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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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 걸스 - 직선적이며 한국적인 감수성의 수작 일본 영화 영화

폐광 위기에 놓인 후쿠시마의 이와키 탄광촌에, 온천수를 이용한 하와이안 센터의 오픈과 함께 훌라 댄스를 추는 훌라 걸스가 결성됩니다. 도쿄에서 온 훌라 댄스 선생 마도카(마츠유키 야스코 분)는, 오빠와 어머니가 모두 탄광촌에서 일하는 기미코(아오이 유우)를 비롯한 소녀들을 가르치지만 주변의 냉대와 몰이해로 인해 어려움을 겪습니다.

실화에 기초한 이상일 감독의 2006년 작 ‘훌라 걸스’는 탄광촌을 배경으로 다양한 가치관의 충돌이 빚어내는 갈등과 해소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1960년대 일본의 고도 성장기 속에서 쇠퇴하는 2차 산업과 새로이 성장하는 3차 산업의 갈등 속에서, 보수적인 전통과 자유분방함이 충돌하고, 탄광촌과 도쿄가 충돌하며, 기미코의 어머니(후지 준코 분)와 마도카, 그리고 기미코의 3세대가 충돌합니다. 표면적으로는 탄광촌의 인간 승리 정도로 단순히 해석될 수 있지만 이면을 살피면 겹겹이 쌓인 갈등의 층위가 작품의 깊이를 더해 상당한 감동을 자아내는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여성의 힘에 의해서라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흔히 일본영화를 접하면서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 느낄 수 있는 감정적 위화감이 적다는 것도 ‘훌라 걸스’의 장점인데, 혼네(본심)와 다테마에(겉치레)가 다른 일본인 특유의 정서구조와 달리, 기쁨과 슬픔을 직선적으로 표출한다는 점에서 공감하기 쉽습니다. 후반부에 감정 묘사가 지나쳐 내러티브의 속도를 떨어뜨리고 신파로 흘러가는 약점으로 작용하지만, 이처럼 순박하다 싶을 정도로 감정에 충실한 작품은 일본 영화에서 흔치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작사 씨네콰논의 이봉우 대표와 조선인 학교를 다닌 이상일 감독이 한국인이고,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자본주의에 물든 도시가 아니라 1960년대의 탄광촌을 다루기 때문인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영화 속에서 석탄을 ‘검은 다이아몬드’라고 부르는 것처럼, ‘탄광촌의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농담까지 회자될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탄광이 1980년대 말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일거에 몰락하게 된 한국의 현실과도 유사하며 극중의 후쿠시마 사투리는 강원도 사투리처럼 들릴 정도로 매우 비슷합니다. 최근 영화를 비롯한 일본 대중 문화는 도시적이고 쿨한 감수성으로 무장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훌라 걸스’는 이를 역행하여 직선적인 순박함으로 승부합니다. 일본에서 ‘훌라 걸스’가 2007년 일본 아카데미에서 11개 부문을 수상하는 등 호응을 얻은 것도 현재 일본 대중문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순박함이 독특함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하나와 앨리스’에서, 데뷔하기 이전부터 배운 발레 솜씨를 뽐낸 아오이 유우이지만 ‘훌라 걸스’에서는 20여명의 다른 훌라 걸스와 더불어 힘이 넘치는 타히티 춤 오테아를 클라이맥스에서 선보입니다. 아오이 유우는 전형적인 미인형과는 거리가 멀지만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다양한 연기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또래의 일본 청춘 스타들과는 명백하게 구분되는데 ‘훌라 걸스’에서도 이 같은 장점이 돋보입니다. 널리 알려진 아오이 유우가 국내 개봉 당시에는 전면에 부각되었지만 사실 진짜 주인공은 마도카 역의 마츠유키 야스코입니다. 기미코 못지않게 마도카도 성장하는데 이 과정이 설득력 있었던 것은 마츠유키 야스코의 호연 덕분입니다. 변희봉과 이미지가 비슷한 이토쿠 키시베의 진지하면서도 우스꽝스런 연기도 일품이며,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단골 테라지마 스스무는 고정된 이미지를 그대로 활용하며 영화에 녹아듭니다.

‘훌라 걸스’가 개봉되었을 때, 주인공이 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주변의 냉대를 꿋꿋이 극복하여 자아를 성취한다는, 그야말로 일본의 뻔한 기획 영화라고 속단하여 관람하지 않았는데, 최근 할인으로 풀린 dvd를 구입해 감상하고는 필름으로 접하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로맨스가 배제된 상황에서도 코미디와 드라마를 통해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훌라 걸스’는 이를 멋지게 충족시켰기 때문입니다. 무려 2장이나 동봉된 서플 디스크는 일본 영화 dvd 답지 않게 매우 충실한데 ‘훌라 걸스’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들이 영화의 안무를 담당해 강훈을 반복하는 진지한 장면에서 극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마츠유키 야스코와 아오이 유우가 함께 춤추는 귀중한 장면까지 볼 수 있습니다.

69(식스티 나인) - 반항마저 유쾌한 청춘

덧글

  • 도발나라 2008/03/25 13:35 #

    이번에 할인 판매로 초판을 구했습니다.
    주말에 느긋하게 서플까지 봐야 직성이 풀리겠습니다그려.
    그리고, 매번 좋은 글 감사합니다. ^_^
  • 제절초 2008/03/25 13:52 #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역시 후쿠시마 사투리였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1인칭은 '오레' 라고 하는 심플함. 1인칭으로 '오레' 외의 다른 말을 쓰는건 도쿄에서 오신 마도카 선생 뿐이었죠.(...)
  • 디제 2008/03/26 09:56 #

    도발나라님/ 서플이 풍부하고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
    제절초님/ 그 마도카 선생도 후반부에 가면 기미코와 사투리를 흉내내며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
  • THX1138 2008/03/26 10:01 #

    시네콰논에서 봤는데 관객이 저 포함 남자분 한명이었던게 기억에 남아요 ㅎㅎ
  • 디제 2008/03/27 10:07 #

    THX1138님/ 시네콰논은 언제나 일본영화도 볼 수 있고 자리도 있다는 점에서 좋은데 관객이 적어서 망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 홍양 2009/12/18 21:56 #

    아오이유우는 그 훌라 댄스를 '호노카아 보이'에까지 써 먹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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