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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살의 토미노’라는 이름에 걸맞는 학살극 제49화 '생명 사라지고'입니다. 라므사스, 카츠, 단켈, 헨켄(을 포함한 라디쉬 승무원 전원), 제리드, 레코아가 차례로 전사합니다. 건담 시리즈로 따지자면 ‘기동전사 건담’에서만 해도 최종전에서 죽은 캐릭터는 의외로 많지 않았는데(화이트베이스 승무원 중에서는 1년 전쟁 최종전에서 전사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기동전사 Z건담’(이하 ‘Z건담’)에서 패턴을 확립한 이래 전통이 되어 ‘기동전사 건담 시드’의 최종화 직전 편이었던 제49화 ‘종말의 빛’에서는 나탈, 아즈라엘, 무우(결국 ‘기동전사 건담 시드 데스티니’에서는 복귀했습니다만), 아사기, 쥬리 등이 몰살당하며 계승되고 있습니다. 최종화 직전 화에서 이처럼 많은 캐릭터를 죽이는 것은 최종화에서 주인공과 최종 보스의 대립 구도를 선명하게 하기 위함인데 ‘Z건담’에서는 카미유 대 시로코, 샤아 대 하만의 대립 구도를 최종화에서 선명하게 제시하기 위해 많은 조연 캐릭터를 몰살시킵니다. 아울러 후속작 ‘기동전사 건담 ZZ’을 새로운 캐릭터와 새로운 분위기로 시작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도 부가됩니다.

건담 Mk-Ⅱ + G디펜서 대 함브라비 대의 대결은 속전속결, 사생결단입니다. 카츠의 G디펜서의 코어 파이터에 한눈을 파는 사이 라므사스는 슈퍼 건담의 롱 라이플 직격에 전사합니다. 화가 난 야잔의 공격을 가볍게 피한 카츠가 방심한 사이 코어 파이터는 운석에 돌격하고 야잔은 G디펜서를 가볍게 격추시킵니다. 카츠가 죽으며 사라의 영혼이 나타는데 카츠의 죽음은 카츠가 사라를 죽일 때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다혈질에 산만했던 카츠다운 죽음이었습니다. 소설판은 TV판과 조금 다르게 묘사되어 있는데 G디펜서가 야잔의 함브라비의 주먹세례를 받아 ‘카츠의 몸은 반토막나고 노말슈트는 피와 내장의 통이 되었다’라는 적나라한 문구도 등장합니다. 카츠는 1년 전쟁 당시 생존했던 화이트베이스의 승무원 중 최초의 전사자가 되었습니다.

분노한 에마는 단켈의 함브라비를 격추시키지만 야잔의 더미를 이용한 전법에 속아 백팩에 직격을 맞고 위기에 빠집니다. 카츠의 영혼이 경고했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헨켄은 피탄당한 건담 Mk-Ⅱ를 발견하고 놀라는데 라다쉬 브리지의 승무원들은 헨켄의 마음을 헤아리고 라디쉬를 전진시켜 에마를 구하러 갑니다. 에마의 경고를 무시하고 건담 Mk-Ⅱ에 접근하지만 재빠른 함브라비의 공격에 라디쉬는 격침됩니다. 라디쉬가 건담 Mk-Ⅱ에 무모한 접근을 한 것에 대해 아가마가 도착하기 이전부터 이미 격침 직전의 상태였을 것이라고 추측한 일본 서적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설마 격침되겠느냐는 안이함과 에마를 구해야 한다는 다급함에서 무리수를 택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게다가 에마에 대한 감정은 둘째 치고 건담 Mk-Ⅱ가 에우고에 있어 중요한 전력이기 때문에 격파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라디쉬는 격침되고 헨켄을 비롯한 승무원은 전원 전사합니다. 여성 캐릭터 한 명을 구하기 위해 한 순간에 이처럼 많은 캐릭터가 전사한 것도 건담 시리즈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헨켄의 순정을 비웃는 토미노 감독의 선택은 잔혹합니다. 반면 악마적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야잔의 대활약은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야수와 같은 야잔은 시로코와 하만에게서 정치성을 제외한다면 결코 그들의 카리스마에 뒤지지 않습니다.

