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언맨’의 예고편을 접했을 때까지 연기파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히어로물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우려되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의 ‘Rock'n Roll Dance’의 기타 리프의 원곡인 AC/DC의 ‘Back In Black’으로 시작되는 ‘아이언맨’은 최근의 히어로물의 진지한 분위기에 정면으로 반기를 듭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슈퍼맨 리턴즈’, ‘배트맨 비긴즈’ 등 최근 일련의 히어로물들은 하나같이 정의가 무엇인지, 자신이 악을 응징할 자격이 있는지, 심지어 스스로의 존재 이유마저 고뇌하는 무거운 주제의식을 드러냈습니다. 개인의 자아정체성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대중 사회에서 히어로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기에 이들의 고뇌는 매우 사실적이었으나 그와 동시에 히어로의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힌 결과를 야기했습니다. 그야말로 초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인간들과 똑같은 고민을 한다는 점에서 속된 말로 찌질해보였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아이언맨’은 내러티브의 개연성을 무시하더라도 진지함이나 고뇌, 찌질함을 깨끗이 배제시키며 경쾌함에 주력하는 미덕을 과시합니다. 주인공 토니는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천재이며 재벌입니다. 신무기를 개발하며 유명인사로서 주위의 주목을 즐기던 그는 자신이 소유한 회사의 무기의 희생양이 된 이후 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히어로가 됩니다. 이 과정은 주인공 토니의 즉물적인 성격만큼 설득력이 떨어지며 그의 사회적 지위와 그에 따른 의무는 ‘배트맨 비긴즈’의 브루스 웨인과 다를 바 없지만 토니는 이를 무시하고 자신이 내키는 대로 행동합니다. 심지어 히어로라면 금기시해야 할 철칙마저 결말에서 말끔히 무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이언맨’의 매력 포인트인데 놀랍게도 멋지게 주효합니다. 속편을 적극적으로 암시한 이 영화에서 제대로 된 아이언맨이 등장하기까지는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며 액션의 스케일도 큰 편은 아니지만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제리코 미사일과 아이언맨의 대결을 기대했지만 그런 장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이언맨의 능글맞은 캐릭터와 그로 인해 유발되는 유머러스한 장면들이 더욱 매력적입니다. 이는 연기력이 보장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호연에 의한 것입니다.
‘아이언맨’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여타의 히어로물에 비해 매우 기계적이라는 것입니다. 토니가 아크 원자로의 인공심장으로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그가 아이언맨의 중세 기사의 갑옷과 같은 수트를 입는 것도 모두 초능력이 아니라 기계의 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외계인이거나 벌레에 물린 것이 아니라 기계의 힘에 의존하는 토니의 모습은 이미 언급한 ‘배트맨 비긴즈’의 브루스 웨인과 유사하지만 그보다 더욱 상세히 기계적인 관점에서 히어로의 탄생에 접근합니다. 아이언맨의 수트의 개발 과정은 폴 버호벤의 걸작 ‘로보캅’의 초반부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끝으로 ‘아이언맨’의 엔드 크레딧 이후에는 본편에 등장하지 않았던 신 캐릭터가 등장해 속편을 직설적으로 홍보하는데 신 캐릭터로 분한 배우는 엔드 크레딧에도 이름이 없지만 상당한 네임 밸류를 보유한 중견 배우입니다. 극장에서 관람한다면 극장 직원이 주는 눈치를 꿋꿋히 극복해 필히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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