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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를 못 벗어난 올림픽 중계 방송 일상의 단상

베이징 올림픽 개막 4일차가 지나고 있습니다. 경기가 없던 개막식 날을 제외하면 매일 같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선전을 거듭하는 한국 선수단은 전 국민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 경기를 중계하는 공중파 방송 3사의 중계는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이 전 국민의 한풀이와 같았던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과 달리, 이제 국민들은 금메달로 대리만족을 얻지 않습니다. 그만큼 생활수준이 나아지기도 했으니 여유를 갖고 경기 자체를 즐기고 있습니다. 금메달 획득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멋진 경기를 보여주느냐 하는 스포츠 자체의 매력을 즐길 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를테면 지난 토요일 사격 10m 공기권총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진종오나 일요일 여자 역도 53kg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윤진희에게 네티즌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은메달에 머물러 아쉽다’ 식의 반응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진종오가 ‘은메달이라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을 대서특필하며 은메달을 영광보다는 부끄러움의 대상으로 몰아갔고, 윤진희의 은메달 시상식은 생중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경기장 현장의 캐스터와 해설자는 둘째 치고, 베이징 현지 스튜디오의 아나운서들에서조차 ‘금메달’이라는 단어를 밥 먹듯이 운운하며 금메달이 아니면 무의미한 것처럼 몰아가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금메달에 매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주기만을 바라는데, 왜 언론은 아직도 금메달에만 목매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올림픽 정신이 참가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금메달 획득으로 바뀌기라도 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감정이 앞서 흥분하는 중계진 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승부에 중요한 상황이 닥치기만 해도 캐스터와 해설자 모두 흥분해 고함을 지르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시청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계는 방송이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품위조차 망각한 것입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해 방송에 부적합한 비속어를 사용하거나,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관계조차 맞지 않는 문장을 말하거나, 똑같은 말을 중언부언하는 해설자들의 행태 또한 방송에 대한 기본적 소양이 의심스럽습니다. 시청자보다 먼저 흥분하는 캐스터와 해설자의 이런 태도 역시 금메달에만 집착하는 방송사의 풍토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방송 3사의 중복 중계 또한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축구, 야구와 같은 인기 종목이나 개인 및 단체 종목의 결승전을 방송 3사가 동시에 중계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중복 편성할 필요가 없는 예선전들조차 방송 3사가 중복 편성하는 것은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기본 편성표가 무시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중복 편성으로 인해 한국 선수단 이외의 다른 나라의 경기는 거의 볼 수 없는 것 또한 문제입니다. 이를테면 8월 10일 일요일 밤 NBA 초호화 멤버의 리딤팀의 미국과 야오밍이 이끄는 홈팀 중국의 남자 농구 경기는 농구팬의 상당한 관심을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방송 3사 중 어느 곳에서도 중계하지 않았습니다. 단체전이 벌어진 체조 경기는 거의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올림픽에 참가한 국가가 200개가 넘는데 철저히 한국 선수단의 경기만 중계하는 것 또한 높아진 시청자의 눈을 따라가지 못하는 방송사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중계진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식의 방송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8월 10일 한국과 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경기에서 전반 연속골을 실점해 0:2로 끌려가며 졸전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KBS의 캐스터는 ‘2점 뒤지고 있지만 잘 하고 있다’는 식으로 부진한 선수들을 감싸기 급급했고 해설자 역시 날카로운 비판과 대안 제시를 포기한 채 가재는 게 편인 듯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3S 정책의 일환으로 스포츠가 악용되며 ‘조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기뻐해주십시오’라고 금메달 획득이 역사적 쾌거인 양 흥분하던 시절과는, 국민들의 의식이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이제 국민들은 한국 선수단의 금메달 획득만을 위해 올림픽 중계를 지켜보지 않습니다. HD 화질과 현장감 넘치는 음향 역시 시대가 달라졌음을 실감케 하는 요소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방송 3사의 중계 행태는, 과연 언제쯤 국민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부응할 것인지 의문입니다.



덧글

  • 원더바 2008/08/11 23:55 #

    저희 부모님은 남현희 선수 은메달에 "어이구 저 바보, 몇십초 못버텨서 금을 내주냐" 하고 험한소리 하시더군요. 그와중에 저는 "그래도 잘싸웠으니 수고" 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
  • 천국소년 2008/08/12 00:07 # 삭제

    중복중계는 정말 안타깝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금에 집착하는 모습이 적어졌죠~ 오늘 펜시의 은도 최승돈 아나운서는 계속 값진 은메달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금에 목멘다기보다는 은,동도 좋지만 금이 더 좋잖아요. 아마 선수들도 목표는 금일것입니다. 선수 그 누구도 올림픽 참가 자체에만 의의를 두는 선수는 없을 것입니다.
  • 시엔 2008/08/12 00:08 #

