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tomino.egloos.com

포토로그


메모장

KBReport 프로야구 필자/다음카카오 1boon/KBO 야매카툰

LG 트윈스 야구 전 경기 아프리카 생중계 http://afreecatv.com/tomino

사진, 글, 동영상 펌 금지합니다. 영화 포스터의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서 있습니다.

반말, 욕설, 비아냥, 협박 등의 악성 댓글은 삭제합니다. 비로그인 IP로 댓글 작성은 가능하지만 동일 IP로 닉네임을 여러 개 사용하는 '멀티 행위' 시 역시 삭제합니다.


바벨 - 지독한 인종주의적 편견과 관습적인 시공간 분할 영화

21그램 - 삶과 죽음, 그 고통스런 퍼즐

모로코를 여행 중이던 리차드(브래드 피트 분)의 아내 수잔(케이트 블란쳇 분)은 어디선가 날아온 흉탄에 난데없이 저격당합니다. 병원도 없는 마을에서 황급히 응급 치료를 하지만 수잔의 상태는 갈수록 악화되어 갑니다. 리차드의 두 아이를 봐주던 보모 아멜리아(아드리아나 바라자 분)는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조카 산티아고(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분)와 함께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갑니다.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 야스지로(야쿠쇼 코지 분)와 함께 사는 청각장애인 치에코(기쿠치 린코 분)는 성욕을 발산하지 못해 안절부절 못합니다.

모로코, 미국, 멕시코, 일본을 연결하는 ‘바벨’은 시공간을 이리저리 흩뜨리고 재배치해, 신에게 도전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다가 언어가 이리저리 갈라졌다는 구약성서의 이야기에서처럼 ‘소통’이라는 화두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바벨’의 등장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의사소통의 한계에 부딪히지만,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 형과 동생 사이에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시종일관 관객을 짓누르며 답답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바벨’은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실토하는 멕시코인과 모로코인의 어이없는 행위 때문에 미국인들은 애꿎은 피해만 입습니다. ‘바벨’에 등장하는 모로코인들은 총기의 위험성도 자각하지 못하며, 경찰은 용의자를 마구 구타하고, 멕시코인들은 잔혹하게 닭을 도살하며, (인종적 편견만 일으키며 내러티브 상으로는 아무 의미 없는 장면이 바로 산티아고가 닭을 잡는 장면입니다. 새로이 떠오르는 삶의 의지를 증명하는 ‘초록물고기’의 닭 잡는 장면과는 확연히 대별됩니다.) 대책 없이 노는 것 밖에 모르고, 음주운전과 불법 체류, 밀입국을 일삼는 한심한 인종들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짜증나리만치 지겨웠던 영화의 분위기는 결말부에서 일정 정도의 카타르시스를 제시하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단죄되는 것은 무고한 미국인을 괴롭힌 모로코인과 멕시코인입니다. 게다가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일본인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인 우월주의가 지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소통 부재와 기독교적 원죄 의식만으로 보기에는 정치적, 인종적 편견이 지나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인종적 편견과 문화 절대주의적 관점으로 ‘바벨’을 만든 감독이 미국인이나 유럽인이 아니라 극중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는 멕시코인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자아비판이 아니라 민족적 자학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영화 기법적인 측면에서도 결코 참신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시공간의 인물들이 재배치되어 서로 연관성을 갖는 것은 ‘숏 컷’, ‘매그놀리아’, ‘중경삼림’, ‘21그램’ 등에서 이미 여러 차례 시도된 것입니다. 주제와 기법 모든 면에서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려운 것이 ‘바벨’인데 미국인이 피해자로 묘사되어서인지 미국의 평단은 호평을 하고 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바벨’에서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의 출연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브래드 피트는 이제 40대 중반다운 주름이 자글거리는 초췌한 얼굴로 등장합니다.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는 카메오에 불과하다 싶을 정도로 출연 시간이 짧으며 최근에 뜨고 있는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매력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형편없는 인간으로 등장합니다. ‘바벨’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헤어누드를 불사하는 대담한 연기를 선보인 치에코 역의 기쿠치 린코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욕을 해소하지 못해 날뛰는 치에코라는 캐릭터가 설득력이 없어서 빛이 바랩니다.

