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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 진짜 괴물은 무능한 한국 사회 영화

플란다스의 개 - 재평가받아야 할 걸작 코미디
살인의 추억 - 범인 없는 걸작 토종 스릴러

본 포스팅은 영화 ‘괴물’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박희봉(변희봉 분)과 함께 한강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무능한 강두(송강호 분)는 중학생 딸 현서(고아성 분)를 괴물에게 습격을 당해 잃습니다. 죽었다고 생각한 현서에게 전화를 받은 강두는 격리된 병원에서 탈출해 운동권 출신의 백수 남동생 남일(박해일 분), 양궁선수 여동생 남주(배두나 분)와 함께 괴물을 추격합니다.

‘괴물’은 초반부에는 괴물의 일부분이나 실루엣만을 보여주며 공포감과 호기심을 극대화하는 ‘죠스’를 비롯한 대다수의 괴수 영화가 선택하는 보편적인 전략을 과감히 포기합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괴물은 전신을 노출시키고 한강변을 휩쓸며 무차별 살육을 자행합니다. 왜냐하면 영화 ‘괴물’의 진짜 괴물은 영화 속의 괴물이 아니라 한국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괴물’은 지독히 한국적이며 정치적입니다. 괴물의 형성 원인이 2000년 미군의 독극물 방류 사건이라는 실제 사건에 기반하여 미군의 무책임을 비꼬는 것에서 영화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멀게는 한국 전쟁 당시 노근리 학살 사건에서 근래의 윤금이 씨 살해사건이나 미선, 효순 양 사건 등 무수한 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바이러스를 조작하여 한국을 장악하려는 미국의 음모가 덧붙여지면서 ‘괴물’의 반미적인 시각은 유감없이 드러납니다. 어쩌면 한나라당이나 조중동과 같은 보수 세력이 ‘괴물’을 문제 삼는 것은 시간문제인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봉준호 감독이 민주노동당원이라는 것 때문에 이전부터 눈에 가시였으니 말입니다.

이보다 더 비중 있게 조명되는 것은 대형 참사가 되풀이 되어도 개선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취약함입니다. 수없이 많은 희생자를 내고도 우왕좌왕하는 장면은 성수대교 참사(아예 괴물의 본거지가 극중에서 원효대교가 아니라 성수대교였다면?!)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비롯한 대형 참사의 악몽을 떠올리게 합니다. 강두가 현서와 감이 나쁜 전화로 통화하는 장면은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 열차 속에서 갇힌 채 죽어가는 여학생이 부모에게 전화해 통화했던 실제 사건을 연상케 합니다. 괴물에게 살해당한 많은 사람들의 영정이 늘어선 합동 분향소 장면은 ‘사고 공화국’이라는 말처럼 대형 참사 때마다 너무나 익숙한 모습입니다. 유가족의 슬픔은 아랑곳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언론의 하이에나적 속성도 도마 위에 오릅니다. 물론 잘못되고 조작된 정보를 검증 없이 뉴스를 통해 방영하는 언론에 대한 불신은 황우석 사태를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을 비꼽니다. 우습게도 괴물과 박강두 가족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극중에서 MBC 뉴스인데 이는 황우석 사태 당시 MBC 뉴스와 PD 수첩 간의 엇갈린 보도를 연상케 해 쓴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한국 정부의 무능입니다. 일선 공무원, 경찰관의 부패와 무지 속에서 군대를 투입하고도 괴물과 교전 한번 제대로 벌이지 못한 채 미국에 의해 장악당하는 한국 정부는 가장 무서운 괴물이자 최종적인 조롱의 대상입니다. 무능한 정부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박강두 가족이 괴물과 맞서지만 유일하게 죽음을 맞는 인물이 가족 중에 공권력(정부)을 가장 많이 신뢰하고 복종했던 아버지 희봉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상당합니다. 경찰이 설정한 방어선은 시민단체를 비롯한 시위대에 의해 뚫리고 맙니다. 결국 괴물은 군대나 경찰의 도움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가족과 노숙자(윤제문 분)가 힘을 합쳐 퇴치하는데 공권력이 아니라 권력과 자본이라는 면에서 최하층인 노숙자가 괴물 퇴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또한 공권력에 대한 조소입니다. 결국 무능한 강두가 괴물의 숨통을 끊는다는 것은 강두가 아무리 무능해도 정부보다는 낫다는 냉소적인 결론에 도달합니다. 정부의 무능 속에서 미시적인 관점에서 힘없는 민중들의 투쟁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괴물’은 ‘인디펜던스 데이’보다는 ‘싸인’이나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에 가깝습니다. (물론 유머 감각에서는 두 작품보다 ‘괴물’이 한 수 위입니다.) 괴물이 죽은 뒤 자욱한 연기만이 남아 있는 한강변은 전쟁과 같은 민주화 시위와 최루탄 연기의 기억을 회상하게 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사회적으로 진보적 시각을 가진 '괴물'이 한국 사회의 무능함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가족을 들고 나온 것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모성이 결여된 가족이 힘을 함쳐서 간신히 괴물을 퇴치할 수 있었다는 결론은 여름 시즌 극장가에서 관객을 잡기 위한 주제로서는 적합할 지 모르지만 치열한 문제의식에 대한 해법으로는 뜬금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달수가 목소리를 녹음한 타이틀 롤 괴물의 형성 원인과 실루엣은 극장판 ‘패트레이버 3’의 폐기물 13호와 유사한 느낌입니다. 모델링을 웨타가, 특수 시각 효과를 미국의 오퍼니지가 맡았지만 괴물의 움직임이 배우나 배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튀는 몇몇 장면들도 눈에 띕니다. 이는 미국의 회사가 한국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긴 영화 속의 한강은 우리가 보아온 일상적인 한강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봉준호 감독의 전작에 등장했던 네 명의 배우보다는 극중 가족들 중에서 가장 어리지만 가장 영리한 현서 역의 고아성이 의외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연기도 인상적입니다. 이밖에도 김뢰하, 고수희, 윤제문 등의 조연 배우들과 ‘남극일기’의 감독 임필성도 등장 시간은 짧지만 확실하게 각인됩니다.

