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러티브가 빈 틈 없이 촘촘하게 제 역할을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주인공 프랭크(덴젤 워싱턴 분)와 리치(러셀 크로우 분)를 뒷받침하는 풍부한 캐릭터들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능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등, 관객이 감정을 이입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프랭크를, 갱이라고 하여 악역으로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 주인공을 동시에 괴롭히는 악역이 존재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프랭크와 리치가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것은 결말에 이르러서 뿐인데 그 이전부터 두 주인공을 괴롭히는 트루포(조쉬 브롤린 분)는 관객의 공분을 자아내며 두 주인공의 인연을 만들어 줍니다. 결말부의 그의 자살 장면에서 진공청소기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햇빛 가리개에 피가 튀는 것은 시각과 청각 양면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성실하고 모범적이어서 고지식하기까지 한 프랭크와는 대조적으로 화려한 옷차림을 자랑하며 프랭크의 ‘블루 매직’을 희석해서 판매한 니키(쿠바 구딩 주니어 분), 프랭크와 분배 문제로 다투다 백주대낮에 거리에서 살해되며 프랭크의 냉정함을 증명하는데 본보기가 된 탱고(아이드리스 엘바 분),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던 소년이었으나 프랭크와 같은 거물 갱이 되겠다며 악에 물들어버린 스티비(T. I. 분), 프랭크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경멸하면서도 손을 잡는 이탈리안 갱 카타노(아만드 아상테 분), 리치의 동네 친구이며 아들의 대부이지만 갱인 소다노(리치 코스터 분) 등의 다양한 캐릭터 덕분에 ‘아메리칸 갱스터’를 군상극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아메리칸 갱스터’가 흥미진진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갱스터 장르를 정치적이거나 가부장적으로 해석하는 기존의 시각에 머무르지 않고, 백인의 전유물이었던 갱스터 영화를 흑인 갱스터라는 전복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며 마약 산업을 비즈니스의 개념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두 남자의 대립 구도를 신선하게 윤색할 수 있었습니다.
프랭크가 예배에 참석한 이후 교회 앞에서 검거되는 순간, 가슴에 경찰 배지를 단 리치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프랭크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듯 어머니와 아내를 뒤돌아보는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Amazing Grace’, 군수송기라는 기상천외한 수단으로 전세계적인 유통망을 거쳐 흘러 들어오는 ‘블루 매직’의 흐름에 깔리는 바비 워맥의 ‘Across 110th Street’, 대화 상대에게 ‘My Man!’이라고 말하는 습관을 지닌 프랭크가 밀고자가 된 후 긴 수감생활 끝에 출소하는데 배경 음악이 되며 프랭크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포하는 퍼블릭 에너미의 ‘Can't Trust It’ 등 적재적소에 사용된 OST도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에이리언 - 여전히 유효한 걸작 SF 호러
블랙 호크 다운 - 원인은 없고 결과만 있다
킹덤 오브 헤븐 -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만 재미없는 기사담
아메리칸 갱스터 - 장르 역사에 남을 새로운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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