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에 나타난 괴물과 그에 비롯되는 재난을 1인칭 시점으로 집요하게 매달리는 ‘클로버필드’는 예고편에서 공개된 것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영화적으로는 빈약합니다. 전개되는 상황과 결말은 이미 예고편과 본편 오프닝의 자막에서 스포일러로 드러낸 것이며, 극단적인 핸드 헬드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는 관객에게 영상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괴물의 정체도 거의 노출하지 않습니다. 중간 중간 잠깐씩 괴물을 노출하고 결말에서 어느 정도 궁금증을 풀어주지만 인간과 거미를 혼합한 듯한 괴물의 디자인은 참신하거나 카리스마 넘치지도 않으며 개별의 인간을 공격하는 작은 괴물은 ‘에이리언’의 페이스허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롤랜드 에머리히의 ‘고지라’의 참패를 의식했지만 그렇다고 ‘고지라’를 뛰어넘을만한 면이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괴수 재난 영화에서 기대하는 스케일과 스펙타클은 충족되지 못한 채 끊임없이 괴물의 주변을 맴돌다가 그대로 결말을 맺기 때문에 본편은 못보고 외전만 본 느낌입니다.
UCC 방식으로 필름 전부를 채운 아이디어를 내세울 수 있지만 가짜 다큐멘터리 방식의 호러 독립 영화로 화제가 되었던 ‘블레어 윗치’에게 진 빚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미지의 침입자로 인해 파괴되는 생활 터전을 묘사하는 내러티브는 ‘우주전쟁’과 ‘미스트’의 깊이를 찾아볼 수 없이 가볍습니다. 뉴욕이 공격을 당해 시민들이 패닉 상태가 되고 도시가 아비규환에 빠지는 것은 9.11 테러를 연상시키는데, 가급적 이러한 의심에서 빨리 헤어나고자 괴물이 원인이라는 것을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확인하며 9.11의 악몽에서 관객을 벗어나게 하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9.11에 대한 미국인의 강박을 증명하는 듯합니다.
예고편에서 암시된 결말과 영화의 스타일에 대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별로 놀라거나 어지러움을 느끼지 않고 킬링 타임 영화로는 무난하게 즐겼지만, 영화는 반복 감상해야 더욱 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개인적인 원칙과는 거리가 먼 영화여서 그다지 다시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결말이 허전하여 (엔드 크레딧 이후에도 추가되는 장면은 없습니다.) 이런 장르에 대해 비교적 관심을 보이는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의 입소문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클로버필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성공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당분간 ‘클로버필드’의 아류작 몇 편의 등장을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태그 : 클로버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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