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스트 앤 퓨리어스 : 도쿄 드리프트’(이하 ‘도쿄 드리프트’)와 같은 작품에서 내러티브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미국이 일본(도쿄)을 조명하는 방식이 가벼운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은 부질없습니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블랙 레인’, ‘미스터 베이스볼’ 등 일본을 배경으로 했던 헐리우드 영화들보다 ‘도쿄 드리프트’ 속의 일본은 더욱 희미해 그저 달리는 레이싱 카의 뒷배경에 불과합니다. 야쿠자가 너무 카리스마 없다거나 극중 일본인 역할 배우들의 일본어 대사가 서투르다거나(이런 건 ‘007 다이 어나더 데이’의 한국어 대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습니다만.) 히로인이 별로라든가(닐라 역의 나탈리 켈리는 사실 별로입니다. 초반부에 잠시 등장한 치어 리더 역의 배우가 훨씬 매력적입니다.)하는 결점들에는 신경 끄고 현란한 경주 장면만 즐기면 됩니다.
초반부에 미국에서 건축 중인 주택가를 배경으로 벌이는 레이싱은 전주곡에 불과합니다. 금속성 초록빛으로 도쿄 시내를 잡아내는 미장센은 매우 유려하며 실제로 시부야와 신주쿠에서 촬영한 카 체이싱 장면은 도대체 어떻게 찍었을지 궁금할 정도로 화끈합니다. (아마도 도쿄시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을 듯.) 마치 '릿지 레이서'와 같은 게임을 그대로 실사로 옮겨 놓은 듯 합니다. 극장에서 대화면과 빵빵한 사운드로 관람했다면 이 장면만으로도 본전은 뽑은 셈입니다.
시종일관 뻣뻣한 주연급 배우(사실 ‘도쿄 드리프트’의 주연은 배우가 아니라 자동차입니다만.)보다는 사무라이 영화의 스타이자 ‘킬 빌 Vol. 1’의 소니 치바의 느긋함이나 단 한 장면 등장하는 츠마부키 사토시, 그리고 결말에서 잠시 등장하는, 영화의 성격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카메오(스포일러가 될까봐 이름은 밝히지 않습니다.)가 더욱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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