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적이고 다혈질 형사와 이지적이고 냉철한 검사의 버디 무비 ‘야수’는 여러 영화들을 콜라쥬한 듯합니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싸움꾼 장도영은 권상우의 대표작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가 정문고를 자퇴한 후 점정 고시를 보고 어른이 되어 형사가 된 듯하며 오진우는 ‘올드보이’의 이우진이 검사로 전업한 듯 보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번듯한 인물이지만 사실은 온갖 대형 범죄에 연루되어 있는 악인을 잡기 위해 일로매진하는 검사를 묘사한다는 점에서는 ‘공공의 적2’를, 거친 질감의 화면에 선과 악의 대립과 몸을 사리지 않는 경찰관을 조명한다는 점에서는 ‘무간도’를 연상케 합니다.
느와르와 액션, 스릴러와 버디 무비의 혼성 잡종 ‘야수’는 그러나, 대중적인 흥행 코드를 지닌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우선 유머 감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두 주인공은 지나치게 진지하고 경직되어 있으며 소리 지르기 바쁩니다. 선이 굵은 남성 캐릭터로 힘 있게 이끈다는 의도는 알겠지만 한국 영화판을 먹여 살리는 여성 팬에게 어필하기에는 극중 여성 캐릭터가 지나치게 밋밋하고 비중이 약해 감정 이입이 어렵습니다. 로맨스도 취약합니다. 강약 조절 없이 시종일관 밀어붙이며 감정적으로 분출해내고 쏟아내기 바쁘던 스토리는 종반부에서 어이없는 결말로 종결됩니다. 영화 개봉 전, 일반적인 한국 영화의 결말과는 다르다는 언급에 의외의 반전이 도사리고 있을 줄 알았지만 개연성이 부족한 널뛰기식 결말이라 황당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80년대 후반 홍콩에서 쏟아졌던 홍콩 느와르 범작의 엔딩과 20여년 만에 재회한 듯 합니다. 비록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지만 이런 스타일의 영화가 한국 영화계에 드물며 좋아하는 장르여서 객관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소주 한 잔이 간절해졌습니다. ‘공각기동대’와 ‘인랑’의 가와이 겐지가 음악을 맡은 것도 매력 포인트입니다.
곱상한 이미지를 떨치기 위해 터프 가이로 변신한 권상우의 연기는 애처롭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태풍’에서의 장동건보다 ‘야수’의 권상우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을 정도로 연기가 좋아졌습니다. (영화의 완성도도 '태풍'보다는 '야수'가 그나마 낫습니다.) 촬영 도중 고생한 흔적도 역력합니다. 액션 연기도 온몸을 던지며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권상우의 열연은 후반부에 힘이 떨어지는 시나리오 때문에 뒷전에 파묻힙니다. 유지태의 연기는 ‘올드보이’의 이우진과 너무나 흡사해 별로 평가할 여지가 없습니다. 영화 홍보는 유지태와 권상우의 버디 무비처럼 홍보되고 있지만 권상우에 비해 유지태의 비중은 상당히 약합니다. 영화 속 절대악을 상징하는 조폭 보스로 분한 손병호는 ‘파이란’의 용식보다 업그레이드된 기업형 대형 조직의 묵직한 조폭 보스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손병호에게는 조폭 보스 배역 제의가 많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스코리아 뉴욕 진이자 가수 신해철의 부인으로 유명한 윤원희가 중간에 재즈 가수로 대사 없이 출연했습니다.
사족이지만 이채로웠던 것은 극중 세 주인공의 이름이 모두 실존인물과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장도영은 5.16 군사 쿠데타 당시 육군 참모 총장이었으며 박정희의 쿠데타 정부에서 군사혁명 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가 축출된 인물이고, 오진우는 북한에서 김일성에게 절대적 신임을 얻어 인민무력부장(국방부장관)에 올랐다 1995년 사망했던 인사이며, 유강진은 지금도 한국 성우계에서 알아주는 베테랑 성우입니다. 극을 이끌어가는 세 인물의 이름이 모두 실존인물과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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