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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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 - 제도와 타자에 압살당하는 미약한 개인 영화

무대 공포증 - 히치콕의 연극적 스릴러
열차 안에 낯선 자들 - 사이코가 제안한 교환 살인의 늪
나는 고백한다 - 윤리적 이중고에 시달리는 신부의 진퇴양난
다이얼 M을 돌려라 - 대사 한 마디 놓칠 수 없는 치밀한 스릴러

가족과 함께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클럽의 베이스 연주자 매니(헨리 폰다 분)는 아내 로즈(베라 마일즈 분)의 사랑니 치료를 위해 보험 회사에 대출을 받으러 갔다가 강도로 오인되어 경찰에 체포됩니다. 증인들도 모두 매니를 진범으로 오인하고 매니는 교도소에 수감됩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촌스러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직접 등장해 실화라고 밝힌 오프닝 이후 매니가 겪는 고통과 시련은 철저히 계층적 시각에서 출발합니다. 비좁은 집에서 살고 있는 매니는 휴가비나 아내의 치료비조차 대출받아야 하는 가난한 신세입니다. 그는 성실하고 금욕적인 사람이지만 경찰에게 부당한 수사를 받는 동안 자신을 대변해줄 변호사조차 없습니다. 결백을 논리적으로 주장할 만큼 교육을 받지도 못했으며 거액의 보석금과 미쳐버린 아내의 요양원 비용을 감당할 능력도 없습니다. ‘오인’은 히치콕의 전작들에서 등장한 우아한 (그렇지만 비윤리적이며 속물적인) 상류층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소시민 주인공이 등장하는 독특한 작품인 것입니다. 헨리 폰다의 각진 얼굴과 돌출된 광대뼈로 인한 그늘은 매니의 가난과 고난을 시각적으로 가중시킵니다.

가난한 주인공을 더욱 무능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멍청한 경찰과 있으나마나한 사법제도입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 급급한 경찰은 증거도 없이 증언만으로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붙이며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가족들에게 연락할 기회조차 주지 않습니다. 재판 과정도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전문 용어들이 가득해 매니는 돌아가는 상황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비록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히치콕이 자신의 작품 세계에서 견지했던 제도에 대한 불신과 무정부주의적 태도는 ‘오인’에서도 두드러집니다.

매니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계층과 제도만은 아닙니다. 그를 뒷받침해야 할 아내는 시련이 닥치자 정신질환에 걸려 스스로를 원망하며 남편을 힘들게 합니다. 게다가 그를 범인이라고 증언했던 증인들은 진범이 밝혀진 이후에도 매니에게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 뻔뻔스러움을 과시합니다.

언제나 윤리적인 교훈을 도출하는 히치콕답게 ‘오인’의 결말 또한 종교적입니다. 가톨릭 신자인 매니는 항상 묵주를 휴대하는데 그가 법정에서 범인으로 지목될 때 클로즈업되는 묵주의 십자가는 고난과 희생을 상징하며 ‘나는 고백한다’의 법정 장면에서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옆얼굴이 십자가와 함께 클로즈업되는 미장센을 연상케 합니다. 하느님에게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어머니의 조언을 듣고 예수의 그림을 보며 매니가 기도하자 진범이 잡힙니다.

더욱 씁쓸한 것은 진범이 잡힌 이후에도 매니의 가정은 이전으로 원상복귀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깊은 상흔을 남긴 채 아무도 그의 고통에 대해 책임지려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은 거대한 사회 제도와 타자 사이에서 티끌 같은 존재에 불과한 개인의 나약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