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칼럼'인가
최근 대유행인 블로그를 정의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글루스를 비롯한 수많은 블로그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인 혹은 그룹이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포스팅을 직접 올리며 덧글이나 트랙백을 통해 다른 블로거들과 소통한다는 것입니다. 언론사 홈페이지나 포털 사이트의 기사들과 블로그의 차이를 꼽으면 바로 ‘소통’이 핵심입니다. 신문 기사는 기자가 송고한 이후 수많은 덧글이 달려도 기자가 덧글에 반응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 정도로 일방적 전달에 그치지만 블로그는 블로거가 직접 포스팅을 올리고 덧글로 소통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포스팅만 일방적으로 올리고 덧글에 대해 아무런 응답이 없는 ‘소통불가능’한 블로그는 결국 방문객이 감소하고 방치되거나 폐쇄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이글루스 밸리의 꼭대기 노른자위에 자리잡은 ‘이글루스 칼럼’(이하 ‘칼럼’)이 블로그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강합니다. 우선 정오가 되면 이오공감과 함께 동시에 업데이트되는데 그 방식이 의심스럽습니다. 이오공감은 그 전날이나 당일에 자신의 블로그에 포스팅한 이글루 블로그 중 다섯 개의 포스팅을 이글루스 측에서 선정한 것입니다. 그 포스팅의 수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자신의 블로그에 블로거 스스로 직접 올렸다는 점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칼럼’은 칼럼의 저자(이하 ‘칼럼리스트’)들이 이글루스 측에 글을 송고하면 이글루스 측에서 정오를 기해 동시에 올립니다. 즉, 칼럼리스트들이 자신의 포스팅을 직접 올리는 것이 아니라 칼럼을 이글루스 측에 송고하면 이글루스 측에서 보유하고 있다가 이글루스 운영자가 올리는 것입니다. 결국 ‘칼럼’은 칼럼리스트들이 직접 올리는 포스팅이 아니라 ‘송고’되는 글이기 때문에 블로그보다는 신문사나 포털에 올라오는 신문 기사에 가깝습니다. ‘칼럼’을 블로그로 보기 힘든 이유 중 하나입니다.
칼럼리스트가 '칼럼'에 직접 올리는 글이 아니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소통’이라는 측면에서도 낙제점을 보이는 ‘칼럼’이 상당수입니다. 비록 저조한 호응도로 인해 이오공감보다 현저히 적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칼럼’에도 다른 이용자들의 덧글이 달립니다. 하지만 ‘덧글’에 대한 주인장의 답글이 없거나 미미한 ‘칼럼’이 다수입니다. mini님의 ‘lifestylist’ 를 비롯한 세 건의 ‘칼럼’에는 덧글에 대한 주인장인 칼럼리스트의 답글이 전무하며 서울님의 ‘이제경의 Great CEO’를 비롯한 다른 ‘칼럼’에서는 덧글에 대한 주인장의 답글은 가뭄에 콩 나듯 미미한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이글루스 운영자)이 올려주기 때문에 블로그라는 매체에 대한 인식이나 자각 없이 신문기사처럼 일방적인 전달이 ‘칼럼’의 성격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과연 ‘송고’된 이후에 칼럼리스트들은 자신의 블로그와 덧글을 확인하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방치된 ‘칼럼’이 상당수입니다. 겉으로는 이글루스 스킨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본성은 블로그가 아닌 것입니다.
이글루스 안에서 모든 이용자는 평등했습니다. 비록 이오공감과 이글루스 피플이 있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포스팅을 직접 올리고 덧글로서 소통하는 이글루스 이용자 중에서 선정된 것이었지 신문기사를 송고하듯 소통도 없이 일방적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이 선정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칼럼’의 칼럼리스트들은 자신이 블로거라는 인식조차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글루스 밸리의 노른자위를 낙하산을 타고 온 것처럼 떡하니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글루스 내부에도 이제 ‘귀족’과 ‘평민’의 이분법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정녕 이글루스가 원하는 방향성은 무엇입니까? 언론사의 신문 기사를 노른자위에 올리는 포털입니까? 그리고 타인이 올려주는 방식에 기대어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칼럼리스트들, 그들이 블로거입니까?
