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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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기억 - 당신이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다면? 영화

광고회사에서 20년 넘게 재직한 사에키 마사유키(와타나베 켄 분)는 아내 에미코(히구치 가나코 분)와 함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고 외동딸 리에(후키이시 카즈에 분)의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에키는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회사를 사직하게 되고 서서히 기억을 잃어갑니다.

개인적으로 와타나베 켄의 출연작을 본 것이 네 번째이지만 희한하게도 일본 영화 출연작은 처음인 ‘내일의 기억’은 IMDB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아직까지 불치병인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중년의 직장인이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이 공포스럽게 묘사되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가족이나 혹은 자신에게 동일한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주인공의 투병 과정보다는 헌신적인 아내의 뒷바라지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에 순애보에 가까우며 객석 여기저기에서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억지스러운 신파는 적고 비교적 담담함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그러나 사에키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이후 딸이나 사위의 반응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고 도예점의 주인을 제외한다면 사에키의 병을 이용하거나 사기를 치려는 사람도 없으며 아내가 지나치게 헌신적이라 판타지를 보고 있는 듯한 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가장이 실직한 이후에도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고 번듯한 집에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점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실제 알츠하이머 병에 걸리면 영화에 나온 것처럼 순애보적인 상황만 발생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영웅적이거나 지체 높은 강렬한 인물을 연기했던 작품들만을 보아왔던 터라 평범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와타나베 켄의 모습은 새로웠습니다. (따라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더욱 궁금해집니다.) 일부에서는 ‘내일의 기억’에서 그의 연기가 과장되어 있다는 평가를 하지만 실제 일본의 샐러리맨들이 업무 처리 과정에서 상당히 과장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연기가 과장되어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샐러리맨인 그가 사직하며 부서의 부하 직원들이 나와 사진을 전달하는 장면은 감동적인데 한편으로는 알츠하이머 병은 하나의 은유에 불과하고 신자유주의 대세 속에서 희생되는 직장인의 비애가 주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한 가지 지적할 것은 자막의 번역이 지나치게 친절해 관객이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빼앗았다는 점입니다. 결말부에서 ‘괜찮으세요?’로 번역되어야 할 대사가 ‘저를 아세요?’로 의역되었는데 굳이 친절하게 의역하지 않아도 (사실 의역이라기보다 이 정도면 창작, 혹은 자의적 오역에 가깝습니다만) 관객이 충분히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데 불만스러웠습니다. 번역자 강민하는 이미 ‘러브레터’에서 ‘(이 편지는) 부끄러워서 보내지 못했습니다’를 ‘가슴이 아파서 보내지 못했습니다.’로 의역해 원 대사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빈축을 사기도 했는데 이런 방식의 관객을 우롱하는 의역은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참고로 ‘내일의 기억’의 후반부에도 등장하는 흔들다리는 ‘유레루’에서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 되었던 하스미 계곡인 것으로 보이는데 ‘유레루’에 출연했던 카가와 데루유키도 조연으로 등장했습니다.

덧글

  • 알민 2007/05/15 09:15 #

    와타나베 켄씨는 라스트 사무라이와 메모리즈 오브 게이샤에서 본 것 밖에 없어요;;;
  • 이녁 2007/05/15 12:29 #

    근데 너무 알츠하이머 병을 미화했다고 할까요? 좀 현실성이 부족한지도 모르겠습니다.
  • 산왕 2007/05/15 12:48 #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에 나오지요^^ 트럭운전수입니다 -0-(우정출연 비슷한 거라지요;)
  • 디제 2007/05/16 09:09 #

    알민님, 산왕님/ '배트맨 비긴즈'에도 나왔었죠.
    이녁님/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기억을 잃고 길을 헤매는 수준 이상으로 주변을 힘들게 하는 병인데 말입니다. 사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와타나베 켄의 역할을 기타노 다케시가 했다면 얼마나 엽기적이고 재미있는 작품이 될까, 라고 생각했다가 그렇게 되면 알츠하이머 병 환자에 대한 모독이 될 것 같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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