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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감사용 - 아릿한 80년대의 향수 영화

인호봉, 금광옥, 조흥운, 양승관 그리고 감사용. 이 선수들의 이름을 기억하신다면, 그리고 이들의 플레이를 TV 혹은 야구장에서 본 적이 있다면 ‘슈퍼스타 감사용’은 80년대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멋진 영화입니다.

80년대가 아름다웠다거나 훌륭했던 시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극중에서 감사용(이범수 분)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거대한 벽화 앞에 서기 직전 터져대는 최루탄과 전경의 가혹한 진압에 휘말렸듯이 전두환 군부 독재 시대에 3S(Screen, Sex, Sports) 정책의 일환으로 만든 것이 프로야구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하지만 OB 베어즈, 삼성 라이온즈, MBC 청룡, 해태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삼미 슈퍼스타즈의 6개 구단으로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당시 아이들에게 어마어마한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5,000원 내고 어린이 회원에 가입해 프로야구팀의 점퍼와 모자를 받아 학교에 입고와 서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더 강하다며 논쟁(?)을 벌인 것이 어제 일 같은데 그것이 벌써 22년전이군요.

저는 MBC 청룡(현 LG 트윈스의 전신)과 백인천의 팬이었습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청룡은 우승권에 근접한 팀은 아니었지만 3위권을 꾸준히 유지했었으며 파란 색의 상쾌한 유니폼과 삼성과의 개막전에서의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 홈런으로 또렷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기억 속에서 삼미 슈퍼스타즈는 청룡에게 늘 승리를 헌납하는 형편없는 꼴찌팀으로 각인되어 있으며 그중 감사용(당시 어린 시절에조차 감사용이라는 이름은 우습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음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이 등판하는 날은 무조건 청룡이 이기는 날이었습니다. 1982년 당시 1승 14패 1세이브(한 시즌 내내 딱 한 번 이기고 14번이나 졌다는 말입니다. 세이브는 이기고 있는 경기를 그대로 잘 마무리했다는 말인데 연말 연봉협상에서 세이브 두 개를 1승으로 고과산정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굳이 비교하면 1세이브는 0.5승이라는 말입니다.), 방어율 6.46(이건 9회까지 한 경기 내내 감사용이 던진다고 하면 6.46점이나 준다는 말입니다. 형편없는 방어율이죠.)의 보잘것 없는 기록이 말해주고 있으니까요.

청룡팬인 제가 삼미 슈퍼스타즈와 감사용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보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촬영 도중 인터넷에 올라온 공유가 분한 박철순의 스틸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공유의 분장과 표정은, 미국에서 돌아와 너클볼을 무기로 원년에 22연승을 기록하며 청룡에게 늘 뼈아픈 패배를 선사했던 그 젊은 시절의 박철순 그대로 였습니다. 정말 똑같았죠.

오늘 영화를 보니 박철순만 똑같은 것이 아니더군요. 통통한 체격의 OB 윤동균과 청룡 백인천, 콧수염의 OB 김우열, 마르고 큰 키의 OB 신경식 등이 어릴 적 그대로의 모습으로 극중에 등장하더군요. 자세히 보면 해태 김봉연과 김성한, 삼성 이만수 등 당대의 스타들도 몇 컷씩 스쳐지나가는데 체형이나 얼굴이 실제 인물들과 상당히 흡사합니다. 원년의 촌스런 원색 유니폼도 완벽하게 재현되었습니다. 세세한 부분의 고증까지 신경쓴 것이 역력하더군요. 물론 옥의 티를 잡자면 한이 없습니다. 1982년 원년에는 피켓 따위를 들고 야구장에 가는 일은 거의 없었고 박철순이 20연승을 앞두고 감사용과 맞대결을 한 것도 아니었죠.