올여름 최고의 화제작 ‘괴물’은 대단히 흥미진진한 텍스트이며 수많은 알레고리를 내포하고 있는 걸작('괴물'은 '고지라'보다는 몇 수 위입니다. 곧 개봉될 일본에서 '괴물'을 느슨하고 관습적인 괴수 영화쯤으로 생각한 일본인들은 개봉 이후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이지만 봉준호 감독의 전작 ‘살인의 추억’과 같은 흥행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살인의 추억’이 1980년대의 한국 상황을 고발했기에 관객들이 다소 편안하게 20년 전의 사건을 수용할 수 있었다면 ‘괴물’은 1990년대 이후 최근까지 인재(人災)로 얼룩진 한국 사회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당히 잔혹한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12세 관람가라는 메리트가 흥행에 어떻게 작용될지도 주목됩니다.

덧글

  • 네모스카이시어 2006/07/27 04:09 #

    역시나 기대한 보람이 있을 듯한 영화로군요. 겨봉 직후 사람이 많을 대를 피해서 조만간 보러 가야겠습니다.
  • delius 2006/07/27 09:45 #

    평 잘 봤습니다. 제목이 넘 맘에 듭니다. "진짜 괴물은 무능한 한국 사회" ^^
  • 아마란스 2006/07/27 13:56 #

    팀버튼의 화성침공처럼 결국 괴물을 물리친게 시위대도 아니라 군대도 아니라 미군도 아니라 화학병기도 아니라 일반 소시민들이라는 것도 꽤 좋았습니다. 어떤면에서는 킹콩이랑 비슷한 충격을 받기도 했어요.
    전체적으로 꽤 재미있었습니다.
  • nari 2006/07/27 15:07 # 삭제

    영화를 보는 내내 괴물의 실체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만큼 찹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생각하던 바를 글로 잘 써주셔서 재미있게 읽고갑니다.
  • SAGA 2006/07/27 17:21 #

    포스팅 제목이 정말 인상적이군요. 조만간 보러가야겠습니다. 허헐......
  • 물빛바람 2006/07/27 21:04 #

    참 재밌게 봤습니다만 가슴에 남았던 알지 못할 씁쓸함이 뭐였는지.. 이 글을 읽고 나니 알 것 같네요 ^^; 글 잘 읽었습니다. 배두나의 스타일리쉬한 사격은 각막에 남았어요 >_<;
  • 이든 2006/07/27 22:28 #

    지독히 한국적이고 정치적이라는 말. 굉장히 가슴에 와닿습니다.
    방금 보고 왔는데, 정말 굉장하더군요. 정말 재밌게 보고 왔습니다.
  • 준군 2006/07/27 23:15 # 삭제

    좋은 글입니다^^

    수정요망:임필성 감독으로...
  • Ernest 2006/07/28 00:57 #

    방금 괴물 보고 왔는데 글 아주 잘 쓰셨네요.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도 알고 가네요. 특히 봉준호 감독이 민주노동당원이라는 것은 흥미롭네요. 잘 읽고 갑니다.
  • 디제 2006/07/28 01:29 #

