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tomino.egloos.com

포토로그


메모장

KBReport 프로야구 필자/다음카카오 1boon/KBO 야매카툰

LG 트윈스 야구 전 경기 아프리카 생중계 http://afreecatv.com/tomino

사진, 글, 동영상 펌 금지합니다. 영화 포스터의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서 있습니다.

반말, 욕설, 비아냥, 협박 등의 악성 댓글은 삭제합니다. 비로그인 IP로 댓글 작성은 가능하지만 동일 IP로 닉네임을 여러 개 사용하는 '멀티 행위' 시 역시 삭제합니다.


귀를 기울이면 - 싱그러운 첫 사랑에 남은 두 고인의 흔적 애니메이션

중학교 3학년 여학생 시즈쿠는 공부보다 독서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의 독서 카드에서 세이지라는 같은 이름을 여러 차례 발견한 시즈쿠는 세이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지만 뜻밖의 인물이 세이지라는 사실에 놀랍니다.

곤도 요시후미 감독의 1995년 작 ‘귀를 기울이면’은 지브리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을 썼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감독을 맡은 다른 극장판 애니메이션과는 차별성을 보입니다. 과거 전공투에 가담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대부분은, 비현실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근본주의적 환경 보호론을 담아내거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족영화의 외피 속에 담아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은 도쿄 근교의 다마 뉴타운을 배경으로 현실 속 도시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있으며, 작품의 내러티브 역시 10대 소녀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첫사랑과 사춘기의 고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비록 시즈쿠가 고양이 남작의 이야기를 판타지 형식을 빌어 글로 남기지만, 현실와 비현실이 직접적으로 맞닿는 지브리의 극장판 애니메이션들과는 달리 분명 선을 긋습니다.

따라서 시즈쿠는 갑자기 찾아온 첫사랑의 달콤함에 취하기보다 이별을 걱정해야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진로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분투합니다. 마법이나 선행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지브리의 여타 작품들과는 다른 해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고 싶습니다. 특히 발랄한 템포 속에서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전반부는 매우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시즈쿠가 사랑에 빠지면서 후반부는 다소 무겁고 처지는 감이 있습니다. 물론 풋풋한 사랑답게 관객을 미소 짓게 만드는 결말에서 다시 만족하기는 했습니다만. 독서 카드에서 비롯되는 학창 시절의 사랑이라는 점은 같은 해에 개봉된 이와의 슌지의 ‘러브 레터’와 비슷합니다.

‘귀를 기울이면’에서는 지브리의 다른 작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우선 시즈쿠가 자신의 첫 번째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삼았던 고양이 남작은 2002년 작 ‘고양이의 보은’의 고양이 남작과 동일한 캐릭터입니다. (두 작품의 고양이 남작의 성우는 다릅니다.) 시즈쿠의 방 안에는 1989년 작 ‘마녀 배달부 키키’의 키키 인형이 있으며, 세이지의 할아버지인 시로의 골동품 가게의 벽시계에는 1992년 작 ‘붉은 돼지’의 주인공 ‘Porco Rosso’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귀를 기울이면’은 곤도 요시후미의 감독 데뷔작이자 유작입니다. 그는 ‘귀를 귀울이면’의 감독을 맡은 후 3년 뒤인 1998년에 48세를 일기로 사망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가 가장 아끼던 후계자인 그의 사망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감독 은퇴를 번복했고, 미야자카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는 감독 데뷔작 ‘게드 전기’에서 혹평을 면치 못했습니다. 고 테즈카 오사무를 제외한 1세대 애니메이션 감독에 대한 의존도는, 대부분의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매우 축소되었지만 유독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의존도는 지브리의 절대적입니다. 따라서 곤도 요시후미의 사망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면’에서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주제가인 ‘Take me home country road’의 존 덴버 역시 비행기 사고로 1997년 53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뒤늦게 한국의 극장에 걸린 ‘귀를 기울이면’을 보면서 이른 나이에 사망한 두 사람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덧글

  • Hineo 2007/11/26 10:27 #

    고양이의 보은에 나온 '고양이 남작'은 은근슬쩍 세일즈 포인트(...'귀를 기울이면'과 연결되었다던가)로 나온 것 같습니다.
  • 강설 2007/11/26 10:39 #