이 시대를 접해보지 못한 현재의 20대 중반 이전의 세대나 야구를 잘 모르는 여자분들에게 ‘슈퍼스타 감사용’은 임팩트 없이 슬로우 모션만 남발되는 밋밋한 영화일지도 모릅니다. 야구를 모르는 분은 9회 투아웃 김우열 타석에서 감사용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어린 시절로 겪었던 저같은 사람에게 ‘슈퍼스타 감사용’은 객관적 평가보다는 아릿한 80년대의 향수를 떠올리게 만드는 감동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말도 안되는 허황된 결말보다는 사실적인 결말을 간접적으로 묘사한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슈퍼스타 감사용’이 던지는 메시지는 우직하고 단순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인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잊고 남들의 처지와 비교하며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꼴찌면 어떻습니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겁니다.

덧글

  • -ros- 2004/09/23 16:10 #

    트랙백을 따라 왔습니다. 20대 후반의 인천 출신입니다만 야구장 한 번 가본 거 빼놓고는 삼미와 큰 인연은 없군요. ^^.. 추억과 메세지면이라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더 낫지 않을까 합니다.
  • 디제 2004/09/23 23:40 #

    -ros-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기회가 닿으면 서점에서 서서라도 한번 읽어 봐야 겠군요. 추천 감사합니다.
  • akachan 2004/09/24 01:26 #

    여자친구랑 같이 보러 갔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히로인이 경기장 입구에서 공 줏어오는 걸 보며 "왜 저러고 끝나?"라고 물어보더군요. 저야 그 결과를 알고 있었으니 어색하지 않았는데 영화관에 온 커플들 대부분이 그 부분에서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짓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역시 이 영화는 딱 30대를 위한 영화인 듯 합니다.^_^

    저는 쭉 MBC 청룡 어린이 팬클럽이었다가, 블랙죠 16개의 유혹에 못 이겨 85년에만 롯데랑 중복 가입을 했었죠.^^ LG 트윈즈로 바뀐 뒤 91년부터 기존 MBC 선수와 코치를 싹 정리하는 모습에 실망해 야구를 점점 안 보게 되다가 강혁 사건 이후로는 아예 한국 야구에 관심을 끊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감사용과 양승관, 금광옥 등의 모습이 더 크게 다가오네요.

    금광옥은 TV CF도 찍은 선수였죠.(삼미 기업 이미지 광고였지만...)

    링크 타고 와봤습니다.
  • 디제 2004/09/24 10:34 #

    akachan/ 마지막에 김우열과의 승부에서는 여운을 남기기 위해 그런 식으로 묘사한 것 같습니다. 저처럼 야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없었겠지만 야구를 모르시는 분들에게는 상당히 불친절한 결말이었습니다.
  • 노마드 2004/09/24 15:34 #

    저도 마지막 결말에서 상당히 난감했었죠.(저도 "왜 저러고 끝나?"하고 물어봤다는...ㅡ.ㅡ; ) 저로서는 80년대 야구에 대한 향수(또는 기억)이라고는 초등학교때 파란 야구단 유니폼(어디더라?)을 입고 다니던 남자애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사실 이외엔 전~혀 없어서 더 비판적으로 보게 되었었나봐요.^^;;
  • 디제 2004/09/24 18:08 #

    노마드님/ 초등학교 때 80년대셨고 파란 유니폼이었으면 제가 좋아했던 MBC 청룡이었을 겁니다. LG 트윈스로 인수된 것이 1990년이었으니까 그전까지는 청룡이었거든요.
  • 온창훈 2004/09/28 00:02 # 삭제

    오늘 이 영화 보고왔습니다. 보면서 몇번이나 울뻔했습니다. 간만에 극장에 갔는데 정말 좋은 영화 봐서 기분이 좋네요.(마지막 경기 윤진서가 공을 주울때는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이미 알고있는 결과였지만..)
  • 디제 2004/09/28 02:14 #

    창훈님/ 역시 창훈님도 공감하셨군요. 이건 아마 제가 최초로 사는 한국영화 dvd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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