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 K 딕의 원작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羊)을 꿈꾸는가?’를 원작으로, 서기 2019년의 LA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복제인간의 대립을 묘사한 SF 영화의 걸작 ‘블레이드 러너’의 가장 큰 주제의식은 인간성에 대한 철학적 고찰입니다. 인간보다 더욱 인간다운 복제인간과 그런 복제인간을 일말의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말살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과연 인간성이라는 것이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생성되는지에 대한 매우 진보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최근 동물도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실험이나 도살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일부 과학자들의 의견이 대두되는 것을 보면, 1982년에 미국에서 극장판이 처음 개봉된 ‘블레이드 러너’의 진보적인 성격은 유별난 것입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 자신은 커멘터리를 통해 ‘블레이드 러너’의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지만 전쟁이나 육체노동은 남성 레플리컨트들이 담당한다는 설정은 미국 사회에서 유색인종과 이민자들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비판적 접근으로 보이며, 전쟁터에서 위안부 역할을 하는 여성 레플리컨트의 설정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종군 위안부를 연상시킵니다. 비록 로이와 레온(브라이언 제임스 분)이 사람들을 살해하지만 그것은 난폭함의 발로라기보다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려는 자위적 처신으로 이해해야 하며, 결말부에서 죽음의 위기를 맞는 데커드를 구하고 시를 읊으며 죽는 로이의 모습은 복제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인간적입니다. 레이첼 역시 자신이 레플리컨트임을 알게 된 이후 부자연스런 머리를 풀고, 피아노를 연주하며, 사랑을 하게 되는 등 더욱 인간적으로 변모합니다. 여성 레플리컨트들의 고통스런 죽음은 그들이 인간과 다를 바 없음을 강조합니다.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되는 ‘데커드는 레플리컨트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리들리 스콧은 커멘터리에서 그렇다, 라고 확인했지만 사실 데커드가 레플리컨트인지의 여부에 대한 복잡한 논쟁을 떠나(물론 데커드의 레플리컨트 여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감상하면 매우 재미있습니다만...) ‘블레이드 러너’의 눈부신 비주얼에만 초점을 맞춰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소니의 콜럼비아 트라이스타를 비롯한 미국 영화사 인수를 예상이라도 한 듯한, 일본 여성의 대형 광고판 점령을 비롯해, 영화 속 2019년의 LA는 온갖 아시아적인 요소들로 가득하여 무국적성을 드러내며, 환경오염을 경고하는 듯 스모그로 가득한 어두운 도시에는 끊임없이 산성비가 내립니다. 제3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기형적인 난쟁이를 흔히 찾아볼 수 있고, 길거리에서 레플리컨트가 살해되어도 사람들은 무관심합니다. 이처럼 암울한 세계가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압도적인 비주얼로 화면을 메웁니다. 실제 배경인 LA보다는 차라리 오늘날의 도쿄에 가까운 도시의 무국적성은, 데커드를 감시하고, 그의 정체에 대한 단서인 종이접기를 취미로 하는 개프(에드워드 제임스 올모스 분)에 의해 더욱 강화됩니다. 개프는 에스페란트와 유사한 ‘시티스피크’라는 만국 공통어를 사용하는데(이는 영화 촬영을 위해 에드워드 제임스 올모스가 직접 만든 것입니다.), 개프가 처음 등장해 데커드와 만나는 장면의 대사는 ‘Hey, 이리와’라는 한국어로 들립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장르의 전통적인 내러티브를 전복시켰다는 것입니다. 외로운 사립탐정이라는 레이먼드 챈들러 식 탐정 느와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정작 주인공 데커드는 정정당당하거나 강하지 못합니다. 그가 죽이는 것은 강인한 남성도 아니고 여성들이며, 그 중 한명은 도망치는 등 뒤에 발포해 살해한 것입니다. 서부극이라면 극력 피하는 주인공의 백파이어가 등장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데커드는 로이와의 대결에서 밀리자 꼴사납게 꽁무니를 빼며 도망칩니다. 내내 오른손에 이상이 있던 로이와, 로이에 의해 오른손가락 둘이 부러진 데커드는 동일시되는데, 주인공과 악역의 동일시는 헐리우드의 전통적인 스토리 텔링에서는 금기시하는 것이며, 주인공이 죽을 위기에서 악역에 의해 목숨을 구하게 된다는 것 역시 쉽게 찾아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오작동하는 오른손에 못을 박는 로이의 모습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마저 연상할 수 있는데, 못을 박아 움직일 수 있게 되어 구원하는 대상이 자신을 죽이려 했던 데커드라는 점에서 로이의 숭고함은 놀라운 것입니다.
‘블레이드 러너’를 더욱 독특하게 만드는 반젤리스의 신디사이저 음악은 영화의 공간적 배경의 음울한 아름다움을 뒷받침하며, 기계보다 더욱 인간적인 레플리컨트처럼, 기계음을 통해 희노애락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멋들어지게 표현합니다. 반젤리스의 음악이 지나치게 훌륭해서인지, 영화의 동명 엔드 타이틀은 N.EX.T의 ‘The Return Of N.EX.T Part I’의 ‘Life Maungacturing : 생명생산’이, ‘LOVE THEME’은 칸노 요코의 ‘카우보이 비밥 OST 1’의 ‘SPACE LION’이 표절했다는 의혹을 자아낼 정도입니다. 물론 반젤리스의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도 필립 K 딕의 다른 SF 소설들을 영화화한 ‘토탈 리콜’과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에 영향을 주었으며, ‘미션 임파서블 2’에서 손에 비둘기를 쥐고 달리는 탐 크루즈의 모습은 로이의 마지막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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