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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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서 - 신극장판의 영화적 정합성 애니메이션

원작이 별도로 존재하는 영화의 경우 원작과 어떤 관계를 정립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소설이나 희곡, 만화,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제작할 때 원작의 기존 팬들만을 대상으로 제작되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기존의 팬들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들 모두가 극장으로 나온다고 해도, 원작을 모르는 새로운 관객들을 극장으로 유인하지 못하는 한 소위 ‘대박’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기존 영화의 속편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전편을 보지 못한 채 속편만 봐서는 영화의 내러티브를 이해할 수 없다면, 그 영화는 새로운 관객을 끌어 모으는데 실패해 흥행에 재미를 보기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톨킨의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았는데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면, ‘반지의 제왕’ 극장판은 영화적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만일 그런 이에게 ‘톨킨의 소설을 보지 않았다면 영화에 대해 논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하거나 ‘원작을 챙겨보지 않았으니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응한다면 영화라는 예술 장르의 독립성을 무시한 넌센스이며 폭언입니다. (물론 ‘반지의 제왕’은 매우 훌륭한 영화이기 때문에 원작 소설을 잃지 않아도 영화를 보는데 별 지장이 없으며 사례를 들기 위해 거론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원작이 존재하는 영화의 경우, 원작을 어느 정도 재현했느냐에 초점을 맞춰 관람하며, 원작의 재현도가 떨어질 때(즉, 영화가 원작과 다른 설정이나 상황을 제시하며 독창적인 해석을 시도할 때) 이를 이유로 비판하는 것 역시 영화의 장르적 특수성을 납득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 ‘반지의 제왕’의 원작의 열렬한 팬이, 글로핀델이 등장하지 않고 파라미르가 절대 반지에 관심을 보이는 등 원작 소설과 다른 영화만의 해석에, 아쉬움을 표현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원작을 훼손했다’는 식의 과격한 평가를 내린다면 독립적인 예술 장르로서의 영화의 지위를 부정하는 발언이 됩니다.

소설, 희곡, 만화, 애니메이션과 영화는 다릅니다. 소설이나 희곡에서 단 몇 줄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등장인물의 복잡미묘한 심리를 영상 예술인 영화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등장인물의 심리를 단순히 배우의 연기에 의존할 수 있지만, 카메라 워킹이나 조명, 편집 등으로 영상화할 수도 있는 것이 영화입니다. 즉, 영화는 영화만의 방법론이 있으며, 한 편의 영화는 120분 안팎의 러닝 타임 안에서 스스로 완벽하게 내러티브를 완결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를 관람해도 이후 원작을 다시 참고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영화는, 영화로서의 정합성을 상실한 범작에 불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반게리온 서’(이하 ‘서’)는 TV판 애니메이션에 빚을 지고 있지만 극장판으로서의 독립성을 지키는데 성공한 수작입니다. ‘움직이는 그림’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TV판과 극장판은 언뜻 보기에 동일해보이지만 화면의 크기와 사운드의 질, 그리고 러닝 타임이 질적으로 다릅니다. 이후 세 편의 극장판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에서 수많은 암시와 설정이 뿌려지기는 하지만 이는 기존의 TV판의 팬들이라 해도 쉽사리 짐작하기 어려운 것들이며 TV판과 얼마나 다른 내러티브로 전개될지 예측을 불허하는 상황입니다. 6화 분량의 TV판을 98분의 러닝 타임으로 압축했지만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하고 속도감 넘치게 전개되었으며 기존의 TV판의 복잡한 세계관과 설정을 알지 못하는 관객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영화로서의 정합성을 훌륭히 사수했습니다.

지난 일요일 오후 강변 CGV에서 ‘서’를 관람했는데 좌석이 매진된 상황에서 2/3 정도의 관객들이 엔드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우타다 히카루의 주제가 ‘Beautiful World’를 끝까지 다 듣고 ‘에반게리온 파’의 예고편까지 관람하고 일어서며, 엔드 크레딧 중간에 퇴장하지 않아 감격적이었습니다. 일본의 슈퍼 로봇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이 처음으로 국내에서 정식으로 상업 개봉하여 매우 뜻 깊지만 화면을 억지로 좌우에 맞춰 영상의 위아래가 잘리는 강변 CGV 8관의 영사 방식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제4사도 사키엘이 손의 빔 포를 발사해 자위대를 궤멸시키는 장면이나 이후 사도의 십자가 모양의 폭발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잘린 것은 옥에 티였습니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서’ 총력 리뷰

