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픽사의 새로운 장면 애니메이션 ‘월E’는 냉정히 말해 참신함과는 거리가 먼 작품입니다. 거창하게는 ‘시지프의 신화’와 ‘노아의 방주’에서 가깝게는 영화 ‘나는 전설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AI’, ‘매트릭스’, ‘에이리언’, ‘아일랜드’ 등 수없이 많은 SF 영화에서 등장해 눈에 익은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초반부 공간적 배경이 되는 황량한 지구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사이버 펑크물을 연상시킵니다. 타이틀 롤 월E도 ‘조니5 파괴 작전’의 조니5와 닮았습니다.
하지만 ‘월E’를 참신함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폄하하기에는 아깝습니다. 우직하리만치 캐릭터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월E’의 저력은 월E의 빛나는 개성으로 인해 초반부터 빛을 발합니다. 슬랩스틱과 마임에 가까운 초반 장면들은 대사가 거의 없지만 지루함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며 주인공 월E에 대한 감정 이입을 촉발시킵니다. 소심하고 성실하며 호기심이 넘치고 사랑을 갈망하는 앙증맞은 월E의 개성은 어지간한 실사 영화의 실제 배우가 연기하는 인간 캐릭터보다 입체적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월E의 신상에 어떤 문제라도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며 동정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중반 이후 인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인상적인 캐릭터는 없으며 도리어 이브와 청소 로봇 등 인간이 아닌 캐릭터들이 더욱 입체적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혐오하는 바퀴벌레조차 귀엽게 표현한 것은 쥐를 주인공으로 한 픽사의 전작 ‘라따뚜이’에서 한 발 더 진보한 것입니다. 로봇의 인격에 대해 철학적으로 심각하게 접근하지 않고 가볍게 다루면서도 한편으로는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도 남깁니다. 블록버스터처럼 화끈하고 자극적으로 터뜨리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소소한 재미로 접근하는 것이 ‘월E’의 매력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아닌 캐릭터들로 가장 인간적인 주제인 사랑을 다뤘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름이 아니라면 남녀 구분이 가지 않는 로봇들이, 사랑에 빠지고 스킨쉽을 원하는 순간을 표현하는데, 영화 속 인간의 사랑의 장면을 빌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어린이도 함께 관람하는 가족용 애니메이션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엔드 크레딧과 함께 올라오는 에필로그와 ‘월E’가 시작되기 전 상영되는 단편 애니메이션 ‘프레스토’ 또한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아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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