라디쉬가 격침당하는 가운데 Z건담과 제리드의 최후 탑승기 바운드 독의 교전이 벌어집니다. 제리드는 카미유를 살인자라고 힐난하고 카미유는 강하게 부정합니다. 하지만 카미유가 살인자라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팬들 뿐만 아니라 카미유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건담 Mk-Ⅱ, 하이잭, 가르발디β, 마라사이, 가브스레이, 바이아란을 거쳐 제리드의 7번째 탑승기가 된 바운드 독은 로자미아가 탑승했던 컬러의 뉴타입 전용기인데 뉴타입으로 각성하지 못한 제리드가 탑승한 것을 놓고 제리드도 강화된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벤 웃다가 사이코 건담을 다룬 것처럼 그저 조종만 가능한 선에서 다루고 100%의 능력은 뽑아내지 못한 것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제리드의 조종 미숙과 원형에 가까운 실루엣을 지닌 바운드 독만의 특성 때문에 Z건담의 공격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폭발하는 라디쉬로 빨려 들어갑니다. 제리드는 ‘카미유, 네 놈은 나의...!’라는 최후의 단말마도 맺지 못하고 머리가 떨어져나가며 폭사하는데 카츠 못지않은 어이없는 죽음입니다. 고단샤에서 발매된 ‘Z 건담 히스토리카’ 6권의 인터뷰에서 제리드 성우 이노우에 가즈히코는 ‘네 놈은 나의...’의 뒤에 무엇이 생략되었을 것 같느냐는 질문에 ‘연인이었나!’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아마도 뒤에 맺지 못한 대사는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라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1화부터 등장하며 카미유의 뒤를 고단하게 뒤쫒은 제리드는 힐다, 포우, 아폴리를 죽인 원흉이지만 라이라, 카크리콘, 마우아를 카미유에게 잃었으며 후반부로 갈수록 시로코, 하만, 야잔에 밀리며 비중이 줄어들어 최종전에서는 별다른 활약도 없이 죽어버립니다. 애당초 제리드는 카미유를 성장시키며 계속 패배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인데 만일 ‘제리드가 주인공이었다면 카미유는 악의 화신이었을 것’이라는 라포트의 ‘기동전사 Z건담 대사전’의 문구는 결코 틀린 것이 아닙니다.

제리드를 죽인 카미유는 어머니와 포우의 원수를 죽였다는 쾌감보다는 모두가 죽어가는 전쟁의 참혹함을 견디지 못해 빔 라이플을 허공으로 난사합니다. 시로코는 카미유의 이런 행위에 ‘감정을 드러내며 싸우면 인간을 구할 수 없다. 절망적이다.’라며 불쾌해합니다. 대파된 건담 Mk-Ⅱ의 에마를 구원하러 간 카미유는 진공 상태의 우주에서 헬멧의 바이저를 올리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며 에마를 놀라게 하는데(사실 카미유가 바이저를 올리기 전까지 에마도 카츠와 헨켄의 죽음에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는데 카미유의 돌발행동 때문에 정신을 차립니다.) 이미 카미유는 정신 붕괴의 전조를 암시한 것입니다. 1985년 ‘Z건담’의 TV 방영 당시 리얼 타임으로 시청한 대다수의 팬들 사이에서는 최종화에서 카미유의 정신 붕괴가 돌발적이며 당혹스럽다는 평이 주류였지만 그들이 성장해 어른이 되어 LD와 DVD로 재감상, 반복감상하면서 ‘카미유가 천천히 미쳐 가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며 토미노 감독의 연출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미니 대백과로 접했던 20년전에는 카미유의 정신 붕괴를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영상으로 반복감상한 지금에 와서는 충분한 사전 암시를 통해 비극적 결말에 도달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만은 가자C 대부대를 이끌고 쥬피트리스를 노립니다. 디 오, 파라스 아테네와 교전을 벌이려 하자 갑자기 가자C 대부대는 폭광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샤아의 백식의 메가 바주카 런처입니다. 다카라지마샤의 ‘우리들이 좋아하는 건담’ 시리즈의 ‘기동전사 Z건담 전 에피소드 철저해석편’에 보면 이 장면에서의 메가 바주카 런처의 활약을 프로야구에 빗대어 ‘개막전 이래 20게임 동안 안타가 없던 4번타자의 만루홈런’이라고 비유했는데 적절한 표현입니다. 사실 메가 바주카 런처가 등장한 이래 직격을 맞춘 것은 거의 없었는데 비록 양산형이라 해도 가자C 대부대를 전멸시킨 활약은 높게 평가할 만합니다. 하지만 큐베레이의 판넬에 메가 바주카 런처는 산산조각이 나고 제49화에서의 샤아의 활약은 여기까지입니다.