    네모스카이시어님, SAGA님/ 영화를 보시고 이 포스팅을 읽으시면 사뭇 느낌이 다르실 것 같습니다.
    delius님, 이든님/ 감사합니다.
    아마란스님/ 괴수물에서 정부가 괴수를 퇴치했다, 가 되어버리면 맥빠져버리죠. 그래서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 괴수와 맞서는 내러티브를 활용하는데 '괴물'은 평범 그 이하의 루저들이 괴수와 맞서는 영화라 더욱 대단한 것 같습니다.
    nari님, 물빛바람님/ 저도 마냥 웃고 즐기지 못하고 왠지 착잡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준군님/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rnest님/ 봉준호, 박찬욱 감독, 배우 문소리가 민주노동당원이죠.
  • LINK 2006/07/28 02:30 #

    그리고보니 얼마전 일본여행에서도 벌써 극장에 포스터도 붙어있고 '찌라시'도 있고 하더군요. 제목이 그대로 '구에무루'여서 재미있었습니다.^^
  • Kainian 2006/07/29 10:27 #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야 할지, 아는게 많아야 생각할게 많아지고 보이는게 많아지군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
  • 이준님 2006/07/29 11:10 #

    1. 의외로 조중동쪽에서는 "일반적인 감상"평을 올렸습니다. 다만 스포일러 피하기인지 고의인지 "반미적 텍스트"은 언급을 안하고 넘어갔지요

    2. 사실 전후 세대에게 "전쟁의 참혹성"은 인식할수 없고 현재 생활에서 "괴물의 공격"에 대한 인식을 하기는 어려운 일 아닙니까. (6.25나 태평양 전쟁만해도 아직 생존자가 있지만) 그러나 그러한 "환타지" 측면을 저정도 현실과 일치시킨것만 해도 대단한 일입니다.

    3. 살인의 추억의 경우는 "20년전의 사건"이라는 죄의식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사회 묘사이자 "그렇지만 아직도 현실과 맞닿아 있는" 중간적인 작품입니다. 극중 대사에 나오는 "문귀동"이라는 인물 -_-;;;에 대해서 의문 혹은 킬킬거릴 -_-;;;(극장에서 그런 사람 봤음) 정도의 시간이지만. 배경 묘사(수사반장 음악)등등은 아직도 현실과 맞닿을수 있죠. (동일 주제로 임진왜란 전후를 다루었다면 이런 동질감은 없었을겁니다.)
  • 이준님 2006/07/29 11:13 #

    4. 괴물의 경우는 전혀 무관한 판타지이지만 의외로 2000년대의 현실과 맞닿은 거죠.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로 알고 왔다가 상당히 머리를 치는 듯한" 작품일겁니다. 다만 헐리웃 블록버스터나 일본 괴수류의 "재미"보다는 못미치지만 그런 괴리를 충분히 현실인식에서 찾았다고 봅니다.

    ps: 소시적에 "운남 국민당"을 소재로 한 역사극 "이역" 이 생각나더군요. 어느 평대로 "배우의 네임벨류-이 경우는 감독이지만-만 보고 편하게 왔다가 자세를 바로하고 극장을 나가는 작품"이라는데 이 작품 역시 딱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변희봉 선생도 정말 나이가 들수록 연기의 깊이가 살아나시는 군요
  • Monster 2006/07/31 20:24 # 삭제

    저도 비슷한 생각.. +_+
  • 카스테라 2006/08/03 17:25 #

    잘 읽고, 트랙백해갑니다- :)
  • 디제 2006/08/05 12:21 #

    LINK님/ 지금 일본에 개봉중인 '일본 침몰' 같은 작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Kainian님/ 과찬이십니다.
    이준님/ 의외로 흥행 속도가 장난이 아닌데 한동안 한국 영화가 침체되어서 모든 매스컴에서 총력을 동원해 밀어주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먼저 올라간 '한반도'와 '괴물'에 뒤에 개봉되는 '플라이대디', '각설탕' '다세포 소녀'는 피볼 것 같습니다.
    Monster님/ ^^
    카스테라님/ 트랙백 환영합니다.
  • yucca 2006/08/06 23:39 #

    괴물의 가족이 결과적으로 대안가족의 모습을 띄고 있다는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 디제 2006/08/10 16:26 #

    yucca님/ 괴물의 대안이 가족이긴 한데 좌파적 사고방식을 지닌 봉준호 감독이 왜 하필 가족을 대안으로 선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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