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씬 시티’의 프랭크 밀러 원작의 만화를 영화한 ‘300’은 개봉 전과 국내 시사회, 미국의 개봉 첫 주 수입 등에서 압도적인 기대감을 선사했습니다. 그러나 걸작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부족한 점이 눈에 띕니다. 우선 그리스의 도시 국가 체제 등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기 때문에 사전 지식이 없이 관람할 경우 단순한 무용담 수준으로 영화를 수용할 확률이 높습니다. (영화도 데이빗 웬햄의 나레이션에 맞춰 전개되기 때문에 전쟁이 아니라 전투를 묘사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파르타의 300명의 전사들은 단순히 멋진 죽음을 갈구하는 애국자나 전쟁광으로 묘사되는데 그쳐 비장미 이상의 감동을 주는데 실패합니다. 완전한 허구였던 ‘반지의 제왕’ 3부작이 강렬한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던데 비해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300’이 감동을 주지 못한 것은 정치적, 역사적 의의에 대한 조명이 부족했으며 이는 ‘300’이 역사책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극화한 프랭크 밀러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즉 감동적인 역사적 실화보다는 오락성 넘치는 액션 영화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게다가 자막 번역에는 극력 피했지만 대사에는 페르시아를 가리켜 ‘아시아’, ‘야만인’이라 칭하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페르시아 전쟁을 ‘아시아의 전제 군주정에 대한 서구의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규정하는 서구의 역사관에 기인한 ‘300’의 시각은 단순히 과거 역사의 오락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며 미국의 대 이라크 추가 파병을 외치는 것으로 끝맺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300’이 굳이 걸작의 길을 가야할 필요는 없으며 러닝 타임 동안 관객의 눈과 귀를 매료시키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따라서 걸작으로 분류하기는 어려워도 수작 오락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의외로 전투 장면이 짧아 아쉽기는 하지만 롱 테이크로 줌인과 줌아웃이 반복되는 슬로우 모션의 격투 장면은 죽어가는 병사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처럼 보는 이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합니다. 표현에 있어 다소 과장이 섞여 있지만 ‘글래디에이터’, ‘반지의 제왕’, ‘트로이’, ‘킹덤 오브 헤븐’으로 이어지던 전쟁 서사극에 화려한 마침표를 찍었다고 할 만큼 인상적입니다. 싸우는 남자의 몸과 근육을 이전에 이처럼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이 있었는지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멋집니다. 비록 군인들의 목이 사방으로 튀는 잔인한 장면들도 있지만 공간적 배경의 색조가 한 단계 톤다운되었기 때문에 (즉 만화적이기 때문에) 그다지 잔인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습니다. 엔드 크레딧 또한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상당히 세련되게 표현되었는데 이를 보지 않고 나가는 관객들이 대다수인 것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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