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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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 - 사랑과 배신에 관한 잔혹한 우화 애니메이션

커다란 눈과 미끈한 다리를 자랑하는 8등신의 여성 캐릭터, 강렬한 원색의 대비와 성우들의 과장된 연기가 주류를 이루는 10대 위주의 가벼운 작품이 판을 치는 일본 애니메이션 속에서, 정반대로 작은 눈과 평범한 체형, 실사를 연상케 할 정도로 명도와 채도를 떨어뜨린 사실적인 색채 감각, 중얼거리는 듯한 성우들의 연기와 시종 일관 음울한 분위기의 ‘인랑’은 주류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완 아톰’ 이래 테즈카 오사무가 작화 매수를 아끼기 위해 이룩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의 분절적인 움직임과 달리 극장판 ‘인랑’은 등장 인물들의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계산되었으며 부드럽게 움직인다는 점에서 또한 주류 일본 애니메이션과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인랑’은 극장판이고 리미티드 기법은 TV판 애니메이션에서 주로 사용되는 방법이어서 절대적인 비교는 무리이지만 ‘인랑’에서의 인물의 움직임은 여타 일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비해 두드러질 정도로 부드럽습니다.

오시이 마모루 원작 ․ 각본,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이 작품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가상의 일본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공투를 연상케 하는 과격 시위가 계속되는 불안한 정정 속에서 이를 진압하기 위한 조직인 수도경과 원래의 경찰 업무를 맡고 있는 자치경의 대립과 첩보전을 그린 작품입니다.

하지만 ‘인랑’의 초점은 속고 속이는 수도경과 자치경의 첩보전에 있지 않습니다. 시위 대원의 자폭을 눈앞에서 보고 흔들리는 수도경의 특기대원 후세와 시위대원 출신으로 자치경의 공작원으로 전향한 케이의 사랑과 배신이 그 주제입니다. 자신이 직접 감독을 맡았다면 다른 방향의 작품이 되었을 것이라고 서플에서 밝힌 바 있는 오시이 마모루의 인터뷰처럼, 오시이 마모루가 아니라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감독을 맡아, 작품은 ‘켈베로스’의 세계관을 다룬 작품 속에서도 독특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오시이 마모루가 감독을 맡았다면 보다 모호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며 후세와 케이의 관계는 뒷전으로 밀려났을 것입니다.

우화인 ‘빨간 두건’을 모티브로 삼고 있는 ‘인랑’은 작품 자체로서도 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랑’에 묘사되는 시대가 가상의 역사이고 후세와 케이의 관계의 결말도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비참해서 도리어 비현실적이라는 느낌마저 듭니다. 하지만 후세와 케이가 서로를 배신하는 심리만큼은 헤어질 것을 결심하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기로 마음먹은 이 세상의 수많은, 위기에 빠진 연인들의 심리와 동일할 것입니다. 따라서 ‘인랑’이 비참한 사랑의 결말에 관한 은유이자 우화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랑’은 감상 후에도 무겁게 짓눌리는 작품입니다. 후세와 케이에 관한 건조하며 음울한 스토리 뿐만 아니라 과격 시위 속에서 등장하는 화염병과 전경의 모습은 우리 나라에서도 70, 80년대 군사 정권 시절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이어서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 더욱 마음이 무거워 집니다. 따라서 연인과 함께 극장에서 팝콘과 콜라를 먹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볼만한 작품이 아닙니다. 국내에서의 흥행도 초라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극장에서 한 번, dvd로 세 번 반복 감상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제3의 사나이’의 하수도 추격 장면을 보고 ‘인랑’이 떠올라 세 번째로 dvd 플레이어에 걸어 봤습니다만 러닝 타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몰랐을 정도로 몰입해서 감상했습니다.

