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대 소녀의 임신이라는 주제로 정면 승부하는 ‘주노’는 사회적이거나 윤리적 시각에서 한 발 작 물러나 일견 가벼운 코미디로 승부합니다. 상당히 부담스러운 소재를 다루는 방식으로는 매우 적절하면서도 영악한 것인데, 그를 위해서 주인공 주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숙한 아이로 묘사됩니다. 공포 영화와 락을 즐기는 주노는 매우 지적이어서 ‘심슨 가족’의 리사 심슨의 실사판처럼 보이는데 원치 않는 임신을 비관하거나 이 때문에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등 의존적인 모습을 노출하지 않고 시종일관 당돌하고 꿋꿋한 모습을 견지하며 영화를 이끌어 갑니다. 물론 아직 미성숙함도 남아 있어 마크와 바네사 집에 불쑥 찾아간다거나 마크와 미묘한 분위기가 된다든가 하는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도 매력적입니다. 결국 아이의 행방과 함께, 인간의 성숙함이란 나이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사실 ‘주노’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한국적인 감수성이나 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우선 10대가 임신을 하고 학교에 다니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애당초 미성년자의 섹스가 금기시되어 있고 사회적으로도 전혀 인정을 하지 않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구인광고지에 입양 광고가 나오는 일도 없는데,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온정적인 성격이 강한 한국인의 특성 상 10대가 임신을 해 낙태하지 않고 출산을 결정하더라도 입양을 시키기보다 고아원에 (몰래) 맡기는 쪽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혈통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미국과 같이 입양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물론 미국이라 해도 모든 10대 미혼모가 주노와 같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며 극중에서 초음파 진단 기사가 말한 것처럼 무책임한 쪽도 많겠지만 말입니다.
타이틀 롤 주노를 연기한 엘렌 페이지는 보호본능을 자극했던 ‘엑스맨 - 최후의 전쟁’에서의 키티와는 판이하게 다른 강인하고 독립적인 캐릭터를 자연스레 연기합니다. 엘렌 페이지와 마찬가지로 ‘엘렉트라’에서 슈퍼 히로인이었던 제니퍼 가너가 엄마를 열망하는 여성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채롭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노의 아버지로 출연한 것이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조나 제임슨 편집장 역의 J. K. 시몬즈인 것도 우연치고는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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