왼팔 대신 실드를 붙이고 백팩 대신 샤클즈에 의존해 전장에 다시 나온 에마의 건담 Mk-Ⅱ는 파라스 아테네와 함브라비의 협공을 받아 위기에 빠진 카미유를 구합니다. 에마는 레코아와 1:1로 겨루는데 제 성능이 아닌 건담 Mk-Ⅱ에 맞선 파라스 아테네가 동시에 빔 사벨로 서로를 찌른 것을 보면 역시 레코아는 에마에 비해 파일럿으로서의 기량이 떨어진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배신녀들끼리의 싸움에서 레코아가 먼저 죽는데 레코아는 에마에게 ‘남자는 여자에게 치욕을 주는 일만 생각할 뿐인지도 모른다’며 절규하는데 크와트로와 시로코, 그 어느 쪽의 제대로 된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방황하고 쟈브로에서 성폭행 당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레코아다운 유언입니다. 하지만 남자는 모른 채 군인으로서만 충실했던 에마는 끝까지 레코아의 유언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배신녀들끼리의 갈등이 서로를 찌르는 비극으로 종결되었는데 토미노 식 악취미에 가까운 연출 솜씨는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동전사 Z건담 Ⅲ - 별의 고동은 사랑’에서도 에마와 레코아의 서로 찌르는 결말은 TV판과 동일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제 관심사는 심장의 고동 소리와 함께 정지 영상으로 처리되었던 건담 Mk-Ⅱ와 파라스 아테네의 서로 찌르는 TV판의 장면이 극장판에서 어떤 스타일의 영상으로 제시되느냐 입니다. 라포트의 ‘기동전사 Z건담 대사전’에는 우치다 요리히사의 멋진 일러스트로 재현(국내 해적판인 성심도서의 딱따구리 문고 ‘칼라판 Z건담’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되어 있는데 극장판에서도 부디 이런 식으로 재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카미유는 에마만이라도 구하려 하지만 야잔은 건담 Mk-Ⅱ 밖으로 나온 에마를 공격해 중상을 입힙니다. 카미유는 게임 ‘슈퍼로봇대전’에서도 길이 반복되는 ‘놀러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분노하며 Z건담의 하이퍼화를 처음 선보이는데 배리어가 형성되며 빔 사벨이 확대되자 야잔은 도망치다가 결국 격파당합니다. 하지만 탈출 포드 덕분에 생존해 ‘기동전사 건담 ZZ’ 제2화 ‘샹그리라의 소년’에 재등장합니다. 그리프스 전쟁 최종전에서 카미유의 분노를 유발해 Z건담의 바이오 센서를 이용한 하이퍼 화를 이끌어 냈으며 제1차 네오 지온 전쟁에서 에우고의 승리의 주역이 되는 쥬도 아시타를 발굴해 전장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두 번의 전쟁에서의 에우고 승리의 1등 공신은 어쩌면 야잔인지도 모릅니다.

