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메이크에 가까운 재해석작 ‘혹성 탈출’ 이후 ‘빅 피쉬’부터 ‘유령 신부’와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이르기까지의 팀 버튼의 영화들은, 그가 초창기에 ‘배트맨’과 ‘가위손’에서 보여주었던 기괴함은 그런대로 유지했지만 암울함은 약해지고 대신 재기발랄함이 부각되면서 다소 부드러운 세계로 옮겨간 것이 아닌가 하는 중평을 얻었습니다. ‘화성 침공’과 ‘슬리피 할로우’에서만 해도 남아 있던 팀 버튼의 잔혹함은, 그가 나이를 먹어감과 더불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다소 성급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페르소나 조니 뎁과, 다섯 작품 연속으로 출연시킨 실질적인 배우자 헬레나 본햄 카터와 함께 돌아온 ‘스위니 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이하 ‘스위니 토드’)를 통해, 올해 쉰이 된 팀 버튼은 끔찍하리만치 과격한 잔혹함으로 젊음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과거 ‘오즈의 마법사’와 ‘사랑은 비를 타고’처럼 가족 전체가 즐기던 뮤지컬이, 최근에는 ‘시카고’와 ‘드림걸즈’처럼 성인 취향으로 바뀌는 추세였는데, 팀 버튼은 ‘스위니 토드’를 통해 가장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유혈이 낭자한 고어에 뮤지컬을 조합한 실사 영화를 내놓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미 팀 버튼은 자신이 제작, 각본을 담당한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직접 감독을 맡은 ‘유령 신부’를 통해 호러 스타일의 뮤지컬을 실험한 바 있는데 ‘스위니 토드’를 통해 원작 뮤지컬에 사방으로 마구 피가 튀는 것도 모자라 인육을 먹는 극단적인 고어적 표현을 강화하여 덧입히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사실 ‘스위니 토드’는 바로 그 고어적 성격과 뮤지컬 스타일, 둘 중 하나만 코드가 맞지 않아도 꺼려질 만한 작품입니다. 비현실적으로 어두운 배경에 과장된 붉은 색을 사용하여 유혈 장면을 만화적으로 표현했지만 상상력이 지나치게 풍부해 리얼하게 받아들이거나 영화에 짓눌리면 어지간한 호러 이상으로 곤혹스러운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인들이 좀처럼 익숙해지기 힘든 장르인 뮤지컬이라 앞뒤 없이 노래가 튀어나오는 생뚱맞음에 적응하지 못하면 다소 뻔한 스토리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치정 고어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혼성과 독특함에 초점을 맞추면 충분히 만화적 유혈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생뚱맞은 노래들이 코믹하게 수용될 것입니다.
연쇄 살인과 인육이라는 금기시되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관객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점도 눈에 띕니다. 스위니가 연쇄살인을 시작하면서 깔리는 경쾌한 듀엣곡이나 헬레나 본햄 카터의 솔로로 둘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부분의 유일한 낮 장면은 관객이 짓눌리지 않고 즐길 수 있도록 고심 끝에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가위가 아니라 면도칼은 든 조니 뎁의 모습은 ‘가위손’의 꽃미남 에드워드로부터 20년은 늙어 보이는데, 추하게 주름 진 얼굴에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그의 연기는 좀처럼 듣기 힘들었던 그의 노래와 더불어 독특했으며, 이전까지 팀 버튼 영화에서 보여준 가벼운 장난기 섞인 기괴함을 가볍게 뛰어넘은 것입니다. 만일 작가들의 파업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이 취소된 가운데, 골든 글러브에 뒤이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면 그의 시상식 소감을 들을 수 없어 대단히 아쉬울 듯합니다. 다크 서클이 강조되는 분장도 개의치 않는 듯 대범한 헬레나 본햄 카터는 다음 영화에 과연 얼마나 더욱 혐오스런 역할로 등장할 지 기대됩니다. 검사 터핀 역의 알란 릭맨과 그의 충실한 부하 비들 역의 티모시 스펠은 영국의 중견 배우들답게 무게감 있으면서도 비뚤어진 캐릭터들로 작품의 중심을 잡았고, ‘보랏’으로 실제 카자흐스탄인이 아닌가 의심받았던 샤샤 바론 코헨은 이번에는 이탈리아인을 사칭하며 짧고 굵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사타구니가 툭 불거지는 독특한 의상은 샤샤 바론 코헨 다웠습니다.
빅 피쉬 -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한 팀 버튼의 항변
찰리와 초콜릿 공장 - 여전히 기괴하면서도 유쾌한 팀 버튼 월드
유령 신부 - 심리 묘사가 돋보인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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