덧글

  • 알트아이젠 2008/01/22 09:08 #

    저같은 경우에는 Tv총집편과 후일담을 담은 구 극장판 데스앤리버스만 봤습니다. 그렇기에 어떤면으로 서를 감상하는데 Tv판에 대한 제약이 덜하다고 할 수 있는데,정말 기대했던것이상으로 재미있더군요. 물론 Tv판을 보고 비교하면서 보는것도 더 재미있겠지만 신극장판만봐도 충분히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 듀얼배드가이 2008/01/22 09:28 #

    언젠가 북미에서도 상영해주면 좋겠지만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것과 상영한다 해도 영어더빙의 압박때문이라도 보기 힘들듯 하네요.
  • SilverRuin 2008/01/22 09:41 #

    밸리에서 왔습니다.
    이어진 글까지 잘 읽었어요. 오늘 오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 나르사스 2008/01/22 10:17 #

    저는 중반에 살짝쿵 졸다가 라미엘이 나올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 도지비론 2008/01/22 13:10 #

    저는 나름대로 에바팬이다보니 기억속의 TV판과 비교하면서 볼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번 극장판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완성도라고 생각하지만)
  • 쏘닉 2008/01/22 13:17 #

    화면이 잘렸다니 클레임감인데요 ;;
  • 그라드 2008/01/22 14:07 #

    강변 가지 말아야겠네요;;
  • 강설 2008/01/22 14:21 #

    잘 읽었습니다. 확실히 tv판을 충실히 본 팬들+새로온 관객들이라는 목표로 잘 재정립한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이전에 있던 장면을 삭제하고 원래 있던 장면을 비쥬얼적으로 발전시킨(예를들면 네르프와 지오프론트,초호기가 폭주할때나 6사도가 기하학적으로 변형하는 모습, 막판에 포지트론 라이플 등등)것도 인상적이었구요.
  • 지나가다가... 2008/01/22 14:46 # 삭제

    에바는 작년에 굉장히 재밌게 봤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들도 많았습니다.

    모든것을 신지에 초점을 맞춘 만큼 신지를 둘러싼
    다른 이벤트들을 다 잘라버렸으니까요.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자칫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은 단순히 신지가 에바타고
    날고긴다는 내용-수많은 이들을 낚시하게 했던 내용-으로 빠질수도 있을것 같아서
    안타깝더군요.

    애초에 토우지와 원펀치 대결의 원인도 추측할수밖에 없을 뿐더러 가출 이벤트는 존재여부조차 모를테고...
    뭐 그래봤자 극장판 파프리카 보다는 친절합니다만(-_-;)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보기엔 다소 왜곡 될 우려가 있지않나 싶더군요.


  • 누렁이 2008/01/22 15:04 #

    그런데 정합성이란 말은 무슨 뜻이지요? 한자어인가요? 한자로는 어떻게 쓰는지...
  • shesay 2008/01/22 15:26 # 삭제

    안녕하세요 shesay community 입니다.

    - 회원님의 블로그 내용 중 [에반게리온 서 - 신극장판의 영화적 정합성]이(가)
    shesay의 '오늘의 블로그 [블Go紀]'에 소개 되셨습니다.

    - 게재관련 문의는 [shesay 블Go紀(news@shesay.co.kr)] 입니다!!

    "그녀의 수다는 음악이다 - shesay community"
  • 레이군 2008/01/22 16:02 # 삭제

    에바 극장판에 영화적 정합성을 따지기는 좀 그렇다고 생각하네요. 어차피 원작이나 지금 극장판이나 다 (거의) 같은 스탭들이 같은 제작사와 제작자, 같은 각본가 같은 감독에 의해서 그냥 「재구성」혹은 「재창조?」된 작품이니까요. 실제로 예전 데스앤 리버스나 엔드오브에바는 그냥 원래 에바팬들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 작품인데 흥행을 안한건 아니었으니까요. 예로 드신 소설, 게임, 희곡의 영화화와 에반게리온의 극장판은 좀 성격이 다르다는 느낌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신극장판 서 같은 경우도 (저는 아직 안봤지만) 원작을 보지 않고 재미없다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반응은 좀 곤란하다고 생각중입니다만, 뭐 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셨으니 .. 중요한 얘기는 아니겠죠. 다만 정합성을 따질 필요가 없는게 아닐까 .. 라는 생각입니다. 어차피 에반게리온의 극장판은 에반게리온의 TV판을 떼어놓고는 굉장히 곤란한 작품이니까요. 색다른 해석이랄까 원작을 망쳤다랄까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TV판 만든사람이 만든거니까..
  • 착한쿠님 2008/01/22 16:09 #

