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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 - ‘비포 선셋’의 기묘한 한국 버전 영화

경마장을 전전하는 병운(하정우 분) 앞에 1년 전 헤어진 여자 친구 희수(전도연 분)가 나타나 빌려준 돈 350만원을 갚을 것을 요구합니다. 당장 돈이 없는 병운은 희수와 함께 서울 시내를 돌며 알고 지내는 여자들에게 돈을 빌립니다.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는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 하루 동안 함께 하며 돈을 돌려받는 독특한 과정을 그린 로드 무비입니다. 원작은 다이라 아즈코의 단편 소설로, 30대에 접어든 옛 연인이 하루 동안 함께 한다는 설정은 ‘비포 선셋’과 유사한데,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기보다 돈 문제가 얽히니 ‘비포 선셋’에 비해 창의적입니다. 하지만 영화 ‘멋진 하루’는 분명 많은 이야기가 있는 듯한 자신들의 과거(게다가 가장 인간을 초라하게 만드는 돈 문제까지 얽혀 있습니다.)에 대해 두 주인공의 입을 빌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으며, 회상 장면도 엔드 크레딧 이후에나 단 한 장면 삽입될 뿐입니다. 따라서 두 주인공의 과거가 궁금한 관객들은 대사 한 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스크린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멋진 하루’의 장점은 이윤기 감독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일상성입니다. 인공조명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자연광에 의존하여 촬영했고, 서울 시내 곳곳을 꼼꼼히 사전 조사하고 주인공들의 동선을 치밀하게 연구해 공들여 로케이션한 흔적이 다분합니다. 덕분에 일상 속의 공간 서울의, 오전부터 점심을 거쳐 오후와 초저녁 및 밤까지의 시시각각의 풍광의 변화가 아름답게 스크린을 채웁니다. 오프닝의 과감한 롱 테이크도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일상적인 배경 속의 등장인물들은 매우 일그러지고 비정상적입니다. 극중의 시간적 배경이 사람들이 나사가 풀리는 토요일이라 해도 병운이 돈을 빌리기 위해 만나러 다니는 인물들은 중반까지 하나 같이 정이 가지 않고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들에게 돈을 빌릴 정도의 친분인 병운 또한 정상적인 인간은 아니기에, 이런 남자를 사귀는 여자는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며 말리고 싶으며,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친구로조차도 사귀고 싶지 않은 형편없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병운과 희수가 학교에 들른 이후 비정상적인 인물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대책 없는 병운의 기행과 뻔뻔함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두 사람이 마지막 만나는 사람으로부터 인간적인 정을 느끼며 극장을 나서게 됩니다. 초반에는 기묘함으로 시작되었지만 한국적인 정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멋진 하루’의 매력적 정서입니다. 최근 불경기의 페이소스를 반영한 것 또한 내러티브를 더욱 사실적으로 이끕니다.

밀양’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 못내 부담스러웠다는 전도연의 선택인 ‘멋진 하루’의 연기는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과거 출연작에서 극단적으로 감정의 기복을 보이는 캐릭터를 통해 연기력을 과시한 전도연이었지만, ‘멋진 하루’에서는 ‘내지르는’ 연기 대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묘하게 변하는 섬세한 연기를 펼칩니다. 오전에 병운을 처음 만났을 때와 점심을 거쳐 오후로 가며 조금씩 풀어지는 표정 연기는 전도연이 캐릭터에 대해 얼마나 많은 분석을 임하고 연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하철 안에서의 눈물 연기도 매우 자연스러우며 인상적입니다.

상대역 하정우는 경력과 나이 모든 면에서 전도연에 밀리지만 결코 기죽지 않고 자신만의 영역을 꿋꿋이 연기합니다. 설정과 각본, 대사만을 놓고 본다면 전혀 애착이 갈 수 없는 캐릭터를 하정우가 아닌, 또래의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면, 하정우가 연기한 것처럼 귀엽고 매력적이며 설득력 있는 캐릭터로 만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멋진 하루’는 흥행작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로맨틱 코미디와 멜러 사이에서 어렵사리 줄타기를 하는데, 실소를 자아내게 하지만 관객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확실히 ‘터뜨려주는 장면’이 없으며, 영화적 감수성도 쿨하다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미적지근한 것이 사실입니다. 일상이란 미적지근한 것이고,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 감정을 과다하게 드러내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전제에서 철저히 현실적인 접근을 선택한 것으로 보이지만 흥행 감각이 떨어진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냉정히 유추해 성격이 극명하게 대조적인 병운과 희수가 과연 1년 이전에 사귈 수 있었을까를 돌이켜보면 더욱 회의적이며, 희망적 여운을 남기는 결말 속에서 만일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짐작한다면 ‘그렇다’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사랑을 현실적으로 묘사했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욱 가혹하기에 그렇습니다.

여자, 정혜 - 트라우마, 외로움, 그리고 치유


덧글

  • 시아초련 2008/09/26 10:45 #

    아! 이 영화!! 전도연씨 기대하고 있습니다!!
    웬지 예전 이영애씨가 친절한 금자씨에서 변신하신 것처럼, 이 영화도 전도연씨의 색다른 연기가 기대되요~
  • yucca 2008/09/26 15:28 #

    전도연은 정말 똑똑한 배우란 생각이 듭니다. 한 번 힘이 들어갔던 배우가 힘 빼는게 어려울텐데 페이스 조절을 참 잘하는 것 같아요. 어찌보면 하정우도 그런 면에서 영리한 배우란 생각이 들구요
  • 디제 2008/09/27 10:14 #

    시아초련님/ 전도연이야 말로 20~30대의 한국 여배우 중에서 가장 연기 잘하고 가장 변신 잘 하는 배우죠.
    yucca님/ 둘 모두 믿을 만한 배우인데... 각본은 다소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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