    중복중계는 정말 올림픽에 관심없는 사람들의 시청권을 제대로 뺏고 있죠....
    그리고, 금메달지상주의.... 요거 정말-_- 오죽하면, 왕기춘 선수가 은메달따고 울고있는지 이해가 가더라구요.
  • WeissBlut 2008/08/12 00:32 #

    전 그래서 안봅니다 아예.
  • LaJune 2008/08/12 00:58 #

    제가 올림픽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를 잘 집어 써주셨군요. ㅠ_ㅠ
  • 城島勝 2008/08/12 06:07 #

    관객과 선수들의 입장은 다르겠지요. 분명 선수들은 금메달을 절실히 바랬을 겁니다.

    문제는 선수 본인이 아닌 관객 - 특히 방송사 - 들이 멋대로 그걸 평가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금은 추켜 올리고 은 이하는 다 휴지 취급하는...디제님 말씀처럼 국민들, 특히 신세대 들은 금메달 편식증에서 많이 벗어 난 듯 싶습니다만.
  • 홍월영 2008/08/12 06:43 #

    축구의 경우는 좀 선례가 있어서.... 신문선이었나 강신우였나 헷갈리는데, 조목조목 지적하다가 선수가 거의 매장당할 뻔한 적이 있죠. (괜히 엽전근성인가요, 싸이 테러로만 그치면 다행이겠는데 욕설전화에 뭐에...) 그래서 축구판에서는 특정선수의 언급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합니다. 이용수 위원의 발언수위 조절은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시청자가 제일 잘못하는 거라서요...
  • Crows 2008/08/12 09:42 # 삭제

    대동감입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구요- 미국에 있습니다만, 이런식의 방송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미국게 좋다는게 아니라, 올림픽 전경기를 즐기는 분위기와, 좀 해설다운 해설과, 아나운서다운 방송을 부탁하는겁니다.

    올림픽은 대리전쟁성격을 띈다는 월드컵과는 다른 겁니다. 월드컵중계를 '차분하게'하는 미국을 보며, 축구문화를 모르는 나라답다는 생각을 거꾸로 하곤 합니다만...

    퍼가도 된다면 출처를 밝히고 퍼가겠습니다.
  • 디제 2008/08/12 09:58 #

    출처를 명확히 하시고 링크를 걸어주신다면 퍼가셔도 무방합니다.
  • Crows 2008/08/12 10:06 # 삭제

    제 싸이에 명확히 출처밝히고 올렸습니다. (펌이라고 쓰고). 자주 들르겠습니다. 흥미로운 글들 감사드리고요.
  • rumic71 2008/08/12 12:43 # 삭제

    포털 댓글 보면 네티즌도 장난 아니던데요?
  • 샤이™ 2008/08/12 14:16 #

    사회가 각박하니 금메달에 하나에 목을 메는군요... ㄱ-
  • 김지선 2008/08/12 17:47 # 삭제

    맞습니다. 올림픽은 자국 선수들의 선전 뿐 아니라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기량과 실력을 보여주는 자리고 이제 우리 국민들도 즐기는 스포츠로 올림픽을 임하는데 , 유독 방송은 아직도 60 ~70년대를 못벗어나 금매달 환상에만 빠져 있는것 같습니다. 저는 체조 경기를 즐겨 보는 편인데, 오늘 우리나라 남자 선수들이 결승에 진출해 경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방송에서 한 5분 해주다 말더군요. 내일 여자 경기는 아예 해주지 않겠지요. 국민들의 의식수준은 현제를 살아가는데 방소 수준은 언제쯤 성숙 될 수 있을까요
  • 쵸코소라빵 2008/08/12 22:13 #

    특히 중복 중계는 정말 도를 넘은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 선수들 경기는 애시당초 기대하지 않았지만, 우리 나라 선수들 경기도 막 자르더군요;;; 남현희 선수가 준결승전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는데 3방송사가 다같이 유도 결승으로 돌아선 것도 그랬지만, 오늘 남자 체조 단체전은 정말 허무했습니다. 링 세계 1위인 중국 선수도 보고 싶었는데, 곧 우리 선수들이 특기인 도마를 할 차례라면서 그쪽으로 카메라를 돌려서 (아직 한국팀은 나오지도 않았는데도;;) 그 선수 경기는 거의 못 봤습니다. 그러더니 정작 도마 차례에는 갑자기 3방송사가 레슬링을 틀어주더군요 -_-);;;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가끔 궁금해집니다.
  • THX1138 2008/08/14 11:18 #

    이젠 올림픽 중계가 지겨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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