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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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 일상 속의 돌발적인 폭력 영화

영화는 백일몽입니다. 액션이나 모험, 공포, 스릴러 등 영화 속의 이야기는 현실에 지친 사람들에게 기분전환이자 청량제로 작용합니다. 그런 영화의 매력 때문에 사람들은 거금을 지불하고 어두컴컴한 객석에 앉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면 관객은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교가 배제된 채 아이들을 조용히 뒤따르는 카메라의 롱테이크만이 묵묵히 오후의 일상 속의 돌발적인 폭력을 잡아내는 ‘엘리펀트’는 마음의 준비가 된 관객에게도 껄끄러운 영화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오전 11시에 ‘엘리펀트’를 보기 위해 강변 CGV를 찾은 관객은 10여명에 불과했지만 뒷좌석의 아줌마들은 핸드폰으로 통화를 했고, 앞좌석의 젊은 여자들은 롱테이크가 지겨운 듯 끊임없이 자기들끼리 소곤대다가 영화가 끝나자 ‘이게 뭐야, 이런 영화인지 몰랐어’라며 나가더군요. 영화와는 아예 어울리지 않는 초로의 부부들 역시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아마 영화제에서 관람했다면 최소한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겠죠.)

작년의 칸 황금 종려상의 ‘엘리펀트’과 올해 칸 황금 종려상의 ‘화씨 9/11’을 비교해보면 ‘화씨 9/11’은 매우 친절한 영화라는 것입니다. 원인(부시의 실정)과 결과(9/11 테러), 그리고 대안(부시의 낙선)이 매끄럽고 유머스럽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펀트’는 원인과 결과는 매우 불분명하며 대안은 아예 없습니다. 총기를 난사하는 두 아이들이 왕따 당하고 히틀러에 관심이 있으며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과인 총기 난사는 끝까지 그려지지도 않습니다. 또다른 살인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카메라는 갑작스레 푸른 하늘로 시선을 돌립니다. 대안? 그런 건 아예 없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절망적으로 느껴집니다. 유달리 아이들의 숨소리가 크게 느껴지는 영화 내내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더더욱 당혹스럽게 느껴지는 폭력은 관객들에게 더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듭니다. 질문을 던져 놓고 정답은 주지 않는 것입니다. 각자 생각해봐라, 라고나 할까요. 장님 코끼리 만지듯 말입니다.

아이들은 정말 무고하게 희생됩니다. 왕따들이 죽이는 아이들은 왕따를 시킨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왕따 당한 아이도 있고 왕따를 시키는 것과 아무런 상관 없는 아이들이 대다수입니다. 쓸데없이 학교에서 애정 행각을 낯 뜨겁게 벌이는 아이들도 없고, 마약은커녕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런 아이들의 죽음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엘리펀트’가 신문 기사에서 영화 전문 기자들이 기사를 써놓듯이 지루하게 롱테이크만이 반복되는, 기교가 완전히 배제된 ‘날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간의 순서를 편집과 카메라 촬영 각도의 변화를 통해 절묘하게 재분배한 묘미가 돋보이는 영화라는 점입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엘리펀트’에서 묘사하는 시간이 하루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며칠 동안의 일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 작품이 dvd로 국내에 발매된다면 ‘메멘토’처럼 시간순으로 편집한 서플이 들어간다면 좋겠군요.


<바로 이 장면에서 '엘리펀트'가 절묘한 촬영과 편집이 이루어진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롱테이크는 결코 쉬운 촬영 기법이 아닙니다. 배우들의 대사와 걸음걸이, 몸짓 하나하나에 치밀한 계산이 선행되어야만 제대로 촬영될 수 있는 것이 롱테이크입니다. 게다가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해 영화를 찍었으니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를 기교가 배제된 영화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P.S. 오늘 갑자기 조회수가 두 배 이상으로 뛰길래, 이글루의 통계 시스템이 이상이 생겼나 했더니 헬보이에 관한 포스팅이 밸리에 올라갔군요. 이런이런...

덧글

  • 마르스 2004/08/31 17:36 #

    전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봤습니다. 영화제 마지막날 마지막 상영이어서 자원봉사자들이 단체로 나와서 인사하더군요.
    저도 이 영화보면서 너무나 무미건조한것에 당황하였으나, 황당하진 않았어요. <볼링포컬럼바인>이 다큐멘터리면서도 상당히 극적으로 그린데 반해, 이 영화는 극영화이면서도 상당히 정적이죠.
  • supasonic 2004/08/31 17:47 #

    정말 잘 읽었습니다. 영화를 본지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도 계속 아득하기만 했는데 해소의 후련함을 느끼게 되는군요.
  • 디제 2004/08/31 18:05 #

    마르스님/ 볼링포컬럼바인을 아직 안봤는데 봐야겠군요.
    supasonic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다면 감사합니다.
  • 알트아이젠 2004/08/31 22:33 #

    이오공감에서 찾아왔습니다.
    그나저나 얼음집을 돌아다니면 보고 싶은 영화가 너무 많이 생겨서 난감해요. ㅜ.ㅜ(돈도 얼마 없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자주 찾아올꼐요.(링크했습니다.)
  • 디제 2004/08/31 23:00 #

    알트아이젠님/ 영화 많이 보기는 돈이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 할인 카드를 쓰면 돈 걱정은 별로 안할 수 있으니까요. 링크 대환영입니다. ^^
  • 슈퍼주인 2004/09/05 21:18 #

    저도 볼링포컬럼바인 보고싶었는데 놓쳤어요. 흑흑. :(
    <엘리펀트>는 월요일 첫회에 보러갔더니
    영화관에 아무도 없어서 혼자서 봤거든요. 큰 상영관에서 혼자보기에 딱 맞는영화에요.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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