덧글

  • 계란소년 2006/01/15 01:16 #

    어떻게 보면 야잔은 본디 지온 잔당을 토벌한다는 티탄즈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연방의 영웅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티탄즈는 망했지만 쥬도 아시타를 발굴해 네오지온을 쫑내는 데 기여했으니, 가히 훈장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퍽)
  • hikage7 2006/01/15 01:29 #

    배신녀... 신랄하십니다만 정확한 표현이시군요.
    이번 화의 감상을 읽으니 다시 Z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제리드는 확실히 초반의 그 비중에 비하면 ...언제 죽었냐? 하고 물어볼 정도로 가볍게 죽어서 조금은 실망했지만 역시 의도된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군요.
  • SAGA 2006/01/15 02:03 #

    예전에 어떤 분이 제타 건담을 분석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제리드를 평한 글을 보고 참 불쌍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글에선 제리드는 기동전사 건담에서 아무로에게 샤아라는 라이벌이 있듯이 카미유의 라이벌로 설정된 인물인데 샤아와는 달리 제리드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한계(부대라든가 어느 정도의 월권이라든가 캐릭터의 능력, 역량 등등)때문에 결국 샤아가 되지 못하고 시로코에게 라이벌 자리도 빼앗긴 채 몰락해버린 캐릭터라고 했던 게 기억납니다.
    '제리드가 주인공이었으면 카미유는 악의 화신이다'라는 말은 어쩐지 공감이 가네요. ㅡㅡ;;;
  • 解明 2006/01/15 12:04 #

    개인적으로 헨켄 함장이 전사할 때는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헨켄이나 아폴리 같은 조연급 인물들에게 어쩐지 더 애착이 갔었는데, 마지막 싸움에서 덧없이 스러지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토미노 감독의 연출에 경악했습니다. 이제 마지막만 남았군요.
  • 미스트랄 2006/01/15 21:08 #

    링크 신청합니다~~ 저는 이제 기동전사 건담 보려고 합니다.. Z는 먼 얘기인듯...;;
  • 디제 2006/01/15 21:43 #

    계란소년님/ 그럴 수도 있겠군요. ^^
    hikage7님, SAGA님/ 제리드가 '기동전사 건담'의 샤아가 될 수 없었던 것은 애당초 의도적으로 제리드가 샤아에 비해 나약하고 단점이 많은 캐릭터로 설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최종보스로는 시로코가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요. (시로코는 'Z건담'의 초기안에서부터 사야를 죽이는 인조인간으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제리드의 어이없는 최후는 진작부터 예정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解明님/ 휴, 정말 어느새 최종화만 남았습니다. ^^
    미스트랄님/ 링크 환영합니다. 자주 놀러오십시오.
  • 이리 캐쉰 2006/01/16 09:34 # 삭제

    오늘도 즐겁게 감상하고 있습니다.
    한데 아무리 '만루홈런'이라지만 그 시점에서 샤아의 행동에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군요.
    아무리 혼전이고, 또 애니 상 연출을 위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당시 티탄즈의 전력이 3세력 중 가장 우세했던 상황에서 굳이 가자-C 부대를 공격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스토리의 흐름상으로 보면 납득도 못할 바는 아닙니다만 결국 시로코만 유리하게 만들어준 셈이니 흔히 회자되는 샤아의 '삽질'이라 할까요, 뭔가 샤아의 판단이라 보기 쉽지 않은 듯합니다.
  • kamiru 2006/01/16 10:58 # 삭제

    킬리만자로나 제단의 문의 상실로 티탄즈도 전력이 많이 약화된 상태였죠...
  • 디제 2006/01/16 23:47 #

    이리 캐쉰님, kamiru님/ 이미 에우고의 입장에서도 액시즈든, 티탄즈든 똑같이 적이었고 사실상 액시즈와 티탄즈로부터 협공을 당하고 있었던 데다가 메가 바주카 런처를 가장 효율적으로 (즉, 한방에 왕창 골로 보내기) 사용하기 위해 도열하다시피 발진한 가자C 부대를 샤아가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 thealto 2008/08/07 15:41 #

    잘 봤습니다
    포스트에도 적어놓으셨듯.. 헨켄이 연정에 이끌려 무리수를 둔것은 군인 지휘자 입장에선 실격이죠.. 흐음.
    파일럿 하나를 위해서 혼자 죽는것도 아니고.. 전함 하나를 날려먹다니..;
    하지만 헨켄이 주인공이기라도 했다면[..] 순간 헨켄의 뉴타입 각성과 함께, 모종의 이유로 라디슈가 하이퍼화 됬을지도..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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