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래디에이터’에서는 음모가 횡행하는 고대 로마를, ‘블랙 호크 다운’에서는 군복을 입지 않은 소년병이 날뛰는 1993년의 소말리아를, ‘아메리칸 갱스터’에서는 흑인 마약왕이 판치는 1960년대의 미국을 다루며 작품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비주얼리스트 리들리 스콧 감독은, ‘바디 오브 라이즈’에서는 테러가 횡행하는 현재의 중동을 조명합니다. ‘킹덤 오브 헤븐’에서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의 근본인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 현재까지 지속되는 대립관계의 무의미함을 설파했기에, ‘바디 오브 라이즈’는 주제의식에서 현대판 ‘킹덤 오브 헤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바디 오브 라이즈’는 미국 패권주의와 중동의 테러리즘 사이에서 균형 잡힌 정치의식을 견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페리스의 상관 호프만은 현장과는 완전히 유리되어 안락한 책상에 파묻혀 어린 자식들에게나 매달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얻기 위해 부하마저 속이는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페리스는 호프만보다 요르단인 하니를 더욱 신뢰하게 되며, 미국인 동료보다는 이라크인 동료나 이란인 여성과 더욱 깊은 유대 관계를 맺습니다. 아랍 인 가정을 페리스가 방문하는 장면을 통해 아랍 인들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인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주인공 페리스도 임무를 위해 무자비한 살인을 서슴지 않는 비정한 인물이기에 ‘바디 오브 라이즈’는 선과 악의 이분법에서 탈피하고자 한 노력이 역력합니다.
그러나 비슷한 주제를 이미 다룬 ‘시리아나’에 비하면 깊이가 떨어지며 ‘뮌헨’만큼 절박하지 못합니다. 제목에서도 언급하듯 모두가 속고 속이며 반전을 거듭하지만, 막상 의외의 전개를 제시하는 것은 사디키(알리 술리만 분)가 등장하는 부분 정도뿐이며, 결말도 예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블랙 호크 다운’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한 번 제시되지만, 액션 영화라고 하기에는 매우 빈약합니다. 그나마 초반부 자동차와 헬기의 사막 추격전이 볼만 한 정도입니다. ‘007’ 시리즈처럼 다국적 공간을 배경을 하는 첩보 스릴러로, 최고의 비주얼리스트답게 중동의 풍광을 시적으로 아름답게 잡아내기는 하지만, 막상 김빠진 내러티브를 보완하기에는 무리입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분한 페리스라는 캐릭터도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자신이 분한 제3세계를 사랑하는 백인과 ‘디파티드’에서 연기한 비밀 요원에, ‘시리아나’에서 조지 클루니가 분했던 은퇴를 앞둔 CIA 요원을 덧입힌 것에 불과합니다. 잔뜩 살을 찌우고 흰머리를 여지없이 드러내며 의외의 분장을 한 러셀 크로우의 연기도 그다지 임팩트는 없습니다. 차라리 영국 출신의 배우 마크 스트롱이 연기하는 하니가 인상적입니다. 이는 배우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신선함이 떨어지는 캐릭터와 내러티브로 승부하려 한 시나리오의 문제입니다.
에이리언 - 여전히 유효한 걸작 SF 호러
블랙 호크 다운 - 원인은 없고 결과만 있다
킹덤 오브 헤븐 -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만 재미없는 기사담
아메리칸 갱스터 - 장르 역사에 남을 새로운 걸작
아메리칸 갱스터 - 두 번째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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