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 8년 만에 가을야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롯데의 호성적에는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올 시즌 팀에 합류한 외국인 선수 카림 가르시아의 대활약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홈런 29개로 2위, 타점 106개로 1위를 달리고 있는 가르시아는 작년까지 ‘이대호와 여덟 난장이’였던 롯데 타선을 일신해 단숨에 팀을 상위권으로 견인했습니다. 가르시아는 롯데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 단순히 개인 성적이 뛰어나기 때문만이 아니라 호방한 성격으로 팀 동료와 융화되고 삽겹살과 소주를 즐기며 한국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 6월 22일 LG전에서 1회초 만루홈런을 터뜨리고 홈으로 들어오는 롯데의 카림 가르시아.)
하지만 언론에서 가르시아를 부를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르는 단어는 바로 ‘용병’입니다. ‘용병’의 사전적 의미는 ‘지원한 사람에게 봉급을 주어 병력에 복무하게 함. 또는 그렇게 고용한 병사’입니다. 나라를 지키려는 애국심으로 무장한 의무병이 아니라 돈에 좌지우지된다는 뜻입니다. 백과사전의 ‘용병’ 항목은 첫 단락은 다음과 같습니다. ‘충성심이 부족하고 우수한 자질을 갖춘 자가 적은 단점이 있으나, 자국민의 보호 또는 부족한 병력의 보충을 위해서 고대로부터 흔히 사용해 오던 제도이다.’
가르시아와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간판스타 손민한과 이대호도, 가르시아처럼 연봉을 받고 뛰는 선수입니다. KBO에 등록된 프로야구 8개구단의 모든 선수들 중에서 연봉을 받지 않고 야구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습니다. FA로 다년 계약하는 선수들은 단순히 금전적 혜택뿐만 아니라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많은 연봉을 받기 원하며, 반면 히어로즈의 선수들은 올 시즌 전 연봉 협상에서 구단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연봉이 대폭 삭감되어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고, 이는 올 시즌 히어로즈의 몰락으로 직결되었습니다. 프로야구 선수가 자원봉사자가 아니라면, 연봉을 받고 야구한다는 이유로 ‘용병’이라 불리는 것은 부당합니다.
국적이 다르기에 ‘용병’이라 불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백과사전에서 언급된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프로야구 선수가 충성심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팀을 위해 희생할 줄 모르고, 성실하지 않으며 이기적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전술한 가르시아가 팀 공헌도가 떨어지는 이기적인 선수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타석에서 부진하면 방망이를 부러뜨리며 스스로에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국내 프로야구에 도입된 1998년 이래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며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국내무대를 거쳐 갔지만, 단순히 ‘용병’이라는 부정적인 어감의 단어만으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수들이 있습니다. 가르시아 이전에 롯데 팬들에게 최고의 외국인 선수였던 펠릭스 호세, 1999년 팀의 유일한 우승을 이끄는 등 7시즌 동안 한화에서 뛰며 신라면을 즐겼던 제이 데이비스, 팀의 이름과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 덕분에 ‘흑곰’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두산의 장타자 타이론 우즈 등의 대활약은 단순히 ‘용병’이라고 한정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단순히 올 시즌만 놓고 봐도, 한화에 덕 클락과 브래드 토마스가, LG에 크리스 옥스프링과 로베르토 페타니지가 없었다면 더욱 형편없는 팀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외국인 선수에 대한 한국 프로야구의 의존도는 매우 높습니다. 게다가 언급한 선수들은 기량뿐만 아니라 팀 공헌도와 성실성면에서도 돋보입니다.

(사진 : 팀 동료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는 LG의 크리스 옥스프링. 시즌 10승을 기록하며 외국인 선발 투수 중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으며 김재박 감독도 재계약을 원하고 있습니다.)
‘용병’이라는 칭호가 부당하다는 것은 단순한 역지사지를 통해서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데뷔했던 팀으로 복귀해 61번 등번호를 되찾은 LA 다저스의 박찬호나 연일 맹타를 휘두르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즈의 추신수가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팀에서 ‘용병’으로 대접받기를 바라는 한국의 야구팬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더욱 이해하기 쉬운 사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승엽입니다.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침몰시키는 결승 홈런을 터뜨리고 팀에 복귀한 이승엽에게 요미우리의 팬들은 한국어로 된 응원 구호 ‘이겨라, 이승엽!’으로 변함없이 성원했고, 이승엽은 이에 보답하듯 16일 요코하마전에서 3연타석 홈런을 뿜어냈습니다. 이런 이승엽이 ‘요미우리의 용병’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며, 과거 단일 민족 국가의 신화를 강조했던 한국 사회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어 각 부문에서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를 국적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인 어감의 호칭 ‘용병’을 사용하는 것은 재고해야 할 문제입니다. 아무리 스포츠 경기를 전쟁에 비견한다 하더라도 군인의 의미를 지닌 ‘용병’이라는 단어의 어감은 지나친 것이 사실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선수’라고 부르되, 장기적으로 더욱 좋은 호칭이 있다면 바꾸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사진 : 6월 22일 LG전에서 1회초 만루홈런을 터뜨리고 홈으로 들어오는 롯데의 카림 가르시아.)
