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롭 마샬보다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의 프로젝트로 오래전부터 설왕설래되었던 ‘게이샤의 추억’이 개봉되었습니다. 몇 년 전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주인공으로 김희선이 캐스팅된다는 소문도 있었고 최근에는 중국에서 일본에 대한 반감으로 상영 금지 처분을 받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게이샤의 일대기를 자극적으로 묘사할 것만 같은 선입견과 달리 ‘게이샤의 추억’은 한 게이샤의 성장기와 순애보를 다루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20세기 초반의 일본을 배경으로 비밀스런 게이샤의 삶을 그리려했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게이샤들의 생활은 그다지 신비스럽지 못합니다. 비밀스런 곳을 훔쳐보는 관음증과 같은 쾌감을 제공하지 못한 채 수박 겉핡기 수준에 머뭅니다.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장면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장쯔이가 선정적인 영화에 출연할 배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족적 자존심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개봉 금지가 된 것은 넌센스입니다.) 따라서 영화의 갈등 구조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말랑말랑한 멜러물에 가깝습니다. 화려한 영상이 눈요기 거리이기는 하지만 제작비가 많이 들었을 것이라는 느낌 외에 큰 감동을 선사하지는 못합니다. 게이샤가 비록 ‘상품으로서 소비되는 여성’이라 할지라도 한 젊은(혹은 어린) 여성이 중년 유부남에게 우직하게 순정을 바치는 것이 영화의 주제라면 수동적인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으며 서구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어설픈 오리엔탈리즘의 반영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확률도 없지 않습니다.
‘게이샤의 추억’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매력은 다양한 국적의 동양계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입니다. 일본을 상징하는 게이샤 역으로 중화권 배우들인 장쯔이, 공리, 양자경이 캐스팅되어 영어로 연기한 것도 이채롭지만 ‘라스트 사무라이’와 ‘배트맨 비긴즈’와 와타나베 켄, ‘쉘 위 댄스’와 ‘우나기’의 야쿠쇼 코지를 비롯한 굵직한 일본 남자 배우와 헐리우드 영화에서 동양계 악역 전문인 케리 히로유키 타가와와 ‘매트릭스 리로디드’의 키메이커로 출연한 한국계 배우 랜달 덕 킴까지 총동원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성인배우들보다 145분의 러닝 타임 중 45분을 책임지는 치요의 아역 오고 스즈카가 더욱 인상적으로 매우 깜찍하고 귀엽습니다. 푸른 톤의 컬러 렌즈를 끼지 않고 원래의 검정색 눈동자를 직접 선보였으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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