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깨나 좋아한다고 블로그에 졸문들을 올리고 있지만, 고백하자면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반공영화로 단체 관람하며 하나도 줄거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반공 영화 ‘아벤고 공수군단’과 (그때는 너무 어려서 이 영화를 보며 왜 부부가 옷을 벗고 한 이불에 들어갔는지도 몰랐고, 빗발치는 총탄에 선혈이 낭자한 등장인물의 죽음 장면만 기억에 남지 줄거리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TV의 명절 영화로 시큰둥하게 졸면서 본 ‘장군의 아들’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 그 유명한 ‘서편제’는 멀쩡한 여자를 득음을 위해 눈을 멀게 한다는 설정이 혐오스러워 (‘서편제’가 흥행했을 때 왜 오정해를 눈을 멀게 해야 하느냐, 그런 비정함이 한국적 정서란 말인가, 하는 논쟁도 상당했습니다.) 관람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천년학’을 보게 된 것은 호기심 반, 의무감 반이었습니다. 씨네 21의 독자평가서를 써야 하는데 이번 주 과제인 598호가 임권택 감독과 '천년학'에 대한 극찬으로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기에 두 눈으로 똑똑히 영화를 보고 흠이 잡히면 실컷 씹어주자는 비뚤어진 심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서편제’도 안 봤으니 ‘천년학’을 그 자체로만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계산도 있었습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선입견이 완전히 박살났습니다. 한(恨)의 한국적 정서를 담는다면 필수적으로 수반될 것이라 지레짐작했던 신파는 전혀 없었고 30여년의 세월을 속도감 넘치게 압축하여 정서적으로도 건조하다 싶을 정도로 간결하고 깔끔했습니다. 장면장면의 정서를 가사에 압축해 드러내는 판소리와 이에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원경은 가슴 속에 각인됩니다. 이어질 듯 끊어지는 동호와 송화의 인연과 주변 인물들의 삶과 죽음은 미망과 세월 속에서 유장하게 엇갈립니다. 반드시 롱테이크의 원컷 원신을 포함시켜 자신의 작품임을 증명하는 임권택 감독의 인장은 제주도에서 송화가 ‘갈까부다’를 부르는 장면에서 드러나는데 짧지도 길지도 않은 매우 적절한 길이로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9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와 ‘천년학’을 위해 감량하다 입원한 오정해는 여전히 곱습니다. 나이가 훨씬 많은 조재현이 남동생을 맡은 점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절제된 연기를 선보입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의 면도날 같은 검사와는 상반되는 추레한 유승룡이나 이제는 어느 영화에서 자신의 색깔을 발산하는 고수희(‘네 살을 베어다 바쳐라!’는 명대사였습니다.)의 부부 연기도 인상적이며 동호 곁을 맴도는 단심 역의 오승은은 고인이 된 정다빈을 연상케 하는데 유난히 예쁘게 잡은 정면 클로즈업이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을 100번째가 되어서야 제대로 본 셈인데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임권택 감독의 다른 작품들, 특히 1980년대와 그 이전의 작품, 심지어 반공영화였던 '아벤고 공수군단'도 제대로 싶습니다. 올해 우리나이로 일흔 둘인 임권택 감독이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이제 한국적인 영화는 누가 만들지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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