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돈가방의 행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잔인한 인간 본성의 노출이라는 점에서 ‘파고’를 비롯한 코엔 형제의 기존 작품들과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중간 중간 엿보이는 섬뜩한 블랙 유머 역시 그들의 전매특허인데, 초반부 안톤과 주유소 노인이 벌이는 목숨을 담보한 동전 던지기 게임은 가슴 졸이는 긴장감 속에서도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코엔 형제답습니다. 동전 던지기 게임 장면 이외에도 광기 넘치는 살인마 안톤 쉬거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금세 폭발할 것만 같은 폭력을 지연시키며 긴장감을 배가시키면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데 관객은 이런 장면에서 웃어야 할 지 분노해야 할 지 판단을 내리기 힘든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유머 감각은 코엔 형제의 영화들에 익숙하지 않다면 느끼기 힘들 것이며 만일 그렇다면 배경 음악마저 거의 사용하지 않는 건조함이 더욱 인상적일 것입니다. 르롤린 모스와 안톤 쉬거의 중반부의 총격전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데 코엔 형제의 데뷔작 ‘블러드 심플’을 연상시키는 피범벅의 힘 있는 장면들의 연속입니다.
싸움에는 일가견이 있는 추격자와 추격당하는 자가 동일시되는 것은 스릴러에서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전개 방식이며 우연히 맞은 횡재는 결국 횡액이 되고 만다는 교훈적인 주제 역시 평범한 것입니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뜬금없는 제목에 숨겨진 것과 같이 코엔 형제는 1980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보안관 에드의 입을 빌어 이미 더욱 잔인해져만 가는 마약 관련 범죄와 연쇄 살인에 대해 개탄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21세기 초반인 지금에는 1980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범죄는 더욱 지능적으로 변화하고 잔혹해지고 있는데 코엔 형제는 나이가 든 사람이 과거와 비교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잔학무도한 범죄가 발생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살인 행각 그 자체의 묘사는 생략하며 상상에 맡긴 채, 살인의 의미를 곱씹으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르롤린과 안톤의 대결은 예상치 못한 엉뚱한 방향으로 결말을 맺게 되며 헐리우드의 전형적인 방식과 거리가 먼 엔딩은 당혹스러움마저 안깁니다. 편집이나 연출에 있어서는 매우 세련되며 독특한 연출 방식이 돋보이지만 그들만의 재기발랄함이 사라지고, 코엔 형제도 나이를 먹었음을 숨길 수 없는 것인지 미국 사회에 대한 우려라는 모범생적인 주제는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거머쥔 하비에르 바르뎀의 광기 어린 연기는 몸서리치게 하는데 돈 때문이 아니라 살인 그 자체에 원칙을 세워놓고 즐기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아메리칸 갱스터’에서 악질형사 트루포로 등장했던 조쉬 브롤린은 성격은 다소 다르지만 여전히 끈질긴 인물로 등장합니다. 토미 리 존스는 출연분량이 많지 않으며 활약도 미미하지만 감독의 주제의식을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표출합니다. 의외의 캐릭터로 등장한 우디 해럴슨은 ‘내추럴 본 킬러’의 카리스마는 온 데 간 데 없이 진정한 코믹 캐릭터이자 맥거핀으로 등장합니다.
밀러스 크로싱 - 코엔 형제의 갱스터 느와르 재해석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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