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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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 구원은 종교적 용서가 아닌 세속적 사랑으로부터 영화

초록물고기 - 한국적인 사실주의 느와르
오아시스 - 가슴 먹먹한 사랑, 그리고 희망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외아들 준(신정엽 분)과 함께 밀양에 내려온 신애(전도연 분)는 피아노 학원을 차리고 적응하려 하지만 준을 유괴범에게 살해당한 뒤, 교회에 다니며 상처를 치유하려 노력합니다. 신애를 짝사랑하는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 분)은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영화는 인간의 구원과 용서에 대한 천착에 가까운 질문을 던집니다. 이 용기 있는 직구승부는 기독교와 교회라는 한국 사회의 성역도 고의사구로 거르려 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섭니다. ‘밀양’은 한국 기독교가 말하는 종교적 구원이란 얼마나 조악하며 위선적인 것인지 담담히 제시합니다. 만일 전도연이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대외적 공인을 받지 않았다면 한기총을 비롯한 수구적인 기독교 기득권 세력은 ‘밀양’에 대한 공세를 서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도연의 수상에 대한 대중매체의 찬사와 흥분이 가라앉으면 기독교 세력의 공세가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그러나 ‘밀양’은 기독교의 위선을 폭로하기 위한 프로파간다 영화는 아닙니다. 극중에서 신애가 준을 잃은 것은 그녀의 허영과 자만이 원인이 되었으며, 이후 신애가 매달리는 용서가 신의 구원이 아니라 그녀의 개인적인 교만에서 비롯되었음을 감안하면, ‘밀양’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작품입니다. 종교와 인간 모두에 대해 비슷한 비중의 불신을 부여했기에, ‘밀양’을 성급하게 반종교적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단견입니다. 어정쩡한 화해로 마무리하며 헐리우드 엔딩을 제시할 수도 있었지만 신애가 유괴범의 딸을 끝내 용서하지 못하는 후반부는 도리어 인간적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대안은 사랑입니다. 신애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규정했듯이 종찬은 속물입니다. 지방 소도시의 인맥을 자랑스러워하며 다방 레지에게 야한 농담을 건네는 서른아홉 살의 독신 남성은 신애를 만나기 위해 신앙심이 없는데도 교회를 다닙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우직하며 신애를 섹스의 대상으로 바라보지도 않습니다. 그는 고백하지 못하지만 (혹은 않지만) 그가 신애를 사랑한다는 것은 신애와 주변 사람 모두 눈치 채고 있습니다. 종찬은 신애가 극단적인 선택을 저지른 뒤에도 여전히 신애를 지키는 세속적 사랑을 견지하고 있으며 동시에 설렁설렁 다니던 교회도 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창동 감독의 타협점이며 동시에 구원자라 할 수 있습니다. 진작에 속물로 규정된 그가 실은 구원자라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컬합니다.

영화의 관습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밀양’은 불친절합니다. 크게는 신애의 과거에서 작게는 유괴범의 검거 과정까지 희미한 암시만 있을 뿐, 세세한 설명을 피하기 때문에 관객은 여백을 상상하며 메워야 하는데, 이처럼 과감한 생략이 이루어진 것은 신애의 현재의 삶과는 그다지 큰 연관이 없는 장면은 불필요하며 신애 개인의 고통에 집중하라는 의도인 것으로 보입니다.

전도연의 연기를 보며 우는 연기도 엄청나게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연기를 보면, 10년 동안 예쁜 척만으로 먹고 사는 CF 요정들보다는 예쁘지 않지만, 아름답습니다. 그녀의 연기의 아름다움은 CF 요정들의 피상적인 예쁨보다는 비할 수 없이 우월합니다. 용서에 실패한 신애가 하늘을 바라보며 억지 섹스를 하는 장면은 라스 폰 트리에의 ‘브레이킹 더 웨이브’를 연상케 합니다.

경남 김해 출신으로, 배우가 되기 위해 사투리를 없애고자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 송강호가 고향 말투로 연기하는 모습은 어쩐지 뿌듯합니다. 전도연이 감정의 극단을 오가는 연기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면 송강호는 자연스러움과 진중함으로 전도연의 질풍 같은 감정의 등락을 포용합니다.

