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 나이트’의 첫 번째 포스팅에서 조커가 배트맨의 코스튬을 입은 사람을 처형하는 동영상이 알 카에다를 연상시킨다고 언급했는데, 다시 보니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는 부시와 빈 라덴의 적대적 공생 관계를 연상시켰습니다. 고담 시의 범죄를 응징하기 위해 강력한 폭력을 동원하는 배트맨의 방식이 조커를 부른 것이라는 알프레드(마이클 케인 분)의 대사처럼, 배트맨이 없었다면 조커가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존재 자체가 아이러니인 배트맨이야말로 진정한 악의 화신일지도 모른다는 역설을 정립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두 사람이 폭력을 통해 자신의 방식을 관철한다는 점과 고담시의 시민들로부터 ‘괴물’, 즉 비정상으로 구분된다는 점도 유사합니다. 배트맨은 질서를 추구하고, 조커는 혼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대비되는 듯 보이지만, 조커가 추구하는 혼돈은 조커의 입장에서는 그가 원하는 방식의 질서라 할 수 있으니, 둘 모두 질서를 추구하는 셈입니다. 조커를 죽이지 못하는 배트맨이나, 배트맨과의 싸움에서 가장 강력한 희열을 느끼는 조커의 관계는, 마치 부시와 빈 라덴의 관계의 알고리즘 같습니다. 물론 빈 라덴을 고의적으로 체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부시와 조커의 검거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배트맨은 다르지만, 더욱 강하고 사악한 적으로 인해 존재의의가 생긴다는 점은 공통점입니다. 만일 조커를 비롯한 모든 악당이 사라진 고담시에서 배트맨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획책한 부시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돌이켜 보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조커를 비롯한 악당이 모두 사라진다면, 배트맨은 ‘어둠의 기사’가 아니라 ‘사냥이 끝난 뒤 삶아지는 사냥개’로 전락할 것입니다.
투페이스 역시 배트맨의 또 다른 자아입니다. 중반까지 배트맨 못지않게 선을 강력히 신봉하며 악과 맞서 싸워나가는데, 브루스 웨인/배트맨은 자신의 역할을 합법적으로 대신하는 하비 덴트/투페이스에게 넘겨줄 것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확실히 악을 응징합니다. 실제 영화에서 그렇게 되었을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겠지만, 만일 하비 덴트가 끝끝내 사적인 복수심을 품지 않았다면, 고담 시의 어둠을 뚫고 활약하는 배트맨은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했을 것이며, 밝음의 영역에서 합법적으로 악을 응징하는 하비 덴트가 진정한 영웅으로 인정받았을 것입니다. 물론 조커라는 변수로 인해 하비 덴트는 투페이스라는 악인이 되지만, 만일 조커를 제대로 통제했다면, 투페이스로의 변신은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비 덴트에서 투페이스로의 갑작스런 변신은 선과 악에 대한 열망은 의외로 상당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 둘의 차이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가 정의의 화신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돌변한 것이 개인적인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해보면, 배트맨 역시 그와 같은 위험성이 전무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스파이더맨3’에서 스파이더맨이 심비오트로 인해 악인이 되었던 것처럼, 배트맨 역시 어떤 계기로 인해 악인으로 돌변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IMAX의 대화면은 많지 않은 액션보다는 도시의 원경을 잡는 배경 샷이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코믹북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다크 나이트’의 진정한 연원은 느와르인데, 촬영 장소가 알 카포네의 도시 시카고였다는 점이 더욱 의미심장했던 IMAX였습니다. 물론 기왕 IMAX를 시도할 바에, 모든 장면이 IMAX였으면 더욱 나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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