하지만 언론에서 가르시아를 부를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르는 단어는 바로 ‘용병’입니다. ‘용병’의 사전적 의미는 ‘지원한 사람에게 봉급을 주어 병력에 복무하게 함. 또는 그렇게 고용한 병사’입니다. 나라를 지키려는 애국심으로 무장한 의무병이 아니라 돈에 좌지우지된다는 뜻입니다. 백과사전의 ‘용병’ 항목은 첫 단락은 다음과 같습니다. ‘충성심이 부족하고 우수한 자질을 갖춘 자가 적은 단점이 있으나, 자국민의 보호 또는 부족한 병력의 보충을 위해서 고대로부터 흔히 사용해 오던 제도이다.’
가르시아와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간판스타 손민한과 이대호도, 가르시아처럼 연봉을 받고 뛰는 선수입니다. KBO에 등록된 프로야구 8개구단의 모든 선수들 중에서 연봉을 받지 않고 야구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습니다. FA로 다년 계약하는 선수들은 단순히 금전적 혜택뿐만 아니라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많은 연봉을 받기 원하며, 반면 히어로즈의 선수들은 올 시즌 전 연봉 협상에서 구단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연봉이 대폭 삭감되어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고, 이는 올 시즌 히어로즈의 몰락으로 직결되었습니다. 프로야구 선수가 자원봉사자가 아니라면, 연봉을 받고 야구한다는 이유로 ‘용병’이라 불리는 것은 부당합니다.
국적이 다르기에 ‘용병’이라 불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백과사전에서 언급된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프로야구 선수가 충성심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팀을 위해 희생할 줄 모르고, 성실하지 않으며 이기적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전술한 가르시아가 팀 공헌도가 떨어지는 이기적인 선수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타석에서 부진하면 방망이를 부러뜨리며 스스로에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외국인 선수 제도가 국내 프로야구에 도입된 1998년 이래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며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국내무대를 거쳐 갔지만, 단순히 ‘용병’이라는 부정적인 어감의 단어만으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수들이 있습니다. 가르시아 이전에 롯데 팬들에게 최고의 외국인 선수였던 펠릭스 호세, 1999년 팀의 유일한 우승을 이끄는 등 7시즌 동안 한화에서 뛰며 신라면을 즐겼던 제이 데이비스, 팀의 이름과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 덕분에 ‘흑곰’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두산의 장타자 타이론 우즈 등의 대활약은 단순히 ‘용병’이라고 한정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단순히 올 시즌만 놓고 봐도, 한화에 덕 클락과 브래드 토마스가, LG에 크리스 옥스프링과 로베르토 페타니지가 없었다면 더욱 형편없는 팀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외국인 선수에 대한 한국 프로야구의 의존도는 매우 높습니다. 게다가 언급한 선수들은 기량뿐만 아니라 팀 공헌도와 성실성면에서도 돋보입니다.
(사진 : 팀 동료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는 LG의 크리스 옥스프링. 시즌 10승을 기록하며 외국인 선발 투수 중 최고의 성적을 올리고 있으며 김재박 감독도 재계약을 원하고 있습니다.)
‘용병’이라는 칭호가 부당하다는 것은 단순한 역지사지를 통해서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데뷔했던 팀으로 복귀해 61번 등번호를 되찾은 LA 다저스의 박찬호나 연일 맹타를 휘두르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즈의 추신수가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팀에서 ‘용병’으로 대접받기를 바라는 한국의 야구팬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더욱 이해하기 쉬운 사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승엽입니다.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침몰시키는 결승 홈런을 터뜨리고 팀에 복귀한 이승엽에게 요미우리의 팬들은 한국어로 된 응원 구호 ‘이겨라, 이승엽!’으로 변함없이 성원했고, 이승엽은 이에 보답하듯 16일 요코하마전에서 3연타석 홈런을 뿜어냈습니다. 이런 이승엽이 ‘요미우리의 용병’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며, 과거 단일 민족 국가의 신화를 강조했던 한국 사회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어 각 부문에서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를 국적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인 어감의 호칭 ‘용병’을 사용하는 것은 재고해야 할 문제입니다. 아무리 스포츠 경기를 전쟁에 비견한다 하더라도 군인의 의미를 지닌 ‘용병’이라는 단어의 어감은 지나친 것이 사실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선수’라고 부르되, 장기적으로 더욱 좋은 호칭이 있다면 바꾸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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