덧글

  • 민희 2007/02/24 10:23 #

    그다지 기분 좋은 영화는 아니었지요..보는 내내 어질어질 했습니다.
  • perante 2007/02/24 14:31 #

    시공간 분할은 이제 참신하다고 볼 수는 없는 때가 되었지만, 인종주의적 편견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오버 아닌가요? 영화 내에서 등장하는 멕시코 인들이나 모로코 인들은 딱히 크게 추궁받을만한 큰 잘못도 없는데 우연에 의해 혹은 인종이 다르단 이유로 미국인들에게 크게 봉변/추궁을 당하지요. 이리저리 휘둘린다거나..... 그런 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리뷰 잘 봤습니다.....
  • LINK 2007/02/24 16:00 #

    저도 오늘 보고 왔는데, 인종주의적 편견이라는 말은 저도 좀 오버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_-;;; (너무 부분이지요). 그리고 치에코가 단지 '성욕을 발산하지 못했나?'하는 부분도 갸우뚱..입니다만..
  • SAGA 2007/02/24 22:01 #

    보지 못한 영화여서(볼 계획도 그다지......) 그렇지만 며칠전 신문에 있는 영화 리뷰 코너에서 꽤나 호평을 받아서 '괜찮은 영화인가?'라고 생각했던 영화였는데...... 조금 논란의 소지가 있는 영화인 듯 싶군요. 영화관에서 보는 건 무리겠고(나름대로 사정이 있어서 말이죠) 나중에 비디오로 봐야겠군요.
  • oIHLo 2007/02/25 02:08 #

    에엥, 저는 미국인들의 불관용성이 더 크게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모로코에서 아픈 사람을 끌고 어서 떠나자고 한 것도 미국인이었고, 멕시코 국경에서 기계적인 절차를 거치면서 멕시코인을 자극한 것도 미국인 아니었습니까.
    총기의 위험성을 모르는 것은 그것을 보여줄 매스미디어가 없는 동네에서 큰 아이라면 충분히 있을 수 가질 수 있는 치기로 인한 것이었고
    닭을 잡는 부분은 야만이라기보다는 그냥 그 사람들은 그걸 아무렇지 않게 보면서 생활하는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봤습니다만...

    치에코도 성욕을 해소하지 못했다기보다는 소통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더욱 컸던 듯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랬다는데 나는 왜 이런거야? 나는 이상한건가? 나를 봐달라고!"라고 호소하는 행위 같았어요.
  • 디제 2007/02/25 08:47 #

    민희님/ 소재 뿐만 아니라 필름의 거친 질감이나 카메라 워킹 모두 시종일관 불편, 불안하게 만들어 고통스럽게 하더군요.
    perante님, LINK님, oIHLo님/ 한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은 여럿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런데 왜 '바벨'이 인종주의적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포스팅에서 충분한 근거를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시종일관 모로코인과 멕시코인은 문화의 혜택을 받지 못한 미개하고 무지한 인종으로 묘사되니 말입니다. 미국인의 불관용성보다는 모로코인과 멕시코인에 대한 비하가 더 크게 보였습니다. 게다가 굳이 닭을 잡는 '살육'으로서 문화 상대주의적 관점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불쾌감만 증폭시킬 뿐이었으며 다른 장면으로 대체하거나 없어도 될 장면이었습니다. 게다가 모로코인은 - 어린아이이지만 - 친누나가 옷을 벗는 것을 훔쳐보고, 이를 누나가 보여주는 근친상간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그들이 미개하다는 것을 더욱 증명하는 듯 보였습니다.

    치에코라는 캐릭터가 설득력이 없는 게, 소통을 하지 못해 노출하고 섹스를 원한다는 것은 상관관계나 설득력이 없다고 봅니다. 감정 이입이 어려울 정도로 극 전체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튀더군요.

    SAGA님/ 저는 그저 범작, 혹은 편견으로 가득찬 악의적인 작품으로 보았습니다. 차라리 안보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마저 드는군요.
  • ahnch 2007/02/25 12:50 # 삭제

    리뷰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의 방향하고 저는 좀 다른 생각을 합니다. 영화의 주제는 정치적이 아닙니다. 당연이 정치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영화에서 중요한건 정치적인 message 도 아닙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요소가 있다면, 그것 또한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을 하지 안습니다. 그것이 이영화의 주제이기기 때문입니다. 즉, 이 영화의 화두는 인간사회의 재일 큰 문제는 소통하지를 못하는 것인데,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결국 "신"이 인간에게 내린 재일 큰 형벌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결국, 비극이라는 건 서로 이해를 못하는 상황에서 일어난다는 말이죠. 그리고, 비극 이라는 건 인간 사회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고, 또한 막을 수도 없지만, 결국 우리가 그 종속되어 있는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런 비극을 통해 생긴 아픔을 인간 스스로 서로 안아 줄 수 밖에 없다는 내용입니다.
  • 디제 2007/02/25 22:47 #

    ahnch님/ 포스팅을 다시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주제가 '소통'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이의를 제기한 것은 소통이라는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의 문제인 것입니다.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인종주의적이라고 지적한 것이죠.

