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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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 변덕과 욕망, 허위와 거짓 영화

산적인 다조마루는 산을 넘는 사무라이 부부를 습격해 남편을 포박하고 아내를 겁탈합니다. 결국 사무라이는 죽고 다조마루는 체포됩니다. 라쇼몽(라생문)에 모여 이 이야기를 나누는 세 사람은 다조마루(미후네 도시로 분), 아내, 죽은 사무라이의 영혼을 불러낸 무당의 진술이 모두 엇갈리는 점에 주목합니다.

일본 최고의 소설가로 손꼽히는 아쿠다카와 류노스케(를 기리는 문학상 '아쿠다카와 상'은 매우 유명합니다.)의 원작을 바탕으로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가 감독을 맡은 1950년작 ‘라쇼몽’은 단순해 보이는 사건의 이면으로 접근해 관련 인물들간의 미묘한 심리와 행동의 변화를 치밀하게 파고 들어간 액자 구조의 다층 텍스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무라이의 아내를 겁탈하고 사무라이를 살해한 다조마루와 겁탈 당한 사무라이의 아내, 그리고 죽은 사무라이의 영혼을 불러낸 무당의 진술이 순서대로 교차되면서 인간의 변덕과 욕망, 허위와 거짓이 얼마나 인간을 추악하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특히 셋의 진술은 그 내용에 미묘한 차이가 있어서 어느 쪽이 진실인지 의문시됩니다. 이런 식의 구성은 에드워드 즈윅의 ‘커리지 언더 파이어’나 장이모우의 ‘영웅’이 노골적으로 차용한 바 있으며 크리스토퍼 놀란의 데뷔작 ‘메멘토’에서도 쓰인 바 있습니다. 처음에 알았던 과거에 대한 진술이 그 뒤의 새로운 진술로 뒤집히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관객은 어느 것이 진실인지 헷갈리게 되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반복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나무꾼(시무라 다카시 분)의 진술이 이어져도 이것이 진실에 근접하기는 했지만 결코 확신할 수는 없게 됩니다. 이런 작품들의 장점은 반복 감상을 해도 지루하지 않으며 감상할 때마다 새로운 단서와 시각을 보는 사람에게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살다보면 진실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지만 막상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인간은 자기가 편한대로, 기억하고 싶은대로 기억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오해가 빚어지며 종종 인간 관계 자체가 파탄나게 되는데 이를 ‘라쇼몽’과 같은 다층 텍스트의 영화가 웅변하는 셈입니다.

구로자와 아키라는 살인, 강간과 같은 극단적인 행위들 앞에 놓인 인간의 심리를 치밀하게 계산된 미장센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흑백 영화이기에 지루할 수 있다는 편견은 정물화의 구도를 잡은 것처럼 정교한 미장센 앞에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특히 남편인 사무라이가 묶인 것을 확인하는 아내와 이 둘을 바라보는 다조마루의 미장센의 컷들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완벽합니다.

훌륭한 심리 드라마를 뒷받침하는 것은 배우들의 명연기입니다. 일본 영화의 간판이었던 미후네 도시로의 표정 연기는 광기와 욕망, 두려움이 교차되면서 화려하고 경박한 동작 속에서 완벽에 가깝게 구현되며 사건을 진술하는 시무라 다카시는 인간에 대한 의심을 곤혹스런 표정에 뒤섞어 관객들에게 전달합니다. 두 배우는 4년 뒤, 구로자와 아키라, 아니 일본 영화 최고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7인의 사무라이’에 주연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사무라이 부부와 다조마루에 얽인 추악한 이야기는 비가 그치면서 마무리되고 인간에 대한 비웃음으로 엔딩을 맞이할 것 같았지만 이 이야기를 주고받던 세 사람은 어린 아기를 발견합니다. 위증을 하고 단검을 팔아 돈을 번 나무꾼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아이를 맡겠다고 합니다. 날씨는 개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나무꾼은 아이를 데리고 떠납니다. 인간에 대한 희망을 안은 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