최근 대유행인 블로그를 정의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글루스를 비롯한 수많은 블로그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인 혹은 그룹이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포스팅을 직접 올리며 덧글이나 트랙백을 통해 다른 블로거들과 소통한다는 것입니다. 언론사 홈페이지나 포털 사이트의 기사들과 블로그의 차이를 꼽으면 바로 ‘소통’이 핵심입니다. 신문 기사는 기자가 송고한 이후 수많은 덧글이 달려도 기자가 덧글에 반응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 정도로 일방적 전달에 그치지만 블로그는 블로거가 직접 포스팅을 올리고 덧글로 소통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포스팅만 일방적으로 올리고 덧글에 대해 아무런 응답이 없는 ‘소통불가능’한 블로그는 결국 방문객이 감소하고 방치되거나 폐쇄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이글루스 밸리의 꼭대기 노른자위에 자리잡은 ‘이글루스 칼럼’(이하 ‘칼럼’)이 블로그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강합니다. 우선 정오가 되면 이오공감과 함께 동시에 업데이트되는데 그 방식이 의심스럽습니다. 이오공감은 그 전날이나 당일에 자신의 블로그에 포스팅한 이글루 블로그 중 다섯 개의 포스팅을 이글루스 측에서 선정한 것입니다. 그 포스팅의 수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자신의 블로그에 블로거 스스로 직접 올렸다는 점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칼럼’은 칼럼의 저자(이하 ‘칼럼리스트’)들이 이글루스 측에 글을 송고하면 이글루스 측에서 정오를 기해 동시에 올립니다. 즉, 칼럼리스트들이 자신의 포스팅을 직접 올리는 것이 아니라 칼럼을 이글루스 측에 송고하면 이글루스 측에서 보유하고 있다가 이글루스 운영자가 올리는 것입니다. 결국 ‘칼럼’은 칼럼리스트들이 직접 올리는 포스팅이 아니라 ‘송고’되는 글이기 때문에 블로그보다는 신문사나 포털에 올라오는 신문 기사에 가깝습니다. ‘칼럼’을 블로그로 보기 힘든 이유 중 하나입니다.
칼럼리스트가 '칼럼'에 직접 올리는 글이 아니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소통’이라는 측면에서도 낙제점을 보이는 ‘칼럼’이 상당수입니다. 비록 저조한 호응도로 인해 이오공감보다 현저히 적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칼럼’에도 다른 이용자들의 덧글이 달립니다. 하지만 ‘덧글’에 대한 주인장의 답글이 없거나 미미한 ‘칼럼’이 다수입니다. mini님의 ‘lifestylist’ 를 비롯한 세 건의 ‘칼럼’에는 덧글에 대한 주인장인 칼럼리스트의 답글이 전무하며 서울님의 ‘이제경의 Great CEO’를 비롯한 다른 ‘칼럼’에서는 덧글에 대한 주인장의 답글은 가뭄에 콩 나듯 미미한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이글루스 운영자)이 올려주기 때문에 블로그라는 매체에 대한 인식이나 자각 없이 신문기사처럼 일방적인 전달이 ‘칼럼’의 성격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과연 ‘송고’된 이후에 칼럼리스트들은 자신의 블로그와 덧글을 확인하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방치된 ‘칼럼’이 상당수입니다. 겉으로는 이글루스 스킨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본성은 블로그가 아닌 것입니다.
이글루스 안에서 모든 이용자는 평등했습니다. 비록 이오공감과 이글루스 피플이 있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포스팅을 직접 올리고 덧글로서 소통하는 이글루스 이용자 중에서 선정된 것이었지 신문기사를 송고하듯 소통도 없이 일방적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이 선정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칼럼’의 칼럼리스트들은 자신이 블로거라는 인식조차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글루스 밸리의 노른자위를 낙하산을 타고 온 것처럼 떡하니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글루스 내부에도 이제 ‘귀족’과 ‘평민’의 이분법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정녕 이글루스가 원하는 방향성은 무엇입니까? 언론사의 신문 기사를 노른자위에 올리는 포털입니까? 그리고 타인이 올려주는 방식에 기대어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칼럼리스트들, 그들이 블로거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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