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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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 - 불쾌하고 끔찍한 정치 영화 영화

헬보이 - 론 펄만의, 론 펄만에 의한, 론 펄만을 위한

본 포스팅에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944년 스페인 내전 당시 임신한 엄마를 둔 오필리아(이바나 바쿠에르 분)는 계부 비달 대위(세르지 로페즈 분)의 임지로 오게 됩니다. 비달이 이끄는 프랑코의 정부군이 게릴라를 참혹하게 말살하는 와중에 오필리아는 요정 판(더그 존스 분)을 만나 세 개의 열쇠를 얻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파쇼적인 계부와 재혼하여 임신한 어머니를 사이에 둔 어린 주인공이 환상의 세계를 접하며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점에서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의 전반부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걸작 ‘화니와 알렉산더’를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종교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가정사에 불과했던 ‘화니와 알렉산더’와 달리 ‘판의 미로’에서 오필리아에게 닥친 문제는 그녀가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파시스트와 게릴라의 내전의 참담한 현실입니다. 오필리아가 환상의 세계에서 해결해야할 임무가 있지만 그것은 현실을 해결하는 데 그 어떤 도움을 주지 못하며 그녀의 현실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동화가 현실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은 극중에서 엄마의 대사에서도 확인되며 영화 속에서도 판타지가 차지하는 부분의 러닝 타임은 영화 속 현실의 내전에 비해 그 비중이 미미합니다. 주인공 오필리아가 어린이이기는 하지만 ‘판의 미로’는 동화가 현실에 패하는 비관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필리아가 계부에게 총을 맞고 죽는 장면에서 왜 이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가 아니라 스페인 영화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증명합니다. 오필리아가 지하왕국의 공주가 되었다며 해피 엔딩처럼 끝맺고 있지만 관객 중에 이 영화를 해피 엔딩으로 간주하며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불쾌함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도그빌’보다도 카타르시스가 취약하여 끝까지 뒷맛이 찝찝합니다. ‘판의 미로’는 어린이들의 영화가 아니라 어른의 영화인 것이며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말랑말랑한 헐리우드 판타지의 극단적인 대척점에 위치한 유럽 정치 영화입니다.

잔혹한 현실은 불쾌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판의 미로’는 어지간한 공포 영화나 고어물보다 더욱 끔찍스럽습니다. 임신한 엄마가 하혈하는 장면이나 마취도 하지 않은 채 다리를 자르는 장면, 죽음에 공포를 느끼는 게릴라에게 확인 사살을 하는 장면은 맛배기에 불과합니다. 입 속에 넣은 칼로 뺨을 도려내거나 이를 꿰매는 장면을 똑똑히 보여주는 것은 내전으로 점철된 당시의 처절한 정치 상황의 압축적 제시입니다. 현실이 비참하니 동화 속 세상도 밝을 수는 없는 법. 판을 비롯한 요정들은 징그러우며 유아 학살을 일삼는 양 손에 눈이 달린 괴물(아마도 판을 연기한 더그 존스의 1인 2역으로 보입니다. 더그 존스는 길예르모 델 토로의 전작인 ‘헬보이’에서 에이브 사피엔 역을 맡았는데 에이브 사피엔과 양 손에 눈이 달린 괴물은 체형과 얼굴 모양새가 흡사합니다.)은 기괴합니다. 심지어 엄마의 병을 호전시키는 허브 인형 뿌리조차 지저분합니다. 이렇게 기괴한 장면을 뒷받침하는 음향 효과는 대단히 뛰어나 공포와 불쾌감을 배가시킵니다.

끔찍한 정치 영화가 판타지의 허울을 뒤집어쓰고 15세 관람가가 되었다는 데에 영등위와 배급사에 극심한 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팜플렛에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인 ‘스페인 내전’이라는 단어는 아예 없는데 차라리 18세 관람가로 하고 공포 영화나 고어 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홍보의 승부를 걸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덧글

  • 아마란스 2006/12/12 17:16 #

    안그래도 볼까말까 생각중인 물건.
    15 세인 주제에 혐오스럽고 하드고어하니 주의하세요 라는 황당한 문구가 압권인...그럴거면 18 세 때리던가;
    홍보도 무슨 해리포터나 나니아 연대기같이 해놔서 어린이들과 같이 볼 수 있는 환상적인 동화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던...우리나라 왜 이래 라고 문득 생각했죠. (...)
  • 나르사스 2006/12/12 17:56 #

    한국은 무조건 상영 연령을 낮추면 장땡인줄 아는 곳이 많죠. 좀 더 많이 불러들일 수 있으니...
  • 키라 2006/12/12 18:34 #

    재미있는 것 같네요
  • antiwhite 2006/12/12 21:38 #

    저도 판타지인줄 알고 냅다 봤다가.. 당혹스러웠습니다.

    차라리 판타지가 아닌줄 알고 봤다면 상당히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낚였다는 생각에 보고 나서 좀 찝찝했습니다 ㅡㅡ;
  • 미소띤독사 2006/12/12 22:50 #

    저를 낚은 영화입지요. 학교에서 단체로 보러 간다기에 가볍게 아무 생각없이 보러 갔다가 기분만 잡쳤습니다. 뭐, 제가 워낙 끔찍한 걸 혐오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지루했습니다. '다음 장면은 이거겠지'하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참...내용이 뻔하다는 면에서는 '동화'가 맞더군요. 같이 본 애들 만장일치로 악평을 늘어놓았는데, 이글루 검색해보니 전부 별 네댓개로 평하셔서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_-;;

    오필리아의 환상...현실과 연결고리가 2개 있죠. 분필과 만드라고라. 그래서 그게 마냥 환상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만...결국 메르세데스를 오열하게 만든 현실을 바꾸진 못하니...무의미할라나요.

