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가신 감독이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연출한 ‘명장’은 그의 전작 ‘첨밀밀’ 등의 멜러 영화를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매우 사실적이며 처절한 전쟁 영화입니다. 동일하게 이연걸 주연이었으며, 중국 정부의 지원 하에 엄청난 전쟁 스펙타클을 과시한 장이모우의 ‘영웅’과 비슷한 작품이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와이어 액션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며 전투 장면의 연출 방식 또한 기존의 중화권 영화들의 과장된 스타일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흙먼지 가득한 누런 색 위주의 배경 속에서 사지가 마구 잘리고 대포에 맞아 살점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시커먼 군인들의 모습은 ‘카게무샤’나 ‘란’과 같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전쟁 영화들을 오마쥬한 듯 보입니다. 결정적으로 ‘명장’의 전투 장면이 사실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중화권의 여타 전쟁 영화들이 십 수 세기 이전을 배경으로 하며 상상력을 자의적으로 대입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여 관객의 관대함을 이끌어냈던 것에 반해, ‘명장’은 19세기 중반의 근대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상상력이나 과장이 개입될 여지가 애초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명장’의 전투 장면은 대포와 칼, 소총과 활, 참호와 공성전이 맞물려 근대의 고풍스러움과 현대 기계 문명 사이에서 미묘하게 충돌이 일어나는 시대적 분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역시 이연걸이 출연했으며 동시대를 다룬 판타지에 가까운 무협영화 ‘황비홍’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명장’의 주제의식은, 전란에 빠진 백성을 구하는 대의명문과, 함께 싸우다 죽기로 맹세한 의형제의 형제애 중에서 어떤 것이 중요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의형제라는 개념은 ‘삼국지’ 전반을 잠식할 정도로 매우 중국적인 주제인데, (따라서 극중에는 세 주인공의 의형제를 가장 중국적인 예술이라 할 수 있는 경극으로 비유하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전쟁이라는 소재와 대의명분과 의형제라는 주제에 충실하기에 매우 남성적인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영화의 주제는 대의명분과 형제애는 일맥상통하는 것이며, 헐벗고 가난한 약자에 형제애를 발휘하여 포용한다면 바로 그것이 진정한 대의명분이라는 다소 상투적인 모범 답안에 도달합니다.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잔혹한 전쟁 스펙타클에 인민해방군이 엑스트라로 참여할 정도로 중국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유는, 과거 청조에 비해 현재의 중국이 안정되어 살만해지고 올림픽까지 치르게 된 것은 모두 공산당 정부 덕분이라는 프로파간다를 암암리에 심어주기 위함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상당한 흡인력을 발휘하는 전투 장면 위주의 중반부까지는 호흡이 빠르지만 후반부부터는 정치적이면서도 사적인 인간관계에 집중하면서 다소 지루해지는 감이 있습니다. 특히 결말부는 지나치게 시간을 끄는 느낌이 강합니다. 결말의 공간적 배경이 전장이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면 누구라도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데, 예측 가능한 결말을 내놓으면서도 쭈뼛거립니다.
이연걸, 유덕화, 금성무 세 배우의 연기는 다른 출연작들에 비해 매우 무겁고 비장한데, 특히 악역으로 출연('리쎌웨폰 4')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이연걸이 러닝 타임 내내 고뇌하는 내면 연기를 선보인 것은 흔치 않습니다. 단신으로 적진에 잠입해 영웅이 되고 싶어한 유덕화의 모습은 곧 개봉할 '삼국지 - 용의 부활'에서 그가 연기한 조운의 예고편 같습니다. 금성무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아무리 지저분한 분장을 해도 맑고 큰 눈 덕분인지 여전히 20대 초반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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