전도연과 송강호, 그리고 은행 장면에서 단역으로 등장하는 ‘살인의 추억’의 여경 권귀옥 역의 고서희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조연급들은 다른 영화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배우들입니다. 실제 경상도 사람들로 캐스팅된 이들의 모습은 마치 밀양이라는 소도시에 실제로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사실적입니다.

기교가 배제된 탓에 카메라 워킹이나 배경 음악 등은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없지만 김추자의 ‘거짓말이야’와 나미의 ‘빙글빙글’이 결정적인 장면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준이 유괴된 이후 유머러스한 장면이 거의 없지만 두 노래가 등장하는 장면만큼은 잊을 수 없는, 관람석을 뒤집는 명장면입니다.

‘밀양’의 몇몇 중요한 장면들은 묘하게도 같은 배우들이 등장한 다른 영화의 장면들을 연상케 합니다. 전도연이 무선전화기의 수화기가 어디 있는지 몰라 헤매는 장면은 그녀의 영화 데뷔작 ‘접속’을, 유괴범과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교도소의 면회실 장면은 ‘너는 내 운명’을, 송강호가 노래 부르는 장면은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극중에서 관객의 신경을 건드리는 전도연의 핸드폰 벨 소리는 ‘달콤한 인생’에서 오달수의 핸드폰 벨 소리와 동일했습니다.

덧글

  • 알민 2007/05/29 09:33 #

    으음... 일단 한 번 봐야겠네요. 기독교 관련자라서;;;
  • 네리아리 2007/05/29 09:34 #

    ....ㄱ-)y~ 후우~ 종교적 구원이 조악하며 위선적이라.............................................
    ㄴ무시하기에는 너무나도 가슴 아프군요.
  • Werdna 2007/05/29 09:59 #

    영화제에서 상 받았다더라 하면 "감독이 수상용으로 만든 모범작품일 테지" 하는 생각부터 하곤 했는데...
    이창동씨가 제 버릇 단단히 고쳐주네요.
  • Shooting군 2007/05/29 10:55 #

    기독교를 언급했다니, 꼭 보고싶군요. 저희 가족 말고 나머지 가족들로 기독교의 열렬한 신자를 둔 입장에서 꼭 보고싶습니다.;;
  • 녈비 2007/05/29 15:03 #

    2번봤는데 분명 종교영화가 아니에요
  • 녈비 2007/05/29 15:04 #

    비슷한듯하면서 관점이 저와 다른부분도있구..저도 이따가 잘생각해서 써봐야겠어요
  • 탁이 2007/05/29 20:15 #

    구원을 멋대로 가공하는 신애와 같은 오만함이 까이 있는 구원을 못보게 만든 것은 종교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겠죠-
    기독교인이라면 자신의 종교관을 다시 정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SAGA 2007/05/30 06:33 #

    전도연의 수상에 대한 흥분이 가라앉으면 바로 기독교 단체에서 태클을 건다는 디제님의 말씀에 동감입니다. 뭐, 이런 영화에 대해 태클을 안걸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거 같네요. ^^;;;
  • 디제 2007/05/30 09:58 #

    알민님/ 전도연의 수상으로 온통 스포트라이트가 전도연에게 맞춰져 있지만 영화 자체도 참 좋습니다.
    네리아리님/ 가슴 아픈 영화죠.
    Werdna님/ 오스카라면 모를까, 칸이 모범생 영화에 상을 주는 일은 드물죠...
    Shooting군님, 탁이님/ 기독교 신자들이 보면 느낌이 새로울 듯 합니다.
    녈비님/ 멋진 글 써주시고 트랙백 걸어주세요. ^^
    SAGA님/ 그래도 이런 목사님도 계시던데요...
    http://news.empas.com/issue/show.tsp/cp_cb/3627/20070529n11738/ent
  • 제절초 2008/05/20 16:20 #

    개인적으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얼마나 근원적으로 망가뜨릴 수 있는가' 를 잘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슬펐어요.
  • 2010/07/29 17:05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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