    가장 끔찍한 현실은 결국 역사적으로 스페인 내란은 정부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는 것 아닐는지.
  • 민도리 2006/12/13 13:41 #

    디제님 영화소개 글 읽으니 베르세르크가 딱 떠오르네요. 그리피스가 페무토가 되고 난 다음 에피소드인
    나방인지 나비인지가 사도로 나오는... 안그래도 포스터의 양머리 보니 베르세르크생각나는데....
  • 디제 2006/12/13 17:29 #

    아마란스님/ 작품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괜찮은 영화입니다. 단,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보셔야 할 듯 합니다. 단순히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게 아니라 정서적으로 고통스럽게 하니까요.
    나르사스님/ 그래서 영화사에서 알아서 자르고 개봉하는 경우까지 있죠...
    antiwhite님, 미소띤독사님/ 홍보사에 낚이셨군요. --;;; 영화를 볼 때 별점 따위를 매기지는 않지만 별 네 개를 주는 것은 후한 평가가 아닌가 싶군요...

  • ZAKURER™ 2006/12/13 17:29 #

    동화의 결말(환상의 말로)을 보여줬다는 점 때문에 올해 본 영화 중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영화입니다.
    수입배급사의 낚시질만 빼고 말이죠. :-)
  • 디제 2006/12/14 14:55 #

    ZAKURER™님/ 배급사는 그렇다쳐도 영등위의 등급 분류는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바다 이야기나 과거 영화 가위질 하던 것도 그렇고 영등위라는 곳이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이준님 2006/12/16 12:30 #

    ...우리나라의 일반 관객들중에 스페인 내전에 대한 함의를 아는 분이 드문것도 사실이지요. 더군다나 해리포터 아류로 승부하려는 게 전략이었으니(우리나라 배급사 말입니다.)

    PS: 글구 보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독일"군과 싸우는 영화로 아는 분도 의외로 많았고 스페인 모 관광지 (프랑코 파시즘 군의 장교가 아들을 잃으면서도 불멸의 저항을 했던 -_-;;)에 한글 표지판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그 불굴의 의지를 자랑스럽게 방송했던 경우도 있지요.

    뭐 우리나라에서는 "마루타" 같은 영화도 국딩 관람한 전력이 있지요. 중국에서는 "등급외"인데 말입니다
  • 디제 2006/12/17 00:54 #

    이준님/ 다행히 제가 다닌 학교는 '마루타' 단체 관람은 안했는데 그거 봤던 애들은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다는군요. --;;;
  • loveword 2007/02/26 16:43 # 삭제

    판타지란 장르는 본래 잔혹하다고 봅니다..당연히 관점이 틀리신 분들이 있으시겠지만..
    판타지속 생명체는 사람들과 대립합니다..당연히 잔혹하다 봅니다..

    저역시 이영화를 보며 충격을 금치 못했습니다..영화 도입부분의 총격과 병으로 사람의 면상을 치는 장면..
    그러나 이영화를 잘못 다른 배급사의 잘못이라 봅니다..제가 보기에 이영화는 충분히 아름다운 판타지고..
    충분히 사람들을 매료시킬수 있는 배경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어린아이의 상상속의 세상이라면 잔혹하지만 충분히 그 가치를 가진 최고의 영화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한번 보아 주시는것은 어떠신지..
  • 오필리아 2010/02/02 22:51 # 삭제

    저는 오필리아가 아름다운 세상을 환상속에서 살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정말 이런 장르가 좋아요.
    아름다운 슬픈 잔혹동화여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잔인한 걸 보려고 하면 절대로 이 영화의 진짜모습을 볼수 없습니다.
    강추!
  • 휘남 2012/04/01 13:36 # 삭제

    선악의 대결입니다. 대위를 처단할 수 있었던 것은 오필리아 덕분이죠. 오필리아가 아이를 가지고 미로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대위는 도망쳤을 것이고 아이는 절대 악인에 의해 키워져 더한 악인이 됐을 것입니다. 선이 이긴 겨죠. 아이들에게 선은 악을 이긴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져온 결과는 오필리아의 동화를 믿는 순수함 때문이라서 어린이들에게 순수함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 휘남 2012/04/01 13:38 # 삭제

    잔혹함을 더한 것은 어린이들이 아는 현실은 그저 동화와 같지만 현실은 잔혹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렇지만 어린이들에겐 그 현실에 핍부에 닿지 않기에 이렇게 잔혹한 것이 과연 현실일까 하는 의문이 들것입니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겠죠. 어른이 되면 꼭 이 영화를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 무만 2012/04/16 18:29 # 삭제

    반파시즘 영화에 기독교적인 주제를 가진 영화를 판타지 영화로 생각하고 보셨으니....
    솔직히 잔혹동화로 보신분들도 저는 감상 포인트를 잘못잡은거라고 생각하지만요..

    참고로 해당 작품은 칸느영화제에서 20여분간 기립 박수를 받은 영화이며 아카데미 수상작에다가 외국에서는 흥행했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한국에서는 쪽박.... 이건 솔직히 흥행사 탓이죠.
    뭐, 애초에 한국에서 블록버스터, 헐리웃식 단순하고 말초적인 영화말고는 흥하지 못하는것도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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