    영화라는 장르가 단순히 주제의식만 훌륭하다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이 말을 때도 내용 못지 않게 표현하는 방식(어투, 단어의 사용 등)이 중요하듯이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중요한 것인데 '바벨'은 그런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 kitano1 2007/02/26 00:56 # 삭제

    저는 다른 생각이네요. 멕시코인과 모로코인의 우매한 것 만큼이나 미국인들의 우매함 역시 그에 못지 않습니다.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헬기를 보내니 차를 보내니 하는 모습은 수단과 방법의 차이만 있다뿐이지 결코 나아 보이지 않습니다. 불편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보는 디제님이 바라보시는 '우매함,멍청함'이라는 기준 역시 서구,미국식 관점이 아닌가 싶네요. 또 치에코가 소통을 하지 못해 섹스를 원한다는 것 역시 다른 생각입니다. 소통을 하지 못하기에 섹스를 한다는 연쇄적인 논리이해는 적어도 이 작품과는 괴리가 있는 듯합니다. 섹스와 소통의 직접적 관계가 있다면 마치 섹스가 소통인 '척' 하려드는 점이 아닐까싶습니다.

    이 영화가 걸작의 반열에 오를만한 작품까지는 아닐지라도 나름의 의미는 소중해보입니다. 하나는 영화가 아무것에도 기능할 의지가 없는 영화적 허무의 시대에도 여전히 영화의 가능성과 의미를 탐색하려드는 영화적 야심이고 두번째는 그 마음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가해자들(의도했던 하지않았던 간에)과는 다르게 치에코는 유일한 소통의 피해자로 나름의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아버지의 진술로 인해 그 정당성은 사라집니다. 섹스로 더이상 소통이 아니라 도피일뿐이죠. 관객인 저는 그녀를 대하는 타인들에게서 고통의 이유를 찾아보려 했으나 그 이유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이제 문제는 모두의 것입니다.그것은 제게 자학이라기보다는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라고 느꼈습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랄까요... 모로코와 멕시코의 이야기는 만족하지 못했으나 이야기에서 가장 동떨어져보였던 일본의 이야기가 저를 누그러뜨렸네요.
  • 디제 2007/02/26 15:33 #

    kitano1님/ 제가 모로코인과 멕시코인 멍청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멍청하고 미개하게 묘사하는 감독의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죠. 근친상간적 훔펴보기나 총기 발사가 문화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이해가 가능한 것입니까? 그런 장면을 모로코인과 멕시코인에게 집중한 것 자체가 인종주의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테러네 마네, 헬기를 보내네 마네 하는 미국인이 우매하다고 하셨는데 그런 미국 정부의 조치보다는 모로코인과 멕시코인 캐릭터의 비중이 더 큰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미국인 캐릭터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로만 묘사되고 있죠.

    결국 kitano1님도 인정하셨지만 치에코가 섹스를 밝히는 것과 그녀가 입은 정신적 상처는 무관한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치에코가 납득이 가지 않는 캐릭터라고 말씀드렸고요.

    몇몇 분들과 덧글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바벨'에 대해 제가 가졌던 가장 큰 거부감의 이유는 감독인 이냐리투의 기독교적 원죄의식과 전지적 시점 때문인 듯합니다. 저는 '바벨'이 인간들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작품이 아니라 신의 관점에서 '거봐라, 인간은 불완전하고 그래서 고통 받는 거야'라는 식으로 마치 시혜적 관점에서 다루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지나치게 말하면 영화를 통해 너무나 우월적 시선을 과시하려는 듯 느껴졌던 것입니다.
  • croco 2007/02/28 22:50 # 삭제

    아주 시원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저 역시 그러한 점들로 불편하였으며, 치에코의 상징 또한 너무나 투박하고 촌스러워서 동감하기 힘들었습니다. 소통의 불편함을 말을 못하는 장애나 섹스에 대한 집착으로 표현한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지 않았나 싶거든요. 형사의 따뜻한 시선에 화해와 해소를 이루는 정말 공감안되는...촌스러움이라니...
  • 디제 2007/02/28 23:56 #

    croco님/ 저와 비슷하게 보셨군요... ^^
  • cutnpaste 2007/03/01 09:38 #

    성욕 관련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군요.
  • 디제 2007/03/01 14:20 #

    cutnpaste님/ 왠지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눈요깃거리로 여성을 상품화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