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역시 ‘영웅본색2’를 극장에서 본 후에 홀딱 반해 이후 ‘영웅본색’을 보게 되었지만 비디오테이프와 dvd로 접했을 뿐이었습니다. 비디오테이프와 dvd로 ‘영웅본색’을 수십 차례 반복 감상하며 과연 이 작품을 필름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만, 결국 개봉 22년 만에 필름으로 보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대사와 장면을 암기하다시피 했지만 필름으로 보는 ‘영웅본색’은 완전히 다른 영화였습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주윤발, 적룡, 장국영의 클로즈업된 얼굴은 그들이 단순히 잘 생겨서 이거나 소위 ‘후까시’만 잡는 것이 아니라 연기력으로 승부하며 강렬한 아우라를 내뿜습니다. 95분의 러닝 타임 동안 감정의 과잉은 있을지언정, 내러티브의 낭비는 결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개과천선하려 하지만 끊임없이 유혹당하는 송자호(적룡 분)의 갈등과, 아버지의 죽음의 원인이 형 송자호에 있다고 믿는 자걸(장국영 분)의 분노와, 동생처럼 여긴 아성(이자웅 분)에게 배신당해 복수를 갈망하는 소마(주윤발 분)의 감정선과 행동은 일말의 억지도 없으며 설득력이 충분합니다. ‘영웅본색’이 신화로 남은 이유는 단순히 총을 난사했고 유혈이 낭자했기 때문이거나, 지금의 감각으로 보면 신파나 동성애에 가까운 사나이들의 우정 때문이 아니라 내러티브가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중국에 반환된 홍콩의 야경을 바라보며 홍콩의 낙일을 아쉬워하는 주윤발의 명대사 ‘이걸 놓치다니 아쉬워’는 오우삼 감독과 주윤발 모두 홍콩을 떠날 것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물론 그 대사를 뒷받침하는 아름다운 홍콩의 야경 또한 ‘영웅본색’의 매력입니다. 구슬픈 하모니카 가락 등으로 변주되다 엔드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주제가 ‘당년정’ 역시 쓸쓸한 사나이들의 서글픈 싸움을 뒷받침합니다. ‘당년정’의 가사는 영화 종반부에서 장렬히 산화한 주윤발의 시점에서 씌어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영화로 만날 수 있는 주윤발보다는 이 노래를 부른 고 장국영을 떠올리게 해 더욱 안타깝습니다.
한 번 더 극장을 찾아도 시원치 않을 ‘영웅본색’이지만 굳이 아쉬움을 지적하면 무협지를 연상시키는 대사를 직역하지 않고 의역한 것은, 원래 무협물의 칼을 총으로 치환한 ‘영웅본색’임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의 의리가 사라졌다’ 보다는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다’가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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