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년 생으로 이란 출신의 만화가 마르잔 사트라피가, 아트 슈피겔만의 '쥐'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한 자전적인 동명의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페르세폴리스’는, 질곡으로 가득한 이란의 현대사와 원작자 겸 감독인 자신의 인생사를 절묘하게 병치시킵니다. 군더더기가 거의 없이 빠른 전개에 만화와 느와르 영화를 혼합한 듯한 흑백 영상도 독특합니다. 팔레비나 호메이니 같은 실존 인물의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코란이나 이슬람과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기에 이란의 현대사나 이슬람 사회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극중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미국 애니메이션 ‘달리아’를 보는 것처럼 지적이면서도 냉소적인 소녀의 성장이 유머러스하면서도 솔직담백하기에 묘사되기에 시대상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관람에 큰 무리는 없습니다. 아디다스와 나이키, 비지스와 아이언메이든, ‘록키’와 같은 헐리우드 영화와 ‘고지라’와 같은 일본 영화, 브루스 리에 대한 숭배 등 곳곳에 드러나는 감독 본인의 다양한 대중문화 취향을 확인하는 잔재미도 있습니다.
‘페르세폴리스’에서 제시되는 이란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매우 암울한 사회로 묘사됩니다. 챠도르 착용이나 서양 문물 금지(수도 테헤란의 간디 거리에서 팝 앨범을 판매하는 암거래상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금지곡이 난무해 헤비메탈 음반이 소위 ‘빽판’으로 거래되거나 청계천에서 포르노 비디오 테잎을 몰래 판매하던 군사 정권 시절 한국의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애 금지나 심지어 여성은 길거리에서 뛰어서는 안 된다는 비합리적인 법률을 강요하는 이란의 상황은 과연 실제로 저럴까 하는 의문마저 들 정도로 어이없습니다. 마르잔의 방황이 결국 정착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이란의 상황 역시 별로 개선되지 못하고 마무리되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깁니다. 이란에서의 상영은 불가능하겠지만 프랑스어가 아닌 페르시아어 더빙을 기대했는데 일말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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