국내에 발매된 dvd의 사양도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dts까지 지원되는 본편과 서플이 별도의 디스크와 아마레이 케이스로 나뉘어져 있고, 16페이지 분량의 컬러 북클릿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며, 보다 전문적으로 작품을 파고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500여 페이지가 어마어마한 넘는 분량이 완전히 한글화된 콘티집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제 중고샵을 뒤지지 않는 한 구할 수 없는 고가의 한정판이 국내에는 일반판으로 판매되고 있는 셈이죠. 특히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과 독한 맘먹고 헤어지고 싶어 하는 분이라면 ‘인랑’의 감상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덧글

  • NeOSigmA 2004/09/05 20:10 #

    혼자서 극장가서 본 유일한 애니메이션입니다.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딱히 제가 그래서 그런게 아니라;;;)
  • 알트아이젠 2004/09/05 23:00 #

    고3 수능끝나고 이걸 학교에서 봤는데 2사람(저 포함)을 제외하고 더 넉다운이 되었더군요.
  • Yum2 2004/09/05 23:16 #

    극장에서 친구 서너명과 함께 봤습니다. 그 날 관객이 열명남짓했었는데 중반부터 다들 주무시더군요. 전 끝까지 봤답니다-^^v
  • 디제 2004/09/06 00:09 #

    NeOSigmA님/ 극장에 오래 걸려 있지도 않았는데 유일하게 극장에서 보신 애니메이션이라니... 인연이 있으시군요. 이 작품과.
    알트아이젠님/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을 생각하고 오셔서 이게 아니다, 싶은 분들이었겠죠. 대사도 발성이 밋밋하고 액션은 화려한 편이 아니라 조는 분들이 많았겠죠.
    Yum2님/ 어, Yum2님께서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보셨다나 의외입니다. 전공 때문이셨나요? ^^;;;
  • Utopia의꿈 2004/09/06 01:10 #

    제 부족한 지식을 보충하여 주신 디제님 감사합니다. 오늘 보니, 제 글에 관련글로 되 있더군요..너무 많이 배웠습니다.^^ 꾸벅^^
  • 디제 2004/09/06 02:08 #

    Utopia의꿈님/ 헉, 과찬이십니다. Utopia의꿈님의 이글루에 들어가 글을 읽어보니 저와 비슷한 또래 이시거나 조금 더 윗줄의 분이신 것 같더군요. 자주 놀러오십시오. ^^
  • Sion 2004/09/07 00:57 #

    주위의 악평에 비해서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재미가 느껴졌다는데 의외로 충격(?)까지 느껴지려고 했을 정도_no
  • 디제 2004/09/07 14:50 #

    Sion님/ 재미...는 처음에 극장에서 볼 때는 그저그랬는데 이상하게 머리속에 오래 남아서 dvd를 구입하고 반복감상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 muse 2004/09/09 00:05 #

    디제님 알아서 행복하군요. '인랑'은 지독한 사랑영화였어요. 드라큐라 이래 이런 처절한 사랑영화는 처음이였다는. 달콤한 사랑을 꿈꾸면 어떻게되는지 보여주었지만..전 특이한지 아름답더군요 숭고하고. 뭐랄까..그냥 아름다웠어요. 결국 사랑은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닌..오로지 두 사람이 느끼고 간직하는 신비한 영역입니다. 누구도 알수없고 누구도 들어갈 수없는 결계가는 것을 이 영화를 보고 느꼈죠. 이 영화를 보고 추천하고 싶은 말은 " 사랑합시다. 어설픈 교과서같은 사랑말고 두려움이 없는 계산없는 100% 순수하다못해 핏빛인 그런 사랑" 삶에서 한번쯤은요. 좋은 영화였고 순수한 영화였어요.
  • 재롱바라기 2004/11/30 10:49 #

    빨간모자에 얽힌 엄청난 비밀.. 왠지 볼 수록 무섭다는..;;
  • 동경 2005/09/09 14:56 #

    하아, 그랬나요;;;;
    저는 예전에 (지금은 헤어진)애인과, 그의 친구와 함께 셋이서 극장에서 봤었는데
    애인은 졸고, 그의 친구와 저만 끝까지 봤는데
    정작 엔딩에서 "누가 쏜거야?"하고 있는데 졸다 깬 제 애인만
    누가 쐈는지 정확하게 봤달까요;;
    (대체 난 뭘 본건지 orz)

    어렸을 때였고 아무 생각없이 살던 때였고 멍청했던 때였기에
    다시 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펌프킨 2006/02/20 22:27 #

    제목에 너무 집착해서 인지 정작 중요한 스토리는 흘려 봤다는...^^:;
    게다가 공각 기동대에 또 너무 편견을 가져서인지, 실사적인 인물묘사에 왠지 영화같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리얼리티에 너무 힘을 쏟다가 지루해져버린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 애니였습니다.
    역시 애니는 적당한 환타지와 사람들이 동경할만한 비주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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