    저도 오늘 관람하고 왔답니다. 진짜 크레딧에 예고편까지 단한사람도 일어나지 않고 봐서 기분좋게 봤어요.
    내용도, 원작을 여러번 본사람도 지겹지 않고, 처음보는사람도 어렵지 않게 잘 만들어진거 같았답니다.
  • SAGA 2008/01/22 21:58 #

    벌써 개봉했군요. 2월에 개봉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ㅡㅡ;;; 으음, 서둘러 보러 가야겠군요. 정말 기대했던 작품이니 반드시 봐야겠습니다.
  • 디제 2008/01/23 09:25 #

    알트아이젠님, 도비지론님, 강설님, 착한쿠님/ 동감입니다. ^^
    듀얼배드가이님/ 그래도 아동용이라 하기 힘든데 일본어 더빙 + 영어 자막 상영분도 있지 않을까요...
    SilverRuin님/ 즐거운 관람 되셨기를 바랍니다. ^^
    나르사스님/ TV판에 너무 익숙해지셔서 그런 것이 아니셨을까요...
    쏘닉님, 그라드님/ 어처구니 없는 것은 CGV 강변 인터넷 상의 답변이었습니다. 제 이름만 지우고 그대로 올리겠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OOO 고객님
    CGV입니다.

    우선 CGV강변을 이용하시는데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현재 영상 송출의 경우 필름비와, 영사기와 영사막 거리등의 문제로
    인해 모든 화면상의 영상이 100% 포커스가 맞도록 상영하기에
    다소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영화는 고객님께 좀더 편하게 관람하실수 있도록
    자막부분에 포커싱을 맞추고 있습니다만(영화에 따라 차이가 있을수 있습니다.)
    다소 포커싱이 필름에 따라 변동될수 있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불편을 드린것 같습니다.

    물론, 상영중에 계속적인 확인 및 사전 철저한 작업/확인으로
    100% 완벽할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이러한 점이
    다소 완벽할수 없음은 고객님께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말씀하신 상영관에 대해서는 재확인을 통해 보다 깨끗한 화질로
    영화를 감상하실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이 부분 또한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빠른 시간안에
    정상복구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사오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 문의하실 점이 있으면 들러 주십시오.
    기분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CGV 강변 8관의 화면 잘림 현상은 계속된다는 것이죠...
    지나가다가...님/ 에바 신극장판의 제작 의도와 주제 의식은 - 비록 동일한 소재를 '서'까지 사용하고 있지만 - TV판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닐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후속편 '파'의 예고편만 봐도 TV판과는 대폭 달라지는 내러티브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토우지에게 맞은 것이나 가출한 것도 그 정도면 적절히 압축해서 극장판에서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TV판을 절대적인 입장으로 설정하고 극장판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누렁이님/ '整合性'입니다. '무모순성'이라고 간단히 사전에 나오는데, 극장판이 TV판과는 별도로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 역할을 하는지 고민해봤습니다.
    레이군님/ 제작자와 소재가 동일하다고 하여 주제의식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일례로 '기동전사 Z건담'의 극장판만 해도 토미노 감독이 TV판과 극장판에서 제시하는 주제의식은 정반대였습니다. 하지만 'Z'의 극장판은 TV판을 무리하게 압축해 극장판만을 봐서는 도무지 어떤 내용인지 연결되지 않았는데 '에반게리온'의 신극장판은 그런 문제점을 말끔히 해결해 독립적인 작품으로 승부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비교해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이미 지나가다가...님에게 단 덧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에바 신극장판의 주제의식은 TV판이나 구극장판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SAGA님/ 지난 주에 개봉된 것은 서울의 선행 상영이었고 이번주가 정식 개봉입니다. ^^
  • 藤崎宗原 2008/01/25 14:43 #

    저런... 축하 드립니다. ^^

    음, 신지의 성장과, 내면을 극압축해서 풀어 놓은 것이, 확실히 전해 졌더랬습니다.
    게다가 마름모의 그 현란한 CG 라니. ^^:::

    하지만, 역시나... 감상은,

    여전히 이몸을 웃기는구나 안노.

    정도려나요. 아하하... (뻘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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