결국 본드는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헤어나며, 미스터 화이트는 잡히지 않았고, 전세계적 조직 ‘퀀텀’의 실체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엔드 크레딧에서 ‘JAMES BOND WILL RETURN’이라 했으니 크레이그 본드의 세 번째 활약을 기대합니다.
007 카지노 로얄 - 새로운 본드의 탄생
네버랜드를 찾아서 - 절제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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