    자전거타고 언덕에 올라가서 해뜨는 장면(해지는거였던가?;)을 바라보는게 잊혀지지않네요. 역시 저도 지브리작품중에 가장 훌륭한 작품을 뽑으라면 이 작품을 뽑고싶습니다.
  • 면도날고토 2007/11/26 13:28 #

    고등학교 때 처음 이 작품을 보고 생활감의 묘사가 매우 세밀하게 이루어져 있는것에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며칠 전 친구와 이 작품의 개봉 소식을 듣고 한 이야기에서
    "과연 요즘 아가씨들도 시즈쿠처럼 스스로 자전거 뒷자리에서 내려와 밀어줄 것인가?"
    ...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죠.-_-;

    결론은
    "애초에 자전거 짐받이 따위에는 타질 않을 것이다(...)"
    라고...OTL
  • dcdc 2007/11/26 13:39 #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되는데 큰 일 났습니다.OTL
  • oO천랑Oo 2007/11/26 14:52 #

    다들 한번 쯤 봤을 것 같은데요.. 애니메이션을 봤다 하면요.. 그래도 이 영화..정말 재미 있게 봤었습니다.
  • 크루세닌 2007/11/26 15:11 #

    저도 지브리애니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수도없이 돌려봤죠ㅠㅠ 뭔가 앞길이 막막할 때 이 작품을보면서 용기를얻곤합니다.
  • 아무로 2007/11/26 15:55 #

    어제 다시 보면서도 마지막 5분 때문에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마다 보는 관점은 다릅니다. ^^;;
    저는 이런 류라면 <바다가 들린다>가 더 좋더군요.
    면도날고토님께서 말씀하신 자전거 장면.... 일행과 둘이서 그런 쓸데없는 용은 쓰질 말고 그냥 내려서 끌고 올라갈 것이지 왜 저런대???..란 얘기를 하다가 이젠 늙어버린 게야,,,,하고 좌절하게 만든 장면이로군요. ㅜㅜ
  • 디제 2007/11/26 22:33 #

    Hineo님/ '고양이의 보은'의 고양이 남작은 은근슬쩍이라고 하기에는 내러티브 전체를 좌우하는 너무나 비중이 큰 캐릭터입니다...
    강설님/ 저와 같은 생각이셨군요. ^^
    면도날고토님/ 일상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일본인 특유의 미니멀리즘이 반영되어서 일 겁니다. 그런 애니메이션이나 영화가 수도 없이 많죠. 그리고... 요즘에는 자전에 뒤에 서서타는 것이 기본이더군요.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
    dcdc님/ 저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내일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러 갑니다. ^^
    oO천랑Oo님/ 저는 어제 처음 봤습니다. ^^
    크루세닌님/ 확실히 낙천적인 작품이죠.
    아무로님/ 사람들마다 확실히 관점이 다르긴 합니다. ^^;;;
  • dennis 2007/11/27 12:58 #

    뭐랄까~
    지금은 아련한 추억의 사춘기적 기억을 떠올리게 한 작품으로 마녀 배달부 키키와 더불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지브리 두작품중 하나입니다. ^ ^
    학창시절... 첫사랑, 이별의 아픔, 그리고 당시 미래에 대한 두려움, 기대감등을 떠올리게 하죠...
  • 디제 2007/11/27 17:13 #

    dennis님/ 저의 학창 시절은 '귀를 기울이면'을 비롯한 일본의 청춘/학창물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무미건조한 것이어서... 그다지 감정 이입이 되지는 않더군요. ^^;;;
  • CsOAEA 2008/07/08 00:51 #

    "마법이나 선행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지브리의 여타 작품들과는 다른 해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차별화된 해볍이라기 보다, 작품의 배경이 다른 데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전개 아닐까요. 전 오히려 공통된 형식에 주목했습니다. 개인에게 위기가 찾아오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여기서 인물은 상징적인 죽음을 경험하죠. 통과제의의 전제로서의 죽음), 결국 개인은 완성됩니다. 완성의 순간엔 꼭 사랑이 있죠. 위기-죽음-부활이라는 일반적인 레파토리의 반복입니다. 지브리의 다른 작품들과 차이가 있다면, 이 작품에서는 개인의 위기가 세계의 위기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덜 웅장하지만, 전 다른 작품들보다 이 작품에